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1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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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프 부인이 공부방에 들어오면서 문을 하도 세게 닫는 바람에 샹들리에 유리 장식들이 일제히 흔들리며 맑고 가벼운 방울 소리를 냈다. (p.9)


공부방에 들이닥치는 캉프부인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이렌네미롭스키 선집 시리즈의 첫번 째 책 '무도회'의 첫번째 작품 '무도회'입니다. 

아직 전쟁이 없는 시대에 벼락부자가 된 부부와 그들의 딸 앙트와네트, 그 딸의 영국인 가정교사 미스 베티 그리고 그들 가족이 각각의 이유로 달가워하지 않는 친척이자 피아노 선생 이자벨을 주요인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상류층'으로 편입을 목표로 하는 부부는 근사한 '무도회'를 계획하지만, 일은 그들 뜻대로 평탄하게 풀려가지 않습니다. 그들의 딸 앙트와네트는 열다섯살 처럼 보이는 열네살 소녀입니다. 가슴에 가득한 불만과, 나름 머리속에 가득찬 이야기들을 본인 마음껏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이 소녀의 활약이 엄청나다면 엄청난 결과를 불러옵니다. 

속물적인 부모, 반항심 가득한 아이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을 묘사하는  이렌 네미롭스키의 문장은 매우 날카롭고 신랄합니다. 

이 작품집에는 '무도회' 외에도 또 다른 십대 소녀 '질베르트'가 만난 어느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른 젊은 여자', 독특하다고 할지, 이상하다고 할지 어쨌든 자신의 삶을 소신대로 살아가다가 갑자기 '인류애'를 발휘하게 되는 주인공 로즈 씨의 이야기를 풀어낸 '로즈 씨 이야기' 그리고 '아빠와 이혼한 불행한' 엄마와 결혼하지 않고 평온하게 사는 이모와 엄마의 친구들 이야기를 그려낸 '그날 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대략 이런 이야기라고 하고는 있지만, 아주 짧은 '다른 젊은 여자'를 비롯해 각각의 작품들이 주는 인상은 개별적이고 독특합니다. 특히 '로즈 씨 이야기'는 전반부를 읽는 동안 떠오른 인물이 있는데 두번째 선집-프랑스풍 조곡 '6월의 폭풍'에 등장하는 '골동품 수집가'를 겹쳐보게 됩니다. 그러나 두 인물의 결론은 아주 달라서 인상적입니다. 

마지막 작품 '그날 밤'은 결국 '누가 진정 행복한가?'라는 명제를 던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게 진짜는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짧고 격렬한 이야기 속에 복잡한 마음들이 가득 녹아 있습니다. 


이제 두번째 #이렌네미롭스키의 작품을 읽었습니다.  모두 다 아껴읽고 싶은 작품들입니다만 읽다보면 중간에 멈추지 못하고 계속 읽게되는 매력이 있습니다. 항상, 작가의 짧은 생애가 안타깝습니다. 


#도서를제공받았습니다#무도회#이렌네미롭스키#레모 

아무도, 세상 누구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못 보고 멍청하기 짝이 없는 그들은, 감히 그녀를 키운다고, 그녀를 가르친다고 주장하는 그 모든 천박하고 무식한 졸부들은 그녀가 자기들보다 천 배나 똑똑하고 재치 넘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 P31

바로 그 순간, 손에 잡히지 않는 그 찰나의 순간, 한 사람은 올라갔고, 또 한 사람은 내려갔다. 그들은 그렇게 ‘삶의 길 위에서‘엇갈렸다. - P74

그녀는 보통 사람들이 평생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단 나흘만에 전부 써버린 것이다. - P83

그는 일종의 생존자, 옛 시대의 습관, 취향, 요구들과 더불어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하나의 종이었다. 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순간 그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아마도 젊음? 하지만 그는 이제 젊지 않았다. 그는 한 번도 젊었던 적이 없었다. - P100

"오! 자네야 열일곱 살이니 그렇지. 그 나이 때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난 목숨을 부지 하고 싶어. 이해하겠어? 폐허로 변한 세상에 가난하고 늙은 불구자로 남는다고 해도 살고 싶단 말이야." - P114

