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 작가의 가볍지않은 농담, 웃으며 읽다가도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의 문장에 항상 감탄한다.
이 책 역시 아무 정보없이 집어 들었다가 첫문장
<들어보아라.
이것은 이 땅의 황당한 독재자 중 한 명인 전두환 장군의 통치
시절 이야기이다.> 에서 부터 어떤 블랙 코메디가 펼쳐질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차남들의 세계사라 길래 좁은 상상력으로
장자에게 밀려난 차남들의 고군 분투기 인가 했더니..
그 시절 유일한 장자인 독재자 아래 차남들이었던 순둥이 국민들의 어설프고 순진한 좌파 세뇌 활동 영웅가 였다.
사실 주인공 나복만이 당한 일들은 지금도 사법제도권과 공권력의 힘으로 자행되는 무수한 야만적 행태이다. 비록 많은 국민들이 그걸 알지 못했지만 십년전 그 분을 잃고, 십년후 검찰 개혁의 기치를 내건 어느 법학자 가족에 가한 사법 린치를 생중계로 목도하며 이 땅에는 여전히 나복만같은
차남들이 숨죽이고 있음을 알게 됐다.
단순히 너무 여려서 , 죄짓고는 못사는 성품이어서, 글을 읽을줄도 쓸줄도 몰라서 거짓 인생을 강요당해도 묵묵히 몸으로 버텨낸
이땅의 차남들..
얼마전 이 이야기의 시발점이 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의
주동자중 하나는 자한당의 특보가 되었다는 뉴스를 봤다.
진정한 코미디는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는건 아닌지.
나복만씨는 여전히 수배자로 어딘가에서
글을 읽지 못해도..쓸줄 몰라도..
명찰을 달고 있지 않아도 사람이 누군지 정도는 구별하며
살고 있으리라..

정 과장이 천천히 나복만을 바라보았다. 나복만은 앞 유리창 쪽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다시 한 번 말을 했다.
"명찰을 달고 있어야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냐고, 이 개새 끼야!"
 정 과장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는 다시 굳은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정 과장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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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세계사 - 2014년 제47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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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아무것도 읽을 수도 없는 세계. 
눈앞에 있는 것도 외면,하고 다른 것을 말해 버리는 세계, 그것을 조장하는 세계(전문 용어로 ‘눈먼 상태 되시겠다.), 그것이 어쩌면 ‘차남들의 세계‘라고 말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것 또한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우리 이야기에는 한 가지 진실이 더 숨어 있다. 이미 눈치챈 사람들도있겠지만….… 후에 나복만이 모든 희망을 잃고 어떤 죄를 짓게 된 것 또한 바로 그 진실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p179

 때때로 평온하게만 보이던 우리의 일상이 부욱, 소리를 내며 찢어진 후, 그 틈에서 낯선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어쩌면 그 순간이야말로 의식 중이든 무의식중이든 우리가 감추고자 애를 쓰던 유일한 진실이 눈앞에 나타나는, 아프지만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외면하기에 급급해한다.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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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원 의원들(Conscript Fathers)이여, 
우리가 스스로를 우리가 바라는 만큼 편애
(partial to)하게 해 줍시다. 그래도 우리는 
숫자로는 에스파나인들보다 많지 않고, 
완력으로는 갈리아인들보다 못하며, 
꾀로는 카르타고인들에게, 기예(arts)로는 
그리스인들에게 뒤지고, 끝으로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타고난 지성에 있어서는 이 나라와 
국토의 [토박이 ]라틴인과 이탈리아인들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경건성과 
종교성, 그리고 불멸하는 신들의 권능으로 
만물이 다스려지고 질서 지워진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지혜에 있어서는 모든 국가
와 민족을 능가했던 것입니다.
p199

스토아주의 역시 무엇보다 개인의 attitude‘를 
중시하는 철학이다. 단순화시키자면, 세계를 
변화시킬 궁리를 하지 말고 일단 스스로 
긍정적인 태도부터 취하라는 것이다.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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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이어지는 아리스토파네스의 설명에 따르면, 
사랑이란 이렇듯 태초에 잃어버린 자신의 반쪽을
찾으면서 생기는 감정이라는 것이다.
즉 원래 팔다리를 넷씩 가진 남성 합체 괴물
(이 아니라 인간의 조상이라고 해야하나?)과 여성 
합체 괴물이 각각 둘로 쪼개진 경우는 남성이 
남성을, 여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동성애
(homosexuality)가 발생하는 것이며, 
남녀 양성합체에서 갈라져 나온 경우는 
이성애(heterosexuality)가 생기는 것이다.
p51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갈망하는 주체는 그것이 
결핍하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해 갈망해야 하는 
것인 지,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결핍하고 있는 
것이 없다면 욕망도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를 
숙고해 보게. 
p54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아니면 세상의 왕과
 통치자들이 철학의 정신과 힘을 가질 때까지, 
그리고 정치적 위대함과 철학적 지성이 
한 몸에서 만날때까지, 그리고 그 둘 중 하나를 
배제한 삶을 추구하는 보다 범상한 자들이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될 때까지, 여러 나라들과 인류는 
결코 악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할 거라고 믿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만 우리의 공동체가 실현될
가능성이 생길 것이고, 빛을 볼(behold) 날이 
올 것이네. 
p123

인간이 지금이나 태초에나 철학을 시작한 것은 
경이 때문이다. 그들은 원래 명백한 난관들에 
대해 놀라움을 표했으며, 이어서 조금씩 나아가며 
더거창한 문제들에 대한 난관들을 언급했다. 
그것은 예를 들어 달, 태양, 별들의 현상, 그리고 
우주의 기원에 대한 것들이었다. 궁금증과
경이감에 빠진인간은 스스로를 무지하다고
생각하고(신화는 경이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신화를 사랑하는 자조차 어떤 의미에서는 애지자다), 
따라서 그들은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철학했으며, 분명 그들은 알기 위해 학문을 추구하고 
있었다. 어떤 실용적 목적 때문이 아니라 말이다. 
그리고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 확실해진다. 
삶의 모든 필수조건들, 삶을 안락하고 즐겁게 해 주는 
모든 것들이 존재했을 때, 그러한 지식은 추구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p169

‘도덕은 중용(mean)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대로, 그것은 과함과 결핍이라는 두 악덕(vice)
사이의 중용이며, 그 특징상 감정상의 중도와
행동상의 중도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때문에 그러하다.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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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 지향적 문화에서는 대개 생각하는 일을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아무일도 
안 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 일도 안 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무슨 일을 하는 척하는 것이고, 
아무 일도 안 하는 것에 가장 가까운 일은 
걷는것이다. 인간의 의도적 행위 중에 육체의 
무의지적 리듬(숨을 쉬는 것, 심장이 뛰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보행이다. 보행은 일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그저 존재하는 것과 뭔가를 해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이다. 생각과 경험과 도착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육체노동이라고 
할까. 수년간 걷기를 다른 일의 수단으로 삼아왔던 
내가 걷기에 대한 글을쓰는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p20

마음도 두 발과 비슷한 속도 (시속 5킬로미터 이하)
가 아닐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 생각이 맞다면, 현대인의 삶이 움직이는 속도는
생각의 속도, 생각이 움직이는 속도보다빠르다.
p28

한 장소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장소에 기억과
연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 장소로 돌아가면 그 씨앗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다. 
세상을 두루 살피는 일은 마음을 두루 살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세상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하듯, 마음을 두루 살피려면 걸어 다녀야 한다.
p32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이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두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루소의 <고백록>에 나오는 말이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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