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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현관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20년 10월
평점 :

'빛의 현관'은 요코야마 히데오의 신작으로 전작 '64'를 알고 있었기에 정말 기대되는 책이었다. 표지도 맘에 들고, 과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빛의 현관,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받는 집은 어떤 모습일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폈다.
버블이 꺼지고 취업난이 심해지는 때에 건축 일 역시 활기를 잃었고, 건축가였던 주인공도 힘든 시기를 겪는다. 인생은 늘 쉽지 않지만, 경제가 무너지고 기업이 무너지고 가정도 무너지는 시기에 주인공도 같이 무너진다. 자존감의 하락과 사소한 다툼으로 아내와 이혼하게 되지만, 결국 건축사로서 재기한다.
눈을 감고 <<200선>>을 덮었다. 언젠가 나의 집을 세우리라. 여드름 투성이 소년 시절의 포부와 간절한 바람이 살아남아 있었던 까닭에 요시노의 말은 마법이 될 수 있었다. '북향 집'이라는 발상도, '목조 주택'이라는 선택도 필연이었다고 다시금 생각했다.-56
하지만 저 장관도타 이기지 못하는, 이 공간의 진정한 주인공은노스라이트였다. 지금 이 순간도 그랬다. 창문은 경관을 한 폭의 그림으로 꾸미는 액자가 아니라, 이 집의 '빛의 현관'으로써 존재하고 있었다.-88
아오세 미노루라는 건축가가 상고 싶은 집을 지어주세요. 저희는 신경 쓰지 마시고요. 아오세는 말했다. 제가 그러고 싶습니다. 언제가 만들고 싶었습니다. 빛을 환대하고, 빛에게 환대 받는 집을. 그것은 백일몽이었나. 현실이 눈앞에 나뒹굴고 있었다. 요시노 일가는 자취를 감췄다. 아니,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아오세는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의자를 보았다. 창문을 향해 놓인 의자 하나. 왜 이런 물건을 이곳에 둔 걸까. 앉기 위해서다. 요시노가 이 의자에 앉았으리라는 건 쉬이 상상할 수 있었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가지고 와서 방 가운데에 놓고, 앉아서, 그래,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89
이 이야기는 Y주택으로부터 시작된다. Y주택에 얽힌 이야기들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처음엔 Y저택을 지어서 상을 받은 건축가가 나온다. 이 건축가는 의뢰인에게 본인이 살고 싶은 집을 지어달라고 했고, 잘 지어진 집은 상을 받는다. 수상 소식에 비슷한 집을 지어달라는 의뢰가 여기저기서 온다. 그 와중에 Y저택에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듣고는 사라진 의뢰인을 찾는 여정이 시작된다.
의뢰인은 왜 그런 주문을 했고,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리고 저택에 있는 의자는 무엇일까. 책 초반에는 온갖 의문들이 난무하다가 중후반으로 갈 수록 초반의 조각들이 맞물려 그림을 그려낸다.
소설을 읽으면서 참 잘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향, 빛, 가족, 아버지, 아내, 딸, 가
족애, 살고 싶은 집, 의자, 휴식처... 많은 것들이 잘 어우려져 정말 표지 그림같은 따스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미스터리로 시작했으나 따스한 풍경으로 끝나는 느낌이랄까. 가장 소중한 건 바로 곁에 있는 것이고, 잃기 전에 소중함을 느끼고 잘 해야 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