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야,”

 

하지만 그때까지 사투를 지켜보았던 영재는 아귀의 모습에 혼이 빠져나갔는지 감히 아귀에게 덤벼들 엄두도 내지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마침내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노인은 너털 웃음을 터뜨리며 아귀를 향해 말했다.

 

결국 네 놈이 해결했구나. 수고했다.”

 

아귀도 주인에게 칭찬을 받고 싶은지 물살을 헤치며 호수가로 다가왔다. 노인이 손을 내밀어 아귀의 등을 도닥거려주는 순간 갑자기 아귀의 등이 갈라지며 속에서 지수의 모습이 솟구쳐나왔다.아귀의 몸을 쫙 밀치고 벌떡 일어난 지수는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들고 있던 날카로운 작살로 아귀의 몸을 난도질쳤다.그리고는 노인을 향해 매섭게 노려본다.

 

남의 기억을 도둑질을 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

날 용서 못한다고? 으하하하,”

 

노인은 자신에게 작살을 겨누는 지수가 매우 가소롭다는 듯 요란하게 웃었다.

 

너야말로 자연계의 순리를 어지럽힌 놈이다! 용서못해!”

 

노인은 호통을 치더니 두 손을 들어 허공에다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아뢰야 동굴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쳤다.

 

나의 자식들아! 저 방자한 놈에게 카르마 용암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거라!”

 

노인의 날카로운 외침이 사라지자 마자 호수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갖가지 형태의 고기떼들이 하나의 띠를 형성하기 시작했다.순식간에 그들은 용의 형상으로 바뀌어 갔다.마치 용트림을 하는 듯한 거대한 용의 형상은 어느 순간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붉은 용암으로 바뀌어 지수의 몸을 감기 시작했다.그의 몸에서 부지직!하고 살이 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솟구쳤다.

 

아악! 뜨거워!”

 

너무나 고통스러워 지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가물가물해지면서 이제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구나 싶은 순간 그의 귓가에  푸른 빛의 음성이 들렸다.

 

(안되겠어. 최후의 일격을 가하자!)

무슨 말이야?”

(소유천이 따라붙을까봐 위험하지만 그 수밖에 없어! 빨리 암호를 외쳐!)

암호가 뭔데?”

(구식심왕의도(九識心王之都)!)

 

푸른 빛의 형상이 암호를 일러주자 워낙 위급했던 지수는 뜻도 잘 모르면서도 무조건 따라 불렀다.

 

구식심왕지도(九識心王之都)!”

 

지수의 암호가 아뢰야동굴에 크게 울려퍼지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 몸둥아리를 완전히 녹여버릴 것 같은 뜨거운 용암이 순식간에 식으며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또한 격렬하게 소용돌이 치던 호수의 물도 위력을 잃고 서서히 사라져 호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 나의 철옹성이 무너지다니! 안돼!”

 

노인은 급변한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운 듯 허둥거렸다. 그 사이 물이 완전히 빠진 호수에는  넓고 넓은 초원이 끝없이 펼쳐졌다높고 높은 푸른 하늘 속에는 양떼같은 흰구름이 떠다니고 가벼운 바람이 하늘거리면서 묘한 선율을 지어내는 그런 평화로운 세계였다. 지금까지의 음침했던 아뢰야 동굴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왠지 지수의 마음을 안온케 하는 묘한 힘이 서려 있다.

 

이건 또 뭐야?”

 

완전히 뒤바뀐 세상에 노인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절규를 했다. 그러나 그의 고통스러운 몸부림도 잠시 노인의 형상은 태양앞의 아침이슬처럼 덧없이 없어져 버렸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른 진땀을 닦아내며  드넓은 초원을 둘러보는 지수는 마치 세상의 모든 짐을 벗어던진 거처럼 마음이 한없이 가볍고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영재도 낯설은 풍경에 매우 놀란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저게 웬 건물이지?”

 

지수는 저멀리 능선 너머에 위풍당당한 성과 성곽이 솟아나 있는 것을 보고는 손으로 가리켰다.

