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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 좌절의 시대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3월
평점 :
장강명 작가의 책을 다 읽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많이 읽은 편이다.
<산 자들>이나 <한국이 싫어서>와 같은
사회파 리얼리즘 소설도 좋았지만,
책을 열면 바로 헐리우드 영화가 펼쳐지는
<우리의 소원은 전쟁>(이거 왜 영화로 안 만들어지지?)이나
현실과 환상이 미묘하게 공존하는
<뤼미에르 피플>을 좋아한다.
문학공모전과 공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논픽션
<당선, 합격, 계급>도 인상깊게 읽었고,
책에 관한 에세이인
<책, 이게 뭐라고><책 한번 써봅시다>도 재미있게 읽었다.
어쨌건 나는
우리가 평소에 당연하게 지나치는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가의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사회에 대한 우려(복잡한 논의가 오가지 않는 사회,
각론이 부실한 사회, 맹목적인 열성 지지자와 그럴싸한 구호와
선정적인 음모론이 넘치는 사회-400쪽),
작가가 꿈꾸는 사회(남 얘기를 하는 대신 책 얘기를 하는 사회,
감정보다 사실을 중시하는 사회)에 대해
많은 부분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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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작가는 동아일보에서 11년간 기자로 일한
저널리트스 출신 작가로
<미세 좌절의 시대>는 저자가 2016년부터 2024년까지
한국일보, 중앙일보 등 일간지와 잡지에 게재한 칼럼을 엮은 산문집이다.
정치, 사회, 문화 등 우리 사회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글 96편이 실려있다.
(작가는 이 책에 대해 친절하게 한 줄 정리를 해주었는데,
"매사에 회의적인 사람이
점점 불확실해지는 시대 앞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막연한 질문들"이라고 한다)
미세좌절
저자가 말하는 미세 좌절이란
예측할 수 없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좀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
좌절을 거듭하는 것을 의미한다.
계획을 세울 수도 없고,
세워봤자 소용도 없는 늘 비상인 세상.
미세 좌절은 불확실한 시대의
숙명인 것일까.
미세한 좌절이라도
미세먼지처럼 오래 축적되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니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 하락,
외로움, 결핍,
박탈감, 분노를 경험할 수밖에...
작가는 이러한 시대에 변하지 않는
몇 가지 삶의 원칙을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개인은 존엄하다, 세상은 복잡하다,
사실은 믿음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질문들
이 책에는 이런 질문들이 들어 있다.
외로움 담당 장관이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자존감을 회복하려면?
보수와 진보는 무엇인가?
혼란한 시대에 제정신으로 살아가려면?
북한 옆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존엄한 사회란 무엇인가?
AI 시대 소설의 미래는?
에세이의 매력
에세이나 칼럼은 소설과는 다르게
작가의 솔직한 모습이 들어있어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진다.
이 책에서도 그런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그 중 (내가 선정한) 1위는
'아내의 방'이라는 칼럼에서
아내가 컴퓨터를 하면 그 옆에서 모니터를 보며
참견하다가 쫒겨나는 작가의 모습을 그린 부분이었다 ㅎ
"아, 나 컴퓨터 할 때 옆에 좀 앉지 말라고! 저리 가라고!"
그러면 나는 놀란 반려견처럼
소파에서 펄쩍 뛰어올랐다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서재로 도망치곤 했다(249쪽)
다정한 부부의 모습은
언제 봐도 정말 좋다.
인상 깊었던 구절
세상을 고해상도로 봐야 복잡한 현실과 다양한 이해관계가 드러난다... 모든 게 디테일에 있다. 그러므로 디테일을 알아야 한다. 디테일은 넓고 많고 다채롭고 일견 무질서해 보이기 때문에 제대로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노력도 많이 든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디테일을 조사하고 이해하는 노력을 우리는 '공부'라고 부른다.(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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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이렇게 날카롭게, 자세하게
증언해 주는 작가는 흔치 않다는 점에서
장강명 작가는 우리 시대의 귀중한 증인이다.
그는 단순히 문제를 던질 뿐 아니라
그가 꿈꾸는 사회의 모습,
그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시간이 흘러 다음 세대는
장강명 작가의 작품들로
오늘날을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