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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을 지휘하라 - 지속 가능한 창조와 혁신을 이끄는 힘, 확장판
에드 캣멀.에이미 월러스 지음, 윤태경.조기준 옮김 / 와이즈베리 / 2025년 1월
평점 :
픽사의 애니메이션 중 월-E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말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주인공 로봇, 디테일하게 설계된 미래 세계, 그리고 환경 문제에 대한 메시지까지. 극장에서 매우 재미나게 봤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는 <인사이드 아웃>을 인상 깊게 봤다. 감정을 의인화하여 고군분투 하는 내용을 보면서, 아 이건 어린이용이 아니다. 성인도 충분히 공감하는 내용이다! 라면서 즐겁게 봤다.
그러던 중 픽사의 공동 창립자 에드 캣멀의 책 <창의성을 지휘하라> 확장판이 나오고,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픽사의 최고경영자는 창의성을 어떻게 지휘했을까?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개념은 브레인 트러스트(Braintrust)였다. 이 회의에서 중요한 건 ‘누가’ 말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느냐다. 직급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중심이 되는 구조. 이게 가능하다는 게 신기했다. 보통 회사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적당한 말만 주고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분위기도 많이 옅어진 거 같다) 하지만 픽사에서는 서로 거침없이 비판하면서도 감정을 상하지 않게 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다. 결국 창의성이란 개인의 역량만이 아니라, 그것을 지지해주는 환경이 있을 때 살아남는다!!!
마음에 남았던 또 다른 부분은 실패를 대하는 태도였다. 픽사는 실패를 피하는 조직이 아니라, 실패를 통해 배우는 조직이다. 대표적인 예가 토이 스토리 2의 재개발 과정이다. 초기 버전이 엉망이었다는 걸 인정하고, 대대적인 수정을 감행했다. 우리나라 조직 문화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대개는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가자’는 식으로 밀어붙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픽사는 기존의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라면 말이다.
디자인적 사고에서 실패는 단순히 좌절이 아니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예를 들어, 디자이너들이 최종 결과물을 만들기 전에 수십 개의 스케치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 아이디어가 최선이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픽사의 스토리 개발 과정도 마찬가지다. 초기 콘셉트 단계에서 수많은 시도가 이뤄지고, 완전히 엎어지는 일도 많다. 중요한 건 그 과정을 통해 점점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픽사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 초기에는 전통적인 극장 개봉을 중심으로 운영되었지만 스트리밍 시장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방식의 콘텐츠 제작과 배급을 실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픽사의 이러한 변화는 디자인 사고의 핵심 원리 중 하나인 ‘사용자 중심 접근법’과도 맞닿아 있다. 예전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이 이제는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본다. 그렇다면 픽사는 단순히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관객이 원하는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을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처럼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 자체가 창의성을 유지하는 비결이 된다.
책을 덮고 나니 자연스럽게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 창의적인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속한 조직은 창의성을 키우는가, 아니면 억누르는가?
픽사의 방식이 모든 조직에서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출발점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조직이든 개인이든 끊임없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배우는 과정 속에서 창의성이 자란다는 점이다.
다만 창의성은 무지와 제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창의성은 기본적인 지식의 토대가 필요하다. 이와 같이 적절한 환경과 유연한 사고방식이 뒷받침될 때,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 조직에 적용한다면 우선 직원 개개인의 충분한 전문 지식을 쌓는 것이 우선이다. 그 후에 유연함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것. 그것이 우리 조직의 창의성을 지휘하는 법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