 

일단 저 성으로 가보자

 

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르지만 지수는 성으로 가보고 싶었다. 지수가 먼저 걸음을 떼자 영재는 내키지않는 표정으로 그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 가지않아서 난데없이 검귀와 그의  군사들이 그들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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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수는 선명하지는 않지만 푸른 빛의 형상이 자신을 많이 닮았다는 것을 느끼면서  푸른 빛의 정체가 궁금해 호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호수의 깊은 곳에서 갑자기 비단 잉어를 비롯한 갖가지의 고기들이 엄청나게 떼를 지어 모습을 드러냈다.고기들은 지수의 상()들이 둥둥 떠있는 곳으로 오더니 마치 그것이 먹이라도 되듯이 활개를 치며 재빠르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고기떼의 습격에 영상의 군상들은 아우성을 치며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기떼들은 피에 굶주린 피라냐처럼 달려들어 영상들을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도대체 저놈들이 뭐하는 거야!”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있는 영상들을 먹어치우는 고기떼의 출현에 대해 뭔가 심상치않은 것을 느낀 지수는 얼른 고개를 들고 노인을 쳐다보았다.자기를 유심히 쳐다보고있던 노인의 시선과 딱 마주쳤다.그러자 노인은 씨익 기분 나쁜 웃음을 날렸다.

 

흐흐, 배고픈 미물에게 자네의 기억을 공양해주어서 고맙네.젊은이, ”

고맙다니요? 저건 단지 영상일 뿐인데요.”

 

지수는 짐짓 모른겠다는 듯 대꾸를 했다.그러자 노인은 고개를 설래 설래 흔든다.

 

아니야.저건 자네의 진짜 기억일세. 이 호수가 자네의 기억을 거의 흡수했거든.”

뭐라고요?”

 

노인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지수의 인상이 이그러졌다.비로소 지수는 노인의 뭔가 나쁜 덫에 빠진 것을 깨달고는 와락 그의 멱살을 움켜 잡았다.

 

이런 나쁜 놈, 남의 기억을 훔치다니……”

이러지 말게나. 저 고기들은 자네의 기억을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잘 보관해주는 것이니까.”

무슨 헛소리야!”

어허, 저 잉어들은 이 이롸야궁에서 기억을 보관해주는 기억단지인데 왜 그렇게 화를 내나?”

 

노인은 호령을 하며 멱살을 쥔 지수의 손을 거칠게 풀어냈다.보기보다는 노인의 손아귀 힘이 워낙 강해서 지수는 맥없이 밀려나고 말았다.

 

어쨌든 당장 내 기억들을 내놔!”

네가 이 아뢰야궁에 들어온 이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

아무리 그래도 난 기억을 찾아갈 거야!”

별로 그리 아름답지도 않은 것들인데 그냥 포기하지.”

, 어림없는 소리마쇼! 당신은 아무 것도 회상할 수 없는 텅 빈 기억이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 줄 몰라!

더러운 기억들은 너의 뇌속을 지저분하게 만들뿐이야. 흐흐흐,”

청소를 해도 내가 해.빨리 내 기억을 내놔!”

안돼, 한번 아뢰야 호수가 흡수한 기억은 되찾을 수 없어.”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말하던 노인은 힐끔 호수속을 바라보다가 흠칫 놀란다.

 

기다린 보람이 있군.후후,”

 

노인이  탄식을 하며 지수의 영상들을 노려보자 지수도 얼른 그곳을 바라본다.커다란 입을 벌리며 덤벼드는 고기떼의 습격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군상속에서 조금 전의 푸른 빛의 형상은 작살을 휘두르며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그가 날카로운 작살을 휘두르자 붉은 반점을 가진 하얀 잉어의 배가 터지면서 뱃속에 갇혀있던 지수의 기억들이 마구 쏟아져나왔다.그속에서 정화의 모습도 얼핏 보였다.푸른 빛의 형상은 정화의 기억을 보호하기 위해서 헤엄쳐 갔으나 잉어떼들이 사방 팔방에서 떼를 지어 날카로운 입으로 공격하는 바람에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차츰 푸른 빛의 형상은 수세에 몰리면서 선명했던 푸른 빛의 형상이 차츰 약해졌다.마침내는 잉어떼에 일방적으로 쫓기기 시작했다.더이상 견딜 수 없다는 듯 푸른 빛의 형상은 호수 수면위로 상체를 드러냈다. 너울거리는 푸른 빛의 형상속에서 지수의 얼굴이 얼핏 비췄다.그순간 거대한 황금빛 잉어가 지나가면서 호수 수면밑에 잠겨있던 푸른 빛의 형상의 하체가 사라져 버렸다.잉어에게 먹혀버린 것이다.지수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푸른 빛의 얼굴이 고통으로 이그러졌다.

