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숙만필
황인숙 지음 / 마음산책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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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숲속을 거닌 듯하다.  산책 하듯 걸으면 눈에 들어오는 나무. 하늘. 풀 .그리고 새소리. 바람. 향기... 모두  무심히 스쳐 갔을 뿐인데 숲을 빠져 나오면    '선물'이  들려 있다. 자연이 주는 선물,  '순수'와 '생명'이다.  글자 사이사이를 아무 생각없이 그냥 걸었다. 자잘한 이야기, 웃음, 생각들은  순수하고 천진스런 생명이 담뿍 담겨있다. 열망과 의지로 뭉쳐진 생명이 아니라 '본래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생명이다.

너무 오랜만에 문학적 수필을 읽어서 기쁨이 더 큰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만필 쓰기는 솜씨를 한껏 뽐내며 더 유려하고 맛깔나게 쓸 수 있는 작가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책 갈피 갈피에서 묻어나는 향기는 결코 작위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오히려 향수를 뿌리려 했다가 독자의 고개를 돌리게 만들 수도 있다. 황인숙의 이 책은 충분히 향기롭다. 

40줄에 들어선 옥탁방 비혼의 여성은 세속적인 눈으로 보자면 불행한 삶이다. 주류에 편입되기 위한 그 무엇도 없다.  그러나 얻으려 발부둥치다  미끄러진게  아니라  '무심'하다.  결단의 구도를 통한 깨달음도 아니고 세상에 대한 분노나 시니컬함도 없다.  힘을 스윽 빼고, 유쾌하게, 다정한 눈길로 삶을 걸어간다. 고종석씨가 발문에 '귀족'이라 평했다. 가장 합당한 말이다. 정신적 귀족....

누구나 자기 인생의 창조자란 의미로 보자면 그의 글이 어떤 평가를 받든 그는 빼어난  예술가이다. 별 다섯을 황인숙 그에게 준다. 귀족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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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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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두 번째 읽는 박노자씨의 책, 역시 따갑다. 국정교과서와 친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다. 충실한 학생이었다면 선생들이 밑줄 그으며 민족적 자부심을 고취하던 역사들이 허접한 사실이었다는 것에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겠는가.

화와 독립을 주도했던 지식인들의 이념성을 박노자씨는 끈질기게 물고 비판하며 일제침략기를 통한 가장 큰 손실을‘제국주의 논리를 내면화’한 것이라 본다.

문명이 야만을 정벌할 권리가 있다고 봤던 [독립신문] 필진들의 세계관은 이토 히로부미의 세계관 그대로다. ‘백 권의 국제법이 몇 개의 대포보다도 못하다’는 말을 즐겨 했다는 <탈아론>의 후쿠자와는 초기 개화파의 스승이었고 서재필과 그 동료들은 제국주의 침략이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세계 교화 사업으로 받아들였다.

 

지식인들이 양육강식의 사회진화론을 내면화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국외 열강들의 약소국 수탈과 인종주의에 따른 힘의 논리가 세계를 주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을 중심으로 한 탈아론을 받아 들이며 자강론을 부르짖은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면죄부가 되지 못한다. 오늘날 미국을 보면 3,4년을 주기로 약소국을 침략하고 있다. 지배층들을 포섭하여 개방화, 인권, 정의의 이름으로 냅다 들어가 금융 시장을 장악하고 식민지화 해버린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지배층’의 적극적 협조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안위가 한미동맹에 달려 있다고 떠들어 대는 부시와 네오콘의 나팔수들을 보라. NSC에 종사하는 분이 TV에서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섬찝하며 기괴하기조차 했다.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미국 공무원이었다.

 

저자로서의 일관된 생각은‘시민사회’인 것 같다. 그 사회는 ‘국경을 초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노자 개인은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듯하다. 풍성한 문화 문명의 시대에 야만의 논리로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마지막 남은 구원은 ‘무정부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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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정치학 -상 - 현대사상총서 11
케이트 밀레트 지음, 정의숙.조정호 옮김 / 현대사상사 / 199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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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를 벗은 듯하다.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서 미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깨알같은 글씨에 인쇄마저 농도의 변화가 있어 소녀시절 언니방의 손바닥 문고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빽빽한 각주가 버티고 있어 (종종 못 본 척했지만) 모처럼 진지모드로 독서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좋았다.


우선 충격적 이었던 것은 문학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 사고에 찌들어 있는지 통탄스러웠다는 것이다.

