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 - 왜 개혁은 항상 실패할까? 2023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박영서 지음 / 들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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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다. 주거할 곳이 내 집이 있다는 것은 모든 생활에 안정감을 제공한다.

집에 대한 이야기를 조선시대에서 만나보는 책 "시시콜콜 조선부동산실록"을 읽었다. 시시콜콜 시리즈를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다시 살펴보니 맞다. 시시콜콜 조선복지실록을 읽었었다.

그럼 조선판 부동산 이야기 속으로 가보자.

조선에서는 향촌민에게 국방세, 토지세,특산품, 노동 의무 등이 부과되었는데 도성민에게는 노동 의무만 부담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역시 서울인가? 왜 서울사람에게는 노동만 부과되었나? 그럼 모두 서울에서 살고 싶지 않을까?

조선의 핵심 관계자들을 조핵관으로 표기를 한다면 그들은 바로 인근 궁궐 근처에 살았다. 그들이 칼을 갈고 왕에게로 돌린다면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이 갈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그들은 핵심관료인데다가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들인데 너무 한다. "서울 우대 정책"으로 인해 당시에도 조선에 많은 사람들이 몰렸다. 당시에도 무허가 판잣집이 많았다고 한다. 도로 위, 궁궐 근처, 산 위까지 건물을 올렷다고 한다. 집이란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는 소중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또 재미있었던 이야기는 기와보급정책이다. 조선 초기 초가집 사진을 보면서 상상이 안갔었는데 초가집이 굉장히 많았다. 불이 난다면 어떻게 될까? 다닥다닥 붙은 집들을 보면서 흔적도 없이 타버릴 것이 눈에 훤했다. 세종8년 한양 대화재 사건으로 기와공장을 설치하고 기와보급을 추진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 비리로 인해 원해 제공하기로 했던 재산에 따른 차등적인 방식에서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고 한다.

가쾌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조선 부동산을 주무르던 사람들을 말한다. 백 개의 복덕방과 오백명의 가쾌가 조선시대 있었다고 한다.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집문서의 위조 또한 당시에 있었는데 이것은 이후 일본인의 약탈로 이어졌다고 한다. 끔찍한 역사에 다시금 슬펐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과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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