 

으윽, 이봐, 보고만 있을 거야?빨리 나좀 도와줘!”

어떻게 하란 말이야?”

……호수로 빨리 뛰어 들어와!”

뭐라고?”

 

무슨 소리인지 몰라 지수는 망설였다.

 

난 네 속에 있을 때에만 강력한 힘이 나온단 말이야!”

하지만 무섭다구!”

용기를 내!그래야 모두 산다구!”

저 놈들이 너무 포악해!’

어서!,”

 

지수를 독촉하던 푸른 빛의 형상은 등뒤로 입을 쩍 벌리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커다란 아귀를 발견하고는 비명을 질렀다.그것을 본 지수는 기겁을 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푸른 빛의 형상은 다급한 김에 작살을 들고 마주섰지만 아귀의 입이 너무 커 한 입에 먹힐 판이었다.

날카로운 아귀의 이빨이 푸른 빛의 형상의 머리를 마악 삼키려는 순간 마침내 용기를 낸 지수는 아귀의 입을 향해 몸을 날렸다.지수의 몸이 푸른 빛의 형상을 감싸는 순간 아귀의 날카로운 이빨이 지수의 등에 내리 꽃혔다.그리고 지수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귀만이 호수위에 여유롭게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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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바닥을 굴러가던 지수가 겨우 중심을 잡아 일어서 보니  높이만 해도 수십 미터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의 동굴속에 있었다. 그의 옆으로 영재도 굴러 떨어져 나왔다.

도대체 여기는 또 어디야?”

지수가 새삼 두려운 눈빛으로 동굴을 살펴보니 어둠침침한 동굴에는 수 백개의 종유석이 신경세포 뉴우런처럼 서로 촘촘하게 얽혀져 있었다. 마치 거인의 뇌속으로 날아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넓은 바닥에는 작은 연못들이 곳곳에 형성되어 정체불명의 액체들이 흐르고 있었다.그 작은 연못들은 저멀리 수상한 빛을 내뿜고있는 드넓은 호수로 이어졌다.

지수가 뉴우런 동굴을 벗어나 실개천을 따라 급히 걸어나가니 길 양쪽으로 갖가지 기묘한 형상의 암석들이 줄지어 서 있다. 호수는 신록이 우거진 두 개의 깊은 사이에 넓게 자리잡고 있었다. 파문이 없는 호수의 표면은 유리처럼 투명했으나 호수속에서 갖가지 색깔의 빛이 길게 뻗어나와 잿빛 하늘에 걸려있는 떼구름들을 기묘하게 물들이고 있었다.그 바람에 하늘마저도 호수의 일부로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어쨌든 조금 전의 암흑 상황과 너무나 달라져서 지수와 영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호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거지?”

왠지 불길하게 보이는 호숫가로 조심스럽게 다가간 지수는 10여 미터 전방에 밀짚모자를 쓴 웬 노인이 호수에 낚시를 드리고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급히 그곳으로 쫓아갔다. 하지만 노인이 꼼짝도 않고 낚시에만 집중하고 있는 탓에 지수는 아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실례합니다만,”

“……”

노인은 한참 만에야 지수를 힐끔 돌아다본다.풍선한 하얀 수염을 정갈하게 기른 노인의 눈빛이 범상치 않다.그러나 노인은 그냥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길좀 묻겠습니다.”

“……”

여전히 말이 없는 수상한 노인.

여기가 어디죠?저희가 길을 잃어서요.”

지수가 다시 말을 건네자 노인은 조금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더니만 이윽고 입을 열었다.

여기는 아뢰야궁이다.”

아뢰야궁이요?”

“……”

하지만 노인은 다시 입을 다물어 버렸다.그리고는 다시 호수에 던져넣은 낚시뽕에만 시선을 던진다.하지만 아쉬운 것은 길잃은 지수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희는 아마라궁을 찾는데 혹시 어디로 가야하는지 아시나요?”

질문을 던져놓고 지수가 조바심이 나는 표정으로 노인의 답변을 기다리는데 노인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버럭 고함을 쳤다.

그런 것은 없어!”

그게 무슨 말씀인지?”

이 세상에 오로지 이 아뢰야궁만 존재한다구!”

