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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 인간과 세계와 종교 이야기
류상태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1월
평점 :
종교에 관한 경험 1. 어릴 적이다. 외가 식구들이 가까이 살기에 주말에 외가댁에서 자주 모였다. 주말에 사촌들과 자고 일요일 아침, 외할머니가 사촌들 모두 교회 가라고 했다. 모두들 군말 없이 가는데, 유독 나만 안 간다고 떼썼던 기억이 난다. 나는 왜 그랬을까?(그 때가 아마 학교도 들어가기 전일 것이다.)
종교에 관한 경험 2. 군 훈련소 시절, 일요일에 종교참석이라는 것이 있다. 교회, 성당, 절 중에서 무조건 하나를 갔어야 했다. 종교가 없는 나는 가기 싫었지만(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납득이 안됨, 후반기 교육 때는 자유롭게 가는데...) 그나마 거부감이 없는 절을 갔다. 거기서 스님(인지도 모르겠지만) 설교 중에 교회, 성당에 사람들이 가지 말고 자기한테만 오게 해 주소서와 같은 발언은 무척 충격이었다.
종교에 관한 생각 1. 9.11테러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 당시 방송에 의문이 있었다. ‘왜 미국 방송만 보도 자료로 내 보내주는 거지?’ 그러다 한 케이블에서 중동 방송을 보도해 주는 것을 봤다. ‘그래! 이래야지. 우리는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잖아. 한 쪽만 볼 것이 아니라 양쪽을 다 볼 수 있는 상황이라고. 다른 사람들은 이쪽이 아닌 저쪽의 이야기는 궁금하지 않나?’
『교양으로 읽는 세계 종교』를 선택한 것은 제목 그대로다. 종교에 관한 교양을 쌓기 위함이었다. 대학시절, 9.11 테러가 발생하고 그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의 이라크를 침공하는 등의 갈등 중심에는 종교가 있다. 익숙하지 않은 ‘이슬람’이 궁금했기에, 얇은 책을 읽었다. 그 때 얻은 지식이 머리에 남아 있지 않다. IS에 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요즘이기에 ‘종교’에 관한 책이, 그리고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 본 책에 눈이 같다.
본 책은 7장으로 구성 되어 있지만, 크게 보면 2부로 구분할 수 있다. 1~5장은 각 종교에 대해 알아 볼 수 있고, 6~7장은 종교에 대한 저자의 생각, 나아가야 할 방향 서술되어 있다. 내가 느끼기에는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은 6~7장이다. 저자의 주장이 매우 공감하고 종교인이라면 당연히 전제되어야 자세라고, 비종교인인 나는 생각한다.
본 책을 통해 유일산 종교, 인도 종교, 동아시아 종교에 대해 실팔 수 있다. 내가 모순되게 느껴지는 것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이 반목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경전 또한 일부분 공유하면서 왜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138쪽) 이슬람에서의 예수의 위치 : 이슬람교와 그리스도교가 믿는 신은 같다. 예수의 탄생을 예언한 가브리엘 천사는 무함마드에게도 나타나 하느님의 계시를 전달해주었다. 두 종교의 신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언자를 보냈는데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을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물론 이슬람교에서도 존경받는 예언자다. 예수 역시 이슬람교에서 존경받는 예언자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신의 아들로 믿는 그리스도교와 결정적 차이가 생긴다. 무슬림은 예수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여러 기적을 행했다는 것도 받아들인다. 하지만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신의 아들이라는 교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종교를 가졌다 함은 가르침만을 무작정 믿는 것이 아니라 가르침을 행하기 위해 노력해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경전에 있는 것을 그대로 믿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 당시의 글과 생각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을, 지금과는 다른 상황이었다는 것은 충분히 숙지하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250쪽) 신의 전능성을 유한한 인건이 어찌 완전히 이해할 수 잇겠는가? 그러므로 신의 전능성을 믿는 사람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 늘 신중하고 함부로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254쪽) 16세기 서구에서 일어난 교회개혁운동을 ‘종교개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종교개혁’이 아니라 ‘교회개혁’이라고 해야 적절하다. ‘종교개혁’이라는 표현에는 마치 그리스도교만이 종교고, 다른 종교는 종교가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무지 또는 독선이 깔려 있다.
(265쪽) 엄밀히 말하면 하느님은 ‘인격적인 분’이 아니라 ‘초인격적인 그 무엇’이다. “말이 신을 믿었다면 그 신은 말처럼 생겼을 것이다”라는 서양 속담처럼 신을 사람의 모습을 한 인격적 존재로 이해한 것은 고대인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을 인격이라는 개념 안에 가두지 말고 풀어드리는 것이 어떠할까?
(280쪽) 경전에서 진정한 신의 말씀을 들으려면 원석을 용광로에 녹여 순금을 뽑아내듯 ‘Text(본문)’뿐 아니라 ‘Context(본문이 기록되기까지 역사적 정황과 저자의 의도 등 본문의 배경)까지 충분히 연구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온전한 신의 말씀에 다가갈 수 있다. 과거의 교리에 매이지 않는 열린 신학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