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작가의 가볍지않은 농담, 웃으며 읽다가도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의 문장에 항상 감탄한다.
이 책 역시 아무 정보없이 집어 들었다가 첫문장
<들어보아라.
이것은 이 땅의 황당한 독재자 중 한 명인 전두환 장군의 통치
시절 이야기이다.> 에서 부터 어떤 블랙 코메디가 펼쳐질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차남들의 세계사라 길래 좁은 상상력으로
장자에게 밀려난 차남들의 고군 분투기 인가 했더니..
그 시절 유일한 장자인 독재자 아래 차남들이었던 순둥이 국민들의 어설프고 순진한 좌파 세뇌 활동 영웅가 였다.
사실 주인공 나복만이 당한 일들은 지금도 사법제도권과 공권력의 힘으로 자행되는 무수한 야만적 행태이다. 비록 많은 국민들이 그걸 알지 못했지만 십년전 그 분을 잃고, 십년후 검찰 개혁의 기치를 내건 어느 법학자 가족에 가한 사법 린치를 생중계로 목도하며 이 땅에는 여전히 나복만같은
차남들이 숨죽이고 있음을 알게 됐다.
단순히 너무 여려서 , 죄짓고는 못사는 성품이어서, 글을 읽을줄도 쓸줄도 몰라서 거짓 인생을 강요당해도 묵묵히 몸으로 버텨낸
이땅의 차남들..
얼마전 이 이야기의 시발점이 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동자중 하나는 자한당의 특보가 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진정한 코미디는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는건 아닌지.
나복만씨는 여전히 수배자로 어딘가에서
글을 읽지 못해도..쓸줄 몰라도..
명찰을 달고 있지 않아도 사람이 누군지 정도는 구별하며
살고 있으리라..
정 과장이 천천히 나복만을 바라보았다. 나복만은 앞 유리창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다시 한 번 말을 했다. "명찰을 달고 있어야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냐고, 이 개새 끼야!" 정 과장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는 다시 굳은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정 과장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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