지수를 노려보는 노인의 눈에 광기의 불꽃이 번쩍이었다.그의 시선과 마주치는 순간 와락 두려움을 느낀 지수는 저도 모르게 뒤로 흠칫 물러섰다.

우리 사부님은 이 근방 어디인가에 아마라궁이 있다고 했는데……”

낙담한 지수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그 소리를 들었는지 노인은 냉소적으로 피식 웃었다.

그건 네 사부라는 작자가 거짓말을 한 거야.”

그럴 분이 아닌데요.”

하여간 이곳에는 아마라궁따윈 없다고 했잖아!”

다시 한번 노인은 버럭 성질을 내더니 호수에 걸쳐놓은 낚시대만 바라본다.지수는 긴가 민가했지만 워낙 노인이 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체념하는 투로 혼자 중얼거렸다.

, 푸른 빛을 어디서 찾지?

지수의 넋두리를 들었는지 노인이 힐끔 지수를 돌아보는데 왠일인지 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푸른 빛을 찾는다고?”

.”

노인의 표정변화에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지수는 얼른 대꾸했다.노인은 씨익 웃었다.

그 정도는 내가 도와줄 수 있지.”

, 감사합니다.”

이리 와 앉아.”

노인은 엎어져 있던 조그만 간이의자를 제옆에 갖다놓더니 지수에게 손짓을 했다.지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간이의자에 앉았다.그러나 의심많은 영재는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다.어쨌든 지수가 간이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자 노인은 그에게 말했다.

그렇게 멀리 볼 것 도 없어. 바로 네 밑에 있는 있는 호수만 바라봐.”

?.”

도대체 호수에 뭐가 있길래 그러는 것일까 하고 의아한 표정을 짓던 지수는 노인의 재촉에 결국 바로 밑의 호수를 무심히 바라본다.호수는 어찌나 맑은지 깊이를 알수 없는 바닥까지도 훤히 보여준다.그 호수바닥을 출처를 알 수 없는 갖가지 색깔의 빛이 레이저처럼 가로지르고 있다.

뭐가 보이나?”

이상한 빛이 보이는데요.”

그것 말고! 계속 집중해서 봐!”

, 알겠습니다.”

뭔가 보여?”

아직……?”

노인의 강압적인 지시에 조금 기분이 상해 호수바닥을 대충 살피던 지수는 어느 순간 갑자기 흠칫 놀랐다.호수물속에 뭔가 동영상 같은 상()이 맺히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뭔가 싶어 지수가 눈여겨보는데 난데없이 호수물속에서 2차선 도로가 쫘악 펼쳐지더니 도로  한가운데에서 하얀 승용차와 8톤 트럭이 굉음과 함께  정면충돌했다. 그 바람에 하얀 승용차는 순식간에 종이짝처럼  찌그러졌고 잠시 후에 차에 타고있다가 변을 당한 남녀의 모습이 떠올라 왔다.피범벅이 된 그 남녀를 붙들고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그런데 피투성이가 된 아이의 얼굴이 지수의 얼굴과 매우 비슷했다.

 

, 엄마, 아빠,

 

아이를 망연히 바라보던 지수의 입에서 고통스런 외침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처참하게 사망한 남녀의 시신이 그가 그토록  보고싶어 하던 부모라니......망연자실한 채 시신을  바라보는 지수의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가 주먹으로 눈물을 훔쳐낼 때 파문(波紋)이 일어나면서 갑자기 물속의 상이 바뀌었다. 새롭게 나타난 것은 과학자 가운을 입은 젊은 황박사가 울고있는 지수를 안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하얀 고깔을 쓴 정체모를 비구니도 등장해 예리한 칼날이 달린 염주를 회전시켜가며 교통사고에 관한 모든 영상들을 마구 삭제하기 시작했다.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느 순간 붉은 양산을 가진 절세미인이 나타나더니 붉은 양산으로 자신의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장면이 그려졌다.

또한 홀연히 나타난 파마머리 여인이 살해된 자신의 엄마 행세를 하고 자신도  그 여인하고 스스럼없이 통화를 하는 놀라운 모습도 살아났다.

 

그만둬!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가짜 엄마에게 속아온 것을 깨달고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그가 불타오르는 복수심에 손을 내뻗어 물속의 비구니를 잡아 움켜쥐려고 하는 순간 또다시 영상들이 물방울처럼 줄지어 생겨났다. 그속에서 낯익은 팔달산의 전경이 펼쳐졌다. 그속에서 어디론가 정신없이 쫒겨가는 유정화의 모습이 보였다.

