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호주에서 태어난 저자는 대학 교육까지 받은 엘리트 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시대적 제약 속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며 자아를 잃어버린 세월이 길었다. 예순 살 생일, 자신의 인생에 대해 회의를 느낀 그녀는 시골에 '자기만의 방'을 마련하고 독서로 재활 치료를 하겠다고 마음먹는다.
저자는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에게서 자신이 되고 싶었던 여성상을 발견했다. 그리고 오스틴의 작품을 출발점으로 자신의 삶의 만족과 불만족을 탐색하기로 결심한다. 이 책에는 『오만과 편견』, 『노생거 수도원』, 『이성과 감성』, 『맨스필드 파크』, 『에마』, 『설득』 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60년 전 학창시절 처음 『오만과 편견』을 만난 순간을 떠올리며, 오스틴 소설의 공감적인 화자, 입체적인 캐릭터, 도전적인 사상들로부터 깨달음과 위로를 얻었다고 말한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제인 오스틴 독서 요법’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노생거 수도원』을 청소년기 질환에 효과적인 치료제로 제시하는 등 여섯 권의 작품 각각에 대해 증상, 치료법, 용량, 부작용, 효능을 정리한 부분이 재미있었다.

저자가 오스틴 소설을 낭독하고 영어의 언어적 특성(도미문이나 언어유희 등)을 분석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나에게 이런 언어학적 분석은 어려우니까. 그래도 저자가 그랬듯이 소설 속 인물들에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나의 과거를 겹쳐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다섯 명의 딸 중 나는 누구와 가장 비슷할까? 나라면 저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와 같은 것들.
저자는 오스틴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의 문제를 느끼고 생각하도록 교묘한 방식으로 여지를 남기고 독자가 성숙해지도록 도움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오스틴의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고, 나의 느낌과 저자의 느낌을 비교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에 담긴 저자의 독서 경험은 모두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저자가 친구 타마르와 함께 『설득』을 읽는 이야기였다. 나도 언젠가 이렇게 친한 친구와 나란히 같은 책을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혼의 벗과 함께 책을 읽으며 때로는 깊이 공감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입장을 확인해 가는 과정이 참 보기 좋았고, 부러웠다.
저자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냥 노력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닌가 봐.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달라지겠지."
저자는 사랑이 『설득』의 주인공 앤을 변화시켰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은 요즘 자주 들려오지만,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는 생각은 미처 해본 적이 없어 신선하게 다가왔고,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함께 책을 읽은 친구가, 자신이 미워하던 부모님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오스틴의 소설을 이해할수록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새로운 통찰이 생기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독서는 이렇게 사람의 생각을 조금씩 바꾸고, 결국에는 삶을 바라보는 태도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을 지닌 게 아닐까. 나 역시 이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그런 독서의 힘을 실감했다.

오스틴의 소설을 읽고 저자는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전의 인생이 세상에서 보기에는 무난하고 성공한 인생이었을지라도 수동적인 인생이었다면, 오스틴을 깊이 읽기 시작한 이후 그녀는 '오직 자신의 설득에만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능동적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저자는 결국 여든넷에 시드니 대학교 교육대학의 박사 과정에 지원해 합격하고, 여든여덟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가 캠퍼스를 거니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다.
"여기저기에서 변화가 눈에 띄었다. 디지털화된 도서관, 학습지원센터, 성 중립 화장실이 생겼고, 한때 초대받은 남학생들만 들락거릴 수 있었던 식당들은 사라졌으며, 학생들은 더 이상 배타적인 앵글로색슨계 백인 일색이 아니었다. 나는 어디를 가든 격려와 지지를 받았다. 여든넷이라는 나이 자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저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은 1950년대 초였을 텐데, 2000년대에 돌아간 대학은 얼마나 달랐을까. 저자는 이 광경을 "나의 오스틴 오디세이에 이런 식의 해피 엔딩이 찾아올 줄 꿈엔들 알았을까"라고 표현한다.
이제 저자는 남편과 각각 따로 살면서 저녁을 같이 먹고 함께 있는 시간은 최대한 대화를 한다. 60대에 접어든 자식들, 자리를 잡아가는 손주들, 여덟 명의 증손주들까지 있다 보니 대화거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는 자신에게 진실로 만족스러운 인생을 꾸려갈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고, 일등공신이 제인 오스틴이라고 말한다.
정말 나에게도 이런 책을 만나는 순간이 올까. 끊임없이 쏟아지는 신간들을 읽기에 급급한 지금, 가끔은 멈춰 서서 내 인생의 책은 무엇인지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물론 지식을 얻기 위해, 혹은 위로와 휴식을 위해 읽는 책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어떤 책들은 책 속에 숨겨진 장치와 사유의 결을 천천히 따라가며 주의 깊게 마주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오스틴이라는 타자와 깊이 마주함으로써 더 열린 사람이 되었고, 결국 삶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독서의 방식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남긴다. 책은 단순히 읽고 덮어버리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우리를 조금씩 변화시키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모습을 보며 문득 우리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흔을 넘긴 아버지는 여전히 독서를 즐기신다. 80대까지는 집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알라딘 중고서점까지 걸어가서 책을 사서 맥도날드에 앉아 읽고 오시곤 했다. 책을 읽는 아버지의 삶은 낡지 않았고, 늘 윤기가 흘렀다. 젊은 시절에도, 노년에도 독서만큼 좋은 친구가 없다는 걸 아버지와 이 책의 저자를 통해 새삼 깨닫는다.
나 역시 그런 독서를 꿈꾼다. 앞으로도 계속, 책을 노년의 벗으로 삼아, 읽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많이 읽는 날도 있겠지만, 욕심을 내려놓고 한 권을 깊이 읽는 날이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