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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짓 - 최악의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한국의 관료들
최동석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제목이 다른 책을 떠올리게 한다.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이란 책이 생각난다. <넛지> 작가가 쓴 책인데 일부러 그 책과 헷갈리게 붙인 제목은 아닐까?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정말 오해다. 1998년 <똑똑한 자들의 멍청한 짓> 이름으로 이 책이 먼저 출간됐다. IMF를 겪고 난 후 관료체계로 다시는 어려움이 일어나지 않을 마음으로 썼단다. 그런데 2014년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
저자는 16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관료조직의 문제에 대해 개탄하면서 다시 책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4년이 지나 이번에는 2판이 나온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을 모르고 이번에 21세기북스에서 서평단을 모집하기에 최근에 나온 신간인 줄 알았다.
내가 책에 끌렸던 것은 제목도 아니고 저자도 아니다. ‘최악의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한국의 관료들’ 부제에 있는 ‘한국의 관료들’이란 단어가 눈에 딱 들여왔다. 우리나라 관료조직 혹은 공공조직에 대한 문제를 짚어내는 책 같아서 기대가 됐다. 내가 일하는 곳이 크게 보면 관료조직일수 도 있기 때문이다.
책의 많은 이야기를 들어내고 내가 본 책의 주제는 ‘품의제도의 문제와 그 대안’이다. 저자는 관료조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 국가나 정부에서 일어나는 어이없는 일들의 원인을 ‘품의제도’에서 찾고 있다. ‘품의하다’는 말이 나에게는 매우 익숙하다. 내가 속한 곳에서는 “품의 해, 기안 올려”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품의제도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제도라는 주장도 있지만 저자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품의제도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픔의제도의 결함>
① 무슨 일이 어디서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다.
② 합리적 의사결정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③ 조직의 폐쇄성을 강화시킨다.
④ 결과에 대해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⑤ 전문성을 키울 수 없다.
⑥ 중요한 결정은 품의대상이 아니다.
위에 열거된 것을 회사생활에 대입해 보면 몇 가지는 매우 크게 공감한다. 보고를 하기 전까지 어디서 어떻게 벌어지는 알 수 없으면, 합리적 의사결정이란 것은 없다. 장-윗사람의 결정만 있을 뿐이다. 저자가 말해주는 사례에서 나도 옛 생각이 났다. 문서를 작성해서 팀장을 보여주면 이리저리 고친다. 그걸 가지고 다시 부서장에서 들고 나면 이번에도 또 고친다. 나는 두 번이나 다시 문서를 작성한다. 이렇게 휙휙 바뀔 때 때마다, 팀장님을 건너뛰고 바로 부서장을 보여주고 싶었다.
전문성을 키울 수 없다는 말도 공감하다. 저자는 순환보직에 폐해로 우리나라 외교와 통상 공무원의 문제를 지적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한국은 누구와 이야기를 할 줄 모르겠다고... 몇 년 지나면 담당자가 바뀌는 세태를 꼬집은 것이다. 우리 회사도 보면 몇 년 단위 전보를 낸다. 내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간혹 몇 명은 통상적인 기간보다 길게 그 자리에 있기도 하지만 소수다.) 그래서 나는 “우리 회사는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리셋이 된다. 이래서 축적, 업데이트가 안 되니 매번 제자리인 것이다.이런 제도에서 발전이 쉽겠는가?”
중요한 결정은 품의대상이 아니다 또한 저자가 매우 정확히 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 방향이라고 할까나? 위에서 방향은 정하고 밑에서는 그 방향대로 갈 뿐이요, 방향에 가속도만 낼 수 있도록 근거를 찾는다.
그런데 나는 이게 과연 품의제도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품의제도의 단점이 아닌 관료 구조의 특징, 계층적 조직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사기업에서도 저자가 지적한 결함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품의제도의 대안으로 ‘단위업무담당제’라고 이름 붙인 형태를 주장한다. 저자의 주장일 읽다보니 마치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형태, 현재의 부서가 저자의 주장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속한 부서는 담당자별로 업무가 확연히 구분되어 있다. 특히나 내 업무는 나의 주도하에 일이 진행된다. 결제 선에서 크게 관여하지 않고 내가 진행하고자 하는 대로 상당 부분이 이뤄진다. 어떻게 보면 내 맘대로 일을 조절할 수 있다. 이게 편한 것 같지만 그만큼 책임감이 크다. 온전히 나로 인해 좌지우지되는 상황이 더 조심스러워진다. 마냥 좋은 것이 아니다.
저자는 이와 함께 인사고과제도가 함께 변해야 한다고 한다. 동감한다. 단위업무담당제로 해도 일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조치가 처해지지 않는다면 조직이 잘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주장 중에 독일 근로자는 빨리 퇴직하고 싶어 하는데 반해 한국에서는 퇴직은 미루고 싶어 한다는 일화가 씁쓸했다. 노후 준비와도 연관이 있겠지만 한국의 조직에서는 위로 올라갈수록 권한은 많아지고 책임이 줄어드는 데 비해 외국에서는 권한에 맞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한국은 그 자리에 더 있고 싶어 하는 반면에 외국은 그 자리에 아예 안 올라가거나 그 자리를 오래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뿐만 아니라 군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는 달라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