"사실이야. 난 네가 부러워. 너희의 평화로운 생활이 부러워. 하지만... 난 풍요로웠고, 가득 채워졌었어. 그런데 너희는 아무것도 누리지 못했지."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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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를 날리면 - 언론인 박성제가 기록한 공영방송 수난사
박성제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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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눈에 확 들어오는 이 책은 저자가 오롯이 겪어낸 공영방송의 수난사입니다. 최근 회지됐던 사건들의 세세한 사정과 현장의 목소리도 일부 들어 볼 수 있습니다. 다이내믹 코리아라 고 모든 일들이 그렇게 극적일 필요는 없을텐데, MBC와 그 구성원들이 암흑 속을 걸을 때도 최근 처럼 펄떡이는 모습을 보여 줄 때도 모든 과정이 마음을 졸이게 합니다. 그러나 책장을 덮으며 가슴에 돌덩이를 눌러 놓은 것 처럼 마음이 무거워 지는 건 앞서 이야기한 ‘수난사‘가 완결형이 아니라 저자가 책 말미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전에 없이 험난한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에서 ‘만나고 싶지 않은 친구’가 됐던 MBC가 지난한 투쟁과정을 지나 다시 ‘만나고 싶은 친구’가 되고자 노력한 이 모든 이야기가 ‘없었던 일‘이 되지 않기를 비랍니다.

‘국민의 방송’이란 이야기가 ‘이상’이 아니고 아직은 현실적으로 국민이 주인인 방송인데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KBS시청료 문제처럼 말입니다.
주인인 국민도 눈뜨고 코 베이지 않으려면 눈을 돌리지 않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도서를제공받았습니다

#mbc를날리면 #박성제#창비
#mbc를날리면서포터즈

수많은 뉴미디어 플랫폼에 산재한 전문가와 집단지성 에 의해 낱낱이 분해당하고 비판당한다. 예전처럼 대충 기사 쓰면 외면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 P103

가해자와 피해자, 피고와 원고, 합리와 불합리의 차이점을 무시 하고 대등하게 다루는 보도는 결코 ’좋은 보도‘가 아니다. 좋은 언 론인은 중립과 객관성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시청자와 독자 의 판단을 위해 시시비비를 가려줘야 한다. 어느 쪽 입장이 더 진 실에 부합하는지, 더 합리적인지, 더 상식적인지 끊임없이 취재하고 기사에 반영해야 한다. - P198

바닥에서 올라간 MBC의 신뢰도 역시 구성원들의 노력을 집단 지성이 인정해준 덕분이다. 지금 MBC가 마주한 위기는 정권이 어 떤 이유를 들이대도 ‘언론탄압’일 뿐이라는 것을 많은 국민들이 알 고 있다. MBC가 오직 국민만 바라본다면 이겨내지 못할 위기는 없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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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트레버 - 그 시절의 연인들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5
윌리엄 트레버 지음, 이선혜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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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패했어. 윈턴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어. 그녀는 자신의 집 앞에 와 있었다. - P86

에포스는 점점 더 늙어 가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는 지팡 이를 짚고 걸었으며 영화는 눈을 피로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전처 럼 책을 읽지도 않았고 애써 긴 대화를 나누는 것에도 싫증을 느꼈다.
그녀는 모든 변화를 지극히 철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또한 이 모든 변화에 보상이 따른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녀는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점점 더 큰 즐거움을 느꼈다. 그녀는 다시 살고 싶은 순간들을 아주 생생하게 다시 체험했다. 실제 삶에서와 달리, 원하는 순간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기 분좋은 일이었다. - P103

그녀는 작별 인사를 하면서 노먼턴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그를 집어삼킬 듯 쳐다보았다. 노먼턴은 저 눈이야말 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고 그녀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 는 것이라고 잠시 생각했다. - P266

그녀의 눈은 그녀가 뛰어난 자질을 지닌 여
•인임을 신비롭게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이 이른 아침에 그는 또 다른 진실을 깨달았다. 그는 허상에 불과했다. 그녀는 자질을 지었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 P269

애트리지는 두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들은, 애트리지가 마타라 부인의 난감 한 처지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해하려고 노력할 능력조차 없는 사 람들일지도 몰랐다. - P308

그런데 더모트는 조이스 씨가 베풀어 준 너그러움과 조심성을 보란 듯 이 내동댕이쳤다. 북아일랜드의 가톨릭교도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을, 수대에 걸쳐 가해진 부당함이 뒤틀려 그들이 내세우는 대의명분 의 빌미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평생 풀럼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노인에게 말해서는 안 되었다. - P345

