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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세탁소 -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하이디 지음, 박주선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4월
평점 :
책에 대한 제목만을 봤을 때, 일본 소설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표지와 제목이 작년에 읽은 ‘타세요, 미래를 바꿔주는 택시입니다.’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을 받고 작가에 대한 소개를 보니 일본 소설은 아니다. 작가의 필명은 하이디, 본명은 리자원. 리자원이라는 이름 때문에 중국 소설인가 싶었는데 저자는 대만 사람이다. 심리 상담가로서 전문 서적을 쓸 때는 리자원, 소설을 쓸 때는 하이디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고 한다. 저자는 아들러심리학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 석사학위를 받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부터 책 내용, 스포일러 포함됩니다.)
세탁소답게 세탁물로 내용이 구분되어 있다. 손수건, 셔츠, 속싸개, 배낭, 가방, 축구화, 스웨터, 목도리. 아홉 번째 세탁물을 특이하게 ‘기억’이다. 각각 세탁물과 연관된 이야기가 있다. 여학생이 손수건을 세탁소에 맡기러 오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세 번째 세탁물까지는 비슷한 구조로 이어진다. 세탁소에 세탁물을 들고 차장온다. 소중한 물건을 원래대로 만들고 싶은 손님. 세탁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손님들, 그리고 손님에게 삶의 조언(?)을 해주는 세탁소 사장님. 그런데 네 번째 세탁물 ‘작별 배낭’에서는 시점과 장소가 바뀐다. 세탁소가 아니다. ‘아성’이라는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성이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엄마의 이모에게 맡겨진다. 맡겨지는 날 아성이가 메고 있던 가방의 끈이 뜯어진다. 갑자기 왠 아이의 이야기라고 할지도 있지만 우리는 곧 알 수 있다. 아성이라는 세탁소 사장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제 소설은 세탁물의 맡기러 온 손님의 이야기와 세탁소 사장 아성이의 지난날의 이야기가 교대로 진행된다. 세탁소물을 맡기러 갔다가 일종의 상담을 받은 손님들은 깨달음을 얻고 돌아간다. 이렇게 옴니버스 식으로만 소설이 진행되는지 알았는데, 후반부에는 세탁소 사장 ‘아성’의 이야기다. 어릴 적에 헤어진 어머니를 수소문에서 만났지만 치매에 걸린 엄마는 아성을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다음날 세탁소를 찾은 어머니는 정신이 잠깐 돌아온 거 같지만 기억은 과거에 멈춰 있는 듯하다. 세월의 흐름을 가늠하지 못하고 여전히 아성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렇게 돌아가려던 찰나 아성이 헤어진 날의 일과 끈허진 가방에 대해서 말하자, 아성의 엄마는 깨닫고 아성이를 알아보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된다.
나는 본 책이 본격 소설보다는 소설형 자기계발서로 느껴진다. 앞에서 말했듯이 저자는 상담심리학을 전공했다. 독자에게 전달하고 알려주고 싶은 것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작가는 알려주고 있다. 소설에서 괴로움을 안고 세탁소를 찾은 손님에게 해주는 사장의 조언이 사실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다.
-이 캔이 비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커피 향으로 가득 찼다고 말할 수도 있죠. ‘비었다’라고 해서 꼭 빈 것만은 아니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여백’도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미 가득 차 있을 수 있어요.
-사람들은 본질은 오해하여 결혼이 사랑의 무덤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하지만 사랑을 끝내는 건 결혼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더는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고 상대의 마음을 들으려 하지 않는 태도이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찾ㅇ작이란 책을 내기 전까지 모든 감정을 홀로 소화해야 하는 외롭고 힘든 여정이다. 하지만 ‘출판’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기에 외롭긴 해도 가장 힘든 과정은 아니다. 출판된 이후에야 비소로 진짜 시련이 시작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어떤 모습으로 바뀌고 싶은지를 위해 노력하는 거죠. ‘너무 노력하지 않는 노력’, 그러니까 바다에서 빨리 헤엄칠지 느리게 헤엄칠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거에요. 자기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만 기억하면 돼요.
-물건에 대한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소중히 여기다 못해 손에서 놓지 못하는가 반면, 어떤 사람은 혹시나 더러워지고 상할까 봐 쓰지도 못하고 소중히 간직하려고 한다. 이처럼 물건을 아끼는 방식은 그 물건의 주인만 알 수 있다.
-통제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잇는 건 감정을 조절하는 것뿐이야
-물건은 여전히 같은 거고,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아. 마음으로 느낄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그건 단지 우리가 보는 눈이 다르기 때문이야. 그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란다.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시간 세탁소. 여러 물건에 깃든 일화, 그것에 대한 기억과 태도는 마치 우리의 모습 같다. 부정적인 마음을 긍정적으로 바꾸고 여러 조언을 부담 없이 얻고 싶다면 한 번 읽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저자후기 중)
-어떤 심리학자들은 깊은 기억은 판도라의 상자와 같아서 함부로 펼쳐서는 안 되며, 섣불리 들여다보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저는 상담 과장에서 기억이 사람들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보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제든 오늘이든 내일이든 간에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들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귀중한 자원이며 상처를 치유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개인의 객관적인 경험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주관적인 해석이기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실제 상황과 상관없이 개인의 삶의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주목합니다. 적절한 시가에 주인공과 함께 들여다보면 아무리 어두운 기억의 조각일지라도 구원의 서광이 될 수 있습니다. 세탁소 사장이 소중히 역니는 것은 세탁물 자체의 가치일 뿐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이기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비록 기억이 가장 믿을만한 동맹은 아닐지라도 기억의 감정은 항상 우리에게 마음속 깊은 곳의 열망을 보게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