작가란 가장 비천한 인간에 대해서도 애정을 유지하며 현상의 뒷면을 살피는 휴머니즘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한다. 표현과 사상은 달라도 유한한 인간들의 악마같은 모습에도 동정이나 단죄가 아닌 ‘연민’을 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오렌스, 헨리밀러, 메일러, 장 쥬네의 작품은 가부장제 남성들의 기득권을 위한 정치적 도구로 '문학‘을 악랄하게 이용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공존해 살고 있으며 그 당시로서는 너무나 힘없는 비하된 인간으로 살고 있는 여성에 대해 이렇게 악의적일 수가 있는지 분노가 인다.

 

공유된 사회적 가치에서 한 치의 벗어남 없이 막 깨어나려는 극소수 여자들의 존재를 짓밟으며 생물적 특성으로 규정하면서까지 ‘남성적’인 것에 가치를 부여한 이 작가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이 추악한 전쟁의 상황을! (오늘 우리나라국민이 참수되었다)

남성 문화가 이룩한 절정이 ‘전쟁’과 ‘무기’가 아닌가?


이 책은 3부 2권으로 나눠 있으며 2부의 역사적 배경부분이 특히 흥미로웠다. 유럽의 혁명 과정 속에서 왜 성 혁명은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사회주의 운동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가족’이데올로기와 싼 여성노동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비하되었다. 프로이드의 지대한 이론에 힘도 얻고.

 

작가는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지배와 피지배의 권력구조라 정의했다.

너무나 공고한 가부장제 속에서 여성들 스스로가 비하된 의식을 내면화 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날의 큰 문제가 아닌가 한다. 어제 우연히 TV의 연예프로를 보면서 식구들과 출연자들은 웃는데 나는 도저히 웃을 수도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어 일어나 버렸다. 정말 여성은 ‘최후의 식민지’로 남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절망감이 들 때가 있다.

오늘날 성은 정치적으로는 힘을 조금씩 얻어가고 있지만 상업화 앞에서는 무기력해지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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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 모성의 신화에 대한 반성
아드리엔느 리치 지음, 김인성 옮김 / 평민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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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심리학에서부터 다양한 영역에서 '모성'이 어떻게 만들어져 왜곡되어 왔는지를 다루고 있다. 깊이 있고도 쉬운 책이다.서구 중심적이며 계급의 문제와 연관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저자의 체험이 담긴 '여성의 삶'에 대한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우리의 체험을 바탕으로 '모성'에 관련한 책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부러움이 들었다.(나와 있나?)

제도화 된 모성은 여성에게 지적 능력 보다는 모성 본능을, 자아 실현 보다는 이타심을, 자아 창조 보다는 타인과의 관계를 우선시 한다. 국가 자본의 필요에 의해 사회 경쟁에 뛰어든 능력있는 여성이 오늘날 부각되고 있지만 이것은 또 다른 억압이 되고 있다.  여성은 그 자체의 '실존적 자아'로서  인식되지 못하고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지속적으로 대상화되어 여성 스스로에게 조차 비하된 존재로 내면화 되기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모성제도가 주는 억압과 스트레스를 마치 '자연법칙'인 것처럼 받아들여 왔다.  이제는 그 제도를 거부하고 주체적인 모성 역할을  찾아 사회와 남성에게 요구할 수있는 용기 있는 여성이 많아져야 한다. 남성이 만들어 낸 제도화된 역할 속에 너무 오랫 동안 감금되어 있었다. 여성은 이렇게 무력한 존재가 아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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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노암 촘스키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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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보고서'이다. 우리나라란 표현을 쓴 촘스키 교수에게 존경을 보낸다.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에 청부업자처럼 들어와 군부와 정치권 언론에게 미끼를 던져주고는 태동하는 민주주의를 짓밟고 경제를 파탄시키고 IMF 와  시장자유화란 말로 투자가들을 몰고와 부의 양극화. 식민지화 해버리는 미제의 수법이 너무나 잘 먹혀 들어간다는 사실이 공포스럽다. 소련이 있을 때는 '공산주의 말살'을 앞세웠고 지금은 아무 꺼리낌 없이 약소국들을 침략하고 있다.  베트남. 엘살바도르.과테말라. 파나마....미제의 대학살에 침묵하거나 지지를 보낸 나라들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 아닌가?  미제와 한 몸이 돼 버린 우리의 권력층들을 생각하면 소름끼친다. 북한이 느낄 생존위협의  공포가 안타깝다.  반미는 전세계가 외쳐야 하는 공존의 길이다. 분노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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