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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에서 남편들이 내려와
홀리 그라마치오 지음, 김은영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재밌는 설정의 소설을 읽었다. 다락방에 남편이 올라갔다 내려오면 남편이 바뀐다?! 자의든 타의든 남편이 다락방에 완전히 들어갔다 나오면 다른 사람이 내려온다. 남편이 바뀐다는 설정을 아내나 회사 동료에게 말하니 <뷰티 인사이드>가 생각난다고 한다. 나도 책에 대한 소개를 처음 봤을 때 그 영화가 생각났다. 하지만 외모가 바뀌는 점만 같을 뿐 많이 다르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에서는 남자의 외모만 바뀐다. 그의 기억, 그들이 사는 세상은 그대로다. <다락방에서 남편들이 내려와>에서는 남편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단순히 남편만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주인공 로렌의 직업, 그녀의 핸드폰에 들어있던 기록들, 그녀를 뺀 주변의 사람들의 기억까지도 모두 변한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남편이 바꾸면 이웃과의 관계도 매번 다르게 설정된다. 마치 게임의 등장인물을 바뀌면 거기에 맞춰 설정이 바꾸는 것처럼.
꽤 늦은 밤이었다. 그녀는 친구 엘레나의 결혼 축하 모임을 즐기고 집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현관문을 아니 계단 위에서 웬 키 큰 남자가 그녀를 맞이했다. (…)
순간 휴대폰 잠금화면이 로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해변을 배경으로 선 자신, 그리고 자신의 허리를 감싸 안은 한 남자. 그 남자가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
불이 켜지자 낯선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나갈 때만 해도 분명 초록색이었던 소파가 갈색으로 변했고, 벽에 걸린 시계에는 숫자가 대신 로마 숫자가 박혀있었다. (…)
주인공 로렌은 미혼이다. 어느 날 친구의 결혼 축하 모임을 가지고 술에 취해 집에 왔는데, 세상에나 웬 남자가 자기 남편이라고 한다. 엥? 더 이상한 것은 집의 소품이나 가구의 배치도 바뀌어있다. 더 신기한 것은 자기는 기억이 없는데 폰 안에 연애, 결혼한 흔적이 있다. 로렌 빼고 엄마, 언니, 이웃, 친구들은 그의 존재가 자연스럽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내가 결혼을 했다고? 아주 조금, 겨우 받아들일까말까 하는데... 맙소사. 다락방에 올라가더니 다른 사람이 온다. 혹시나 하고 올려보니 다른 사람이 내려오더라... 뭐지뭐지?
<다락방에서 남편들이 내려와>는 이처럼 남편이 다락방에 올라갔다 오면 바뀌게 되는 로렌의 이야기이다. 재밌는 설정은 로렌이 기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혼에서 순식간에 남편이 있는 상황으로 바뀌게 된다. 기혼이 아닌 미혼으로 한 것은 작가의 의도일 듯하다. 기혼자였으면 본래의 남편을 선택하는 뻔한 클리세가 되지 않았을까? 미혼에서 졸지에 기혼이 되었기에 마음에는 남편 찾기를 계속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재미는 남편을 계속 바꿀 수 있는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최대한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이 바뀌면 로렌의 삶도 바뀌기에 여러 삶을 경험할 수 있다. 한 번은 계속 하고픈 남편을 만났다. 남편인 카터가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다락방에 올라간 바람에 그를 그리워한다. 신기한 점은 남편이 바뀌었다고 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바뀐 세상에서는 그 이름 그 외모 그대로인지만, 로렌의 남편이 아닌 다른 생을 산다. 로렌은 카터를 보기위해 영국에서 미국까지 찾아가서 만난다. 하지만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남편 바꾸다 보니 자신과 같은 ‘상황’의 남편도 만난다. ‘보하이’라는 남편은 로렌처럼 배우자가 바뀌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더라. 로렌과 다른 점은, 로렌은 남편이 바뀌어서 내려오는 것이지만 보하이는 옷장 같은 곳에 들어갔다 나오면 다른 장소로 나오고 삶이 바뀌어있는 것이다. 둘이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고 결국 보하이도 다락방에 들어간다. 하지만 로렌도 보하이도 둘의 기억은 바꾸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안도감이 얼마나 클까.
남편이 바뀌지 않는, 내 삶이 연속되게 유지할 수 방법은 무엇일까? 이 남자와 계속 하고 싶다면 그 집을 떠나면 된다. 다락방에 남편이 안 올라가면 되니깐. 그게 아니라면 남편과 헤어지고 그를 내보내면 된다. 그럼 로렌은 삶이 유지되면서 미혼이거나 새로 결혼하면 되는 것이다.
읽을 때 몰랐는데 후감을 쓰다 보니 마치 게임과 같다. 이상한 세계로 갑자기 전송된 주인공, 그리고 마주치는 새로운 퀘스트. 퀘스트 수행 중 만나는 동료. 그리고 퀘스트의 결말.
로렌은 새로운 세계에 떨어진 주인기오, 남편이 바뀌는 것은 계속 되는 퀘스트이다. 로렌과 같은 처지에 처한 보하이와 만나게 된 것은 동료를 얻게 되는 그것과 같다.
남편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 그걸 선택하게 되는 로렌. 로렌은 이제 이런 상황을 막고자 한다. 그녀가 선택한 것은 다락방을 없애는 것이었으니.. 수 백 명의 남편을 바꾼 로렌의 여정은 다음 문장으로 끝난다.
“다행이야. 우리에게 서로가 있어서.”
내가 결혼을 해서인가. 마무리, 마지막 문장이 참으로 좋았다. 다행이야, 우리에게 서로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