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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세상이 묻고 인문학이 답하다 ㅣ 플라톤 아카데미 총서
고은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본 책은 플라톤아카데미에서 진행한
인문한 대중강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Beautiful
life」이라는 명제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아름다운 인생인가’ 이라는 주제로 강연이 진행되었다. ‘나는 누구인가’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이미 출간이 되었고 현재 ‘무엇인 아름다운 인생인가’의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http://www.platonacademy.org/sub/sub03_10_5.php
이미 강의 신청이 모두 완료되었다고 함)
‘어떻게 살 것인가’ 강연을 직접
청강하고 싶었으나 시간+거리의 문제로 포기했었다. 하지만 ‘책’으로 대신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망설이지 않고 신청하였다. 또한 ‘나는
누구인가’(http://fogperson.blog.me/220114652360)도
작년에 읽었기에 시리즈 완독을 위해서라도 읽고 싶었다.
목차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12명
석학 강연이 담겨져 있다. 아는 분들도 있고 처음 듣는 분들도 있고.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에 포스트잇을 붙이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페이지에 테이프가 붙었다. 개인적으로는 1부. 너를 살피고 나를 다스리는 지혜의 강연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하지만 제일 마음에 들었던 내용은
2부에 속해 있는 최인철 교수의 ‘행복은 몸에 있다’ 이다. 최인철 교수는 행복을 다룰 때 ‘몸’이 ‘마음’에 비해 간과되는 것에 비해 ‘몸’도
‘마음’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최교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살짝 바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고 묻는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삶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신나게 살기, 의미 있게 살기, 몰두하며 살기. 이렇게 세 가지 삶의 형태가 적절한 균형을 이룰 때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강연자는 행복이 지나치게 ‘심리화’되고 있는 것을 우려한다. 최인철 교수의 주장을 일부분
옮겨보자.
“심리학자인 제가 마음과 몸이 모두
중요하다고 믿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마음과 몸은 완전히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임바디드(embdlied)라고 표현합니다. 마음이 ‘신체화 되어 있다’ 는 뜻으로, 우리의 마음 상태는 몸을 통해
드러나고 몸의 상태는 마음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지요.”-p238
“심리학자들의 이로운 행동을 먼저
하면 선한 마음이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어도 먼저 행동을 실행에 옮겨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p239
사람들은 어던 경험을 할 대 신이
나고 , 의미 있게 생각하며, 몰입할 수 잇는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세 가지 영양소는 바로 자유, 유능감,
관계입니다-240쪽
○ 무언가를 소유하기 위해 소비할
것인가, 무언인가 경험하고 체험하기 위해 돈을 쓸 것이냐 : 재화를 소비했을 때 느끼는 행복은 경험을 소비했을 때보다 강도가 훨씬 약할 뿐만
아니라 지속성도 떨어짐→돈 문제에 대한 대안 : 어차피 소비해야 한다면 경험을 사는 쪽을 택하라!
○‘제3의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일상에서 행복을 경험할 가능성이 큼. 친한 사람들끼리 즐겨 찾는 공간을 만드는 일은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또 하나의 강력한 방법.
- 제3의 공간의 특징 : 격식과
서열이 없는 곳, 소박한 곳, 수다를 떨 수 있는 곳, 출입이 자유로운 곳, 음식이 있는 곳
행복은 몸에 있다 라는 강연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행복의 기원’을 통해 생각하게 된 부분들은 이 강연에서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강연 외에도 징비록, 화쟁, 시를
주제로 한 강연들의 내용이 좋았다.『징비록』의 경우는 요즘 보기 시작한 드라마이고, ‘역사 그 날’을 통해 약간 맛을 봤기에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원래 조총은 ‘날아가는 새를 맞춰서
떨어트리다’는 것에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그런데 일본 사람들은 조총이라는 중국말 대신 총을 만든 금속에 주목해 철포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철포의 일본식 발음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뎃뽀입니다. 따라서 이 전투는 뎃뽀를 가진 자와 뎃뽀를 가지지 못한 자, 즉 무-뎃뽀이
싸움이었습니다. ‘무데뽀’라는 단어는 바로 이 전투(일본 나가시노 전투)를 계기로 만들어
졌습니다-40쪽
‘화쟁’ 사상을 통해 현재의 문제
등을 풀어가는 강의에도 마음에 드는 부분들이 많았다.
인문학과 예술이 사회적 공공재라는
것은 곧 ‘나’를 넘어선 ‘이웃’에 대한 관심 그리고 사회적 공동선의 실현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컨대 개인의 교양과 지식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문정신으로, 시민의 지혜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80쪽
“우리 모두는 장님처럼 부분적
진리밖에 알지 못하며, 이것을 떠나 따로 진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우리에게는 부분적 진리만 있으니 모두 겸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나에게는 내가 만진 것만이 유일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나의 경험과 지식만이 진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경험과 지식도
진리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효의 개시개비의 핵심은 누구도 앞을 보지 못하는 상태일 수 있으니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도 옳을 수 있다는 생각, 이것이 곧 화쟁입니다.-87쪽
대화에 잇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주관을 ‘체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화의 가능성이 열리게 됩니다.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한다는 것은 바로 그 체념의 한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내 경험과 지식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자기의 주관을 포기할 수 있는 ‘극기’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시와 타자의 목소리’에서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끌렸다.
우리 안에도 영원한 타자가
존재합니다. 결코 다른 사람 앞에 드러내기 싫은 부분이 있지요.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아오던 때에는 무조건 서양 것을
멋지고 지적이고 고귀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늘 접해오던 익숙한 것, 내 주변의 것들은 비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것은 그
속까지 다 알고 있는 반면, 서양의 것은 단지 겉으로 드러난 모습밖에 알 수 없어서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타자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기 때문에, 외국의 낯선 얼굴과 모양새가 좋아보였던 것이지요.
이 외에도 여기저기 표시한 것들이
많지만, 다시 한번 읽어보겠다는 다짐으로 대신한다. 지금 강연이 진행 중이고 앞으로 책으로 만날 ‘어떻게 죽을 것인가’도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