 

정화,”

 

 그리고 이어서 솔개의 습격, 공노인의 모습, 사이보그 용병들 그리고 그들과 전투를 벌이는 군사들, 폭발하는 코브라, 자신의 뒤를 뒤쫓는 검귀의 군사들, 그리고 위치를 알 수 없는 어느 미지의 깊은 연못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지수의 모습들이 하얀 물거품처럼 끓어오르며 정신없이 생겨났다.

 

마치 거대한 아이맥스 영화의 입체영상처럼 호수의 물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던  영상들은  이윽고 넓은 호수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상들 가운데에 푸른 빛이 나타났다.곧바로 사람의 형상으로 바뀐 푸른 빛은 물고기 알처럼 사방에 흩어져있는 여러가지의 영상들을 마치 보호라듯 하는 양 감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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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화살을 피해 한참을 정신없이 도망치던 지수와 영재는 이뢰야(阿賴耶)라고 쓰여진 어느 바위앞에 다다랐다.바위옆에는 커다란 동굴이 뻥 뚫려 있었는데 깊고 깊은 암흑만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무리 다급해도 선뜻 그 속으로 들어갈 엄두가 나지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바라본다.

어떡하지?”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

그들이 주춤거리고 있는 사이에 검귀는 두 아이가 아뢰야동굴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완전히 요절을 낼 작정으로 부하들을 다시 매섭게 독려했다.

“쏴라! 놈들을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서는 안돼!

 

그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다시 주변에 수많은 화살이 꽂히자 지수는 영재에게 눈짓을 하고는  지체없이 동굴속으로 뛰어들었다.그러자 영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급히 그 뒤를 따랐다. 달려오던 검귀는 그 광경을 보고는 더욱 발을 구르며 분통을 터뜨렸다.

 

“큰일이다! 빨리 전군에 비상을 걸어라!

 

그때 곁에 있던 검귀의 부관이 슬쩍 말했다.

 

“나으리, 뭘 걱정하십니까? 아뢰야는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인데요.이제 저놈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절대 방심해서는 안돼!

 

검귀가 매섭게 야단치자 부관은 찔끔하고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소장이 반드시 잡아내겠습니다.

 

그리고는 군사들을 이끌고 지수와 영재가 침입한 시커먼 아뢰야 동굴속으로 서둘러 뒤쫓아갔다.

잠시 후 지수가 어쩔 수 없이 뛰어든 동굴은 암흑 그 자체였다. 와락 겁이 난 지수는 바로 코앞도 보이지 않는 암흑속에서 더듬 더듬 손을 저으며 영재를 찾았다.

 “영재야, 어디 있어?"

 "여기야,"

 

다행스럽게도 잔뜩 겁먹은 영재의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지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인기척을 찾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잠시 후 떨고있는 영재의 손이 잡혔다.

 

영재니?”

, 그래.”

",다행이다,

너무 어두워서 어디가 어디인지 통 모르겠어.”

 

암흑속에서 스며나오는 영재의 목소리가 잔뜩 겁에 질린 듯이 들리자 지수는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대꾸한다.

 

그래도 검귀에게 잡혀서 곤욕을 치르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그자도 이 암흑속에서는 우리를 못찾겠지?”

그럼.”

 

일부러 용기를 짜내는 듯한 지수의 떨리는 목소리가 거대한 암흑속에서 기묘한 울림을 내면서 사라질 때 홀연히 암흑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마치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서서히 돌아가는 듯한 소리였다.

 

저건 또 무무슨 소리지?”

 

겁에 질린 영재가 화들짝 놀라며 지수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글쎄, 뭔가 돌아가는 소리 같은데……”

 

덮쳐오는 공포심에 지수도 말끝을 채 맺지 못했다.어쩔 수 없이 두 아이가 귀를 쫑긋 세우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점점 가까이 들려왔다.

 

? 지수야, 동굴이 돌아가는 것 같아!”

 

잔뜩 겁먹은 영재가 말을 마치자마자 어디선가 엄청난 압력이 두 아이에게 성난 파도처럼 밀려왔다.

 

 “어어! 이건 뭐야?”

“무서워!”

 

엄청난 압력에 두려움을 느낀 지수와 영재는 본능적으로 서로 꽉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으나 그만 강력한 힘에 의해  서로 손을 놓치고 말았다

 

“아악!”