말비 부인을 찌른 팔꿈치는 배상금 을 받게 될 테니, 게다가 입은 손해보다 더 많은 돈을 받게 될 테니 이 제 모든 문제는 해결된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또 그 팔꿈치는 말비 부인이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바뀐 환경에 적응해서 편하게 지내게 될 거라고 말하고 있었다. - P371

교사는 그녀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은 채 애매하게 고개를 끄 덕였다. 그는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죠, 말비 부인. 결손가정의 희생양들 말입니다." - P375

토리지는 여전히 토리지었기 때문에 이런 소문은 훌륭 한 농담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토리지를 미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 었기 때문에 농담이 터뜨리는 웃음 속에서 악의란 찾아볼 수 없었다. - P387

제 사람이 어렸을 때 누구나 인정하면 비슷한 생김세는 바인에 월
트셔와 메이스해밀틴 둘만 있을 때는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을 정도 밖에 안 되었다. 그러나 지금 애로스미스가 합류하면서 부족하던 부분을 보충해 주기라도 하듯 셋은 또다시 너무나 닮아 보였다. 세 남 자는 똑같이 살이 쪘고, 애로스미스의 얼굴에 감도는 분홍빛은 나머지 두 명의 얼굴에도 똑같이 어려 있었다. - P394

토리지는 전혀 살도 찌지 않았고 중년에 접어들면서 체중이 약간 줄었다. 그는 이제 오히려 호리호리해 보였고 움직임 역시 가벼웠다.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토리지는 조심성이 많은 탓인지 행동이 느렸었다. 옅은 색 리넨 양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토리지가 탭 댄서처럼 날렵한 걸음걸이로 우드랜즈 호텔의 식당을 가로질렀다. - P397

그녀는 잘은 모르 지만 토리지가 과거의 모습과 달라서 기뻤다. 그러나 그녀는 토리지 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에게서는 적의가, 예술품의 분위기를 풍기는 냉혹함이 느껴졌다. 그가 말한 순진성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재창조하기라도 한 듯 토리지 자체도 예술품처럼 보였다. - P400

테이블을 차지하고서 떠나지 않는 것은 바로 토리지었다. 차 가운 미소와 탭 댄서 같은 우아함으로 무장한 토리지는 분명히 실패한 어린 시절임에도 그 흘러간 시간에 등을 돌리지 않았고, 중년의 남 자가 되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모두의 눈앞에 앉아 있었다. - P408

그러나 어머니의 눈은 너는 실수하는 거라고, 성지순례 같은 과시적인 일을 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끊임없이 프랜시스에게 말하는 듯했다. ‘여정을 완벽하게 짰어.‘ 그의 형이 샌프란시스코에서 편지를 보냈다. ‘우리는 무엇 하나 놓치지 않을 거야.’ - P416

그러나 기억할 수 있는 한 그에게 익숙하기만 한 십사처는 지금 이 순간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예수의 수난 길은 그의 상상 속으로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몸이 지금 거칠게 떠밀리고 있는 시끌벅적한 길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다니는 소박한 성당이 문제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처럼 느껴졌다. - P420

그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침대에 가서 누우려고 자리에서 일어셨다.
그는 자신이 휘청거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신부가 담뱃재가 잔뜩 떨어진 사제복 차림으로 예루살렘에서 저렇게 취해 있다니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 P435

사랑은 정도를 벗어난 그들의 행위를 용서해 주었다. 그들은 오직 사랑 때문에 호텔 직원들의 눈을 속였고 이런 행동을 할 용기 를 얻었다. 노먼과 마리는 사랑이 모든 것을 용서해 줄 거라고 굳게 믿 었다. - P459

노면은 이따금 지하 철에서 눈을 감고는 그의 가슴속에 남은 크나큰 기쁨을 맛보면서 섬세한 줄무늬가 있는 대리석과 거대한 놋쇠 수도꼭지 그리고 두 사람 이 충분히 들어갈 만큼 커다란 욕조를 떠올리고는 했다. 이따금 그의 귓가에는 어렴풋한 음악 속에 섞인 현악기를 퉁기는 소리와 비틀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틀스는 엘리너 릭비를 비롯해 그 당시의 여러 인물들을 찬양한 것처럼 목욕탕에서의 사랑을 찬미하고 있었다. - P408

플랙스 교수는 남을 속일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그가 누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 사기꾼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는 이제 제임스 조이스 작품 동호회 회원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게 되었다. 24시간 안에 그의 학생들 역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 P547

