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
민이안 지음 / 북폴리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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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라 소개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책 소개만 보고 책에 대해 더 찾지도 않고 신청을 했다.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 제목만 본다면 공포소설의 느낌이 난다. 예전에 인상 깊게 본 영화가 떠오른다. <베리드>라는 외국영화였는데 눈을 뜬 곳은 무덤이었다라는 문장이 어울리게, 주인공이 관 안에서 눈을 뜨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이번 소설은 SF라고 했으니 베리드 같은 내용은 아니겠지만 어떤 설정일지 궁금했다. 눈을 뜨기 전까지 겪은 일이 가상현실이었던가, 새로운 몸을 얻어서 깨어 난다와 같은 설정일까? 이번 이야기는 어떨까?

 

주인공은 자기가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눈을 뜬다. 주인공 시점으로 묘사되는 그곳은 내가 알던 무덤과 다르다. 주인공도 무덤이란 생각을 못한다. 하지만 무덤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화자가 있는 곳은 무덤이라 할 수 있다.

화자가 깨어난 곳은 안드로이드가 버려지는 곳이다. 죽어서 묻히는 곳을 무덤이라 한다면 쓰임을 다한 안드로이드가 버려지는 곳도 무덤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은 안드로이드가 버려지는 업사이클링센터 24호점이다.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다.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내 몸이 기계인 것도 인지한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을 인간이라고 믿는다. 업사이클링센터에서 공격을 당하고 다른 안드로이드를 만났다. 그러면서 자기가 최신형 4세대 안드로이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라고 불리는 안드로이드를 따라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주인공. 자신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기 위해 과 동행하기로 한다. 달은 주인공에게 풀벌레라고 이름을 붙여준다.

 

풀벌레가 깨어난 세상은 인간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안드로이드가 스스로 살아간다. 안드로이드에게는 각자의 명령어가 있다. 명령을 수행하고 결과 보고서를 주인에게 보내고 그것을 기다리고. 오지 않아도 살아가는 안드로이드. 주인공 풀벌레와 함께 지내는 달도 파란 장미를 찾고 세상의 모든 씨앗을 찾는 명령어를 수행중이다.

작가는 안드로이드라는 존재를 통해 사람도 각자의 소명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땅에 온 모두에게는 각자의 소명이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은 삶을 충실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소명이란 것을 찾지 못한다면 오히려 방황하게 될 것이다.

 

풀벌레는 달과 함께 여러 일을 겪고 마침내 자신에 대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먼 미래, 인간은 냉동되고 다시 해동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그 방법 중 하나가 냉동 인간을 용해한 다음 내구성 좋은 골격에 인류를 재생성하는 방법이었다. 마치 곤충의 우화처럼.

이 부분은 냉동인간은 해동될 수 없는 현재 기술을 알려주는 한 편 자연의 신비를 보여준다. 우리는 태어나면 그 모습으로 자라나지만 곤충은 번데기의 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모습의 개체가 된다.

재생성을 통해 신인류가 되는 과정은 가능성을 보였지만 결국 실패한다. 깨어났지만 새 몸에서 오는 괴리감을 견디지 못했다. 그렇게 폐기되는 프로젝트 중에 주인공 풀벌레가 우연히 끼어있던 것이다.

 

네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 것은 재생성 프로세스가 99.98퍼센트까지만 이루어진 상태에서 프로그램이 강제 종료되었기 때문에 주청하고 있어.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너는 누구보다도 새 몸에 잘 적응했어. 너야말로 이 가브리엘 프로젝트의 유일한 성공작이자 나의 희망이야.”

완벽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성공할 수 있음을 작가는 말하고 싶은가 보다. 완벽을 쫓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작가의 의도? 주인공 풀벌레도 자신의 기억을 찾기 않는다.

풀벌레는 초A.I가 인정하는 유일한 인간이다. 인간에게 명령을 받는 안드로이드는 풀벌레에게 새로운 명령을 내려주기 원한다. 풀벌레는 어떤 명령을 내리는지 직접 소설에서 확인을.

 

인간을 재생성해서 기계 몸으로 깨어나는 것은 인간일까 아닐까? ‘인간에 대한 정의가 아주 먼 미래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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