 

아득한 블랙홀속으로 낙엽처럼 빠져드는 것 같은 아찔한 느낌에 지수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지수는 자신이 마치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고속원심분리기속으로 빨려들어가 거대한 압력이 자신의 머리통을 분해시키는 듯한 격심한 현기증을 느꼈다.조금 더 있으니 점차로 자신의 모든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그를 덮쳐왔다.또한 동시에 온몸이 강한 염산 세례를 받아 촛농처럼 녹아드는 느낌에 화들짝 놀라면서 발버둥쳤다.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 두려운 일들이 자신의 두 눈으로 보지 못하는 가운데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

 

이렇게 죽는구나 싶을 때 지수의 흐릿한 눈앞이 갑자기 확 밝아졌다.그리고는 무언가 강한 힘에 떠밀려 앞으로 튕겨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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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위속은 밑이 뻥 뚫려 있는 듯 아무리 내려가도 바닥이 닿지 않았다. 그대로 죽는 것 싶어서 와락 겁이 난 지수와 영재는 살기위해서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쉼없이 자맥질하던 지수의 발끝에 굳은 바닥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힘차게 바닥을 딛고 일어서자 신기하게도 갑자기  지수의 온몸을 감쌌던 물이 모두 싸악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살았다 싶은 반가움에 황급히 눈을 뜨자 눈앞에 영재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는 또 어디야?

 

마치 깊고 깊은 바닷속 바닥에 떨어진 듯한 낯선 광경을 살펴보던 지수와 영재는 주변에 서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놈들이야?

“쉿!

 

지수는 영재의 입을 입다물게 하고는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사람들앞으로 조심스럽게 두어 걸음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영재야, 이것들은 모두 조각상이야!

 

잠시 후 지수가 안심하라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해주자,  영재는 후다닥 그쪽으로 달려간다. 그것들은 정말 바위를 깍아 만든 나찰(羅刹)모습이었는데 여러가지 험악한 표정으로 포효를 하고있는 것이 얼마나 정교한지 등골이 다 서늘해졌다

“이놈 때문에 난 정말 간떨어지는 줄 알았어!

 

너무나 놀랐던 영재는 나찰에 다가가 분풀이라도 하듯이 오른손 검지로 대뜩 나찰의 눈을 찌르려고 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마!

 

그때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지수는 정색을 하며 영재를 말렸다. 하지만 영재는 개의치않고 심술궂은 아이처럼 나찰의 눈을 푹 찌른다그러던 영재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거?"

 

그때 영재에게 눈을 찔렸던 나찰이 갑자기 거대한 아메바처럼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그의 오른손을 팔꿈치까지 삼켜버렸다.예상치 못한 사태에 영재는 비명을 지르며 팔을 빼내려고 발버둥쳤다.

 

“적색분자 발견!

 

그런데  영재의 손을  빠른 속도로 빨아들이던 나찰은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주변에 있던 모든 조각상이 푸른 빛으로 감싸이더니  요동을 쳤다.

 

“적이다!

 

그리고는 서로 연락을 취하는 듯  조각상들 사이에서  날선 경고음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제껏 돌덩어리인 줄로만 알았던 모든 조각상들이 진짜 나찰처럼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깜짝 놀란 영재가 급히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나찰은  순식간에 영재의 어깨죽지까지 삼켜버렸다.

 

“으악! 살려줘!

 

공포에 질린 영재는 뒤로 허리를 젖히며 발버둥을 쳤다.지수도 번개처럼 달려들어 영재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때 지수의 눈빛에 문득 섬뜩한 독기가 번뜩이었다.

 

“죽어라!

 

지수는 동굴이 떠나갈 정도로 버럭 고함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해 주먹으로 나찰의 가슴 한 가운데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찰의 가슴에 큰 구멍이 나 버렸다.뜻밖의 상황에 매우 놀랐는지 나찰은 영재의 어깨죽지를 토해내며 황급히 떨어져 나갔다.구멍이 난 가슴에서 석회가루가 와르르 쏟아내자 나찰은  급격히 전의를 상실한 듯 주춤거렸다.

 

“개새끼들! 다 죽여버리겠어!

 

자신의 괴력에 용기를 받은 듯 지수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다른 나찰들을 향해 눈을 부릅뜨자 모두 슬