"늙고 가엾은 플렉스 교수가 헤퍼넌한테 한 말이라고는 ‘ 아직 도 여기 있군요‘가 전부였어"
-중략-

우리는 플랙스 교수가 장난 삼아 건넨 농담에 대해서 말했고, 그 농담이 헤퍼넌의 자존심을 얼마 나 크게 상하게 했는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우리는 이야기 속의 젊은 여자를 도둑질로 이끈 사랑에 감탄했고, 나이 든 여자를 속임 수에 가담하게 만든 욕심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피츠패트릭은 자신의 지나친 나태함을 짧게 언급하면서 이 역시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인간의 나약함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 P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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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티처는 퀄런이 보이는 것보다 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퀼런이 마흔다섯쯤 됐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그는 열 살은 더 먹어 보 였다. 피스 티처가 퀄런에게 동정을 느낀 것은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외모, 아니 어쩌면 불안한 듯 텅 빈 눈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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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폭풍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2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이상해 옮김 / 레모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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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은 알았을지 모르나 초면인 작가 이렌 네미롭스키의 #프랑스픙조곡시리즈 중 한 권입니다.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을 모티브로 쓰여졌다는 이 작품은 2차 대전 당시 파리가 독일군에게 함락된 그 시점을 시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간헐적인 공습은 있어도 전쟁은 먼 곳의 일이라 생각하고 있던 파리의 시민들은 가까워지는 포탄 소리에 당황합니다. 베토벤 교향곡의 도입부처럼 시시각각 큰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적의 진군 소식에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피난을 떠나기 시작합니다. 부유한 페리캉 집안의 사람들, 유명한 작가, 골동품 수집가 그리고 은행에서 근무하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력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미쇼부부와 입대힌 그들의 아들 그리고 페리캉 집안의 하인들과 피난 길에 만나는 어려운 사람들. 밀려드는 피난민들에 당황한 시골 사람들. 그들의 행렬은 계속되고 독일군은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돈이 있어도 방을 구하거나 식료품을 사는 건 하늘의 별따기 입니다. 집 한채를 이고 갈 것 같았던 페리캉부인은 그 와중에 유산을 물려 줄 시아버지를 어느 시골집에 놔둔채 피난길을 서두릅니다. 차에 자리가 없어서 은행장을 따라 갈 수 없었던 미쇼부부는 중간에 파리로 돌아옵니다.
전쟁이 끝나고 피난을 떠났던 사람들이 파리로 돌아오고 마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참전해서 전사한 군인들도 많지만 파리를 떠났던 사람들 중에는 페리캉 집안의 첫째아들 필리프처럼 타지에서 어이없이 사망하거나 이제 다시 파리의 삶을 만끽하러 나섰다가 역시 어이없이 사고로 사망한 샤를 라줄레도 있습니다.
후세를 살고 있는 독자인 저는 그 전쟁의 끝이 1941년이 아닌 걸 알지만 작품 속의 파리 시민들에게 당시는 일단 전쟁이 끝나고 잠시나마 일상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은 아니았을까 싶습니다.
폭풍 속을 헤매는 것 같은 혼란한 피난의
와중에 사람들은 여과없이 살아남고자 하는 본성을
드러냅니다.
작품자체로 눈을 떼지 못하게 흥미진진합니다. 특히나 순간 순간 그 계절이 주는 아름다운 장면들을 각인시킬만큼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아서 전쟁이라는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등장 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그들의 얽히고 섥힌 관계릉 마주하게 되는 재미도 굉장했습니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올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를제공받았습니다.

"뭐야, 완전히 어린애잖아!" 여자들이 수군거렸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묵시록의 광경을, 기괴하게 생긴 끔찍한 괴물 같은 것 을 보게 되리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 P191

그 각각의 냄새는 땅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먹을 수 있는 작은 생명체들을 드러냈다. 풍뎅이, 들쥐, 귀뚜라미, 그리고 목소리에 맑은 눈물을 가득 담고 있 는 것 같은 작은 두꺼비. 은빛 털로 뒤덮인 분홍색 나팔 이나 메꽃처럼 뽀족하고 안쪽으로 살짝 말린 고양이의 기 다란 두 귀가 쫑긋 세워졌다. 알베르는 너무나 가늘고 신비 스러운, 하지만 자신에게만은 너무나 분명하게 들리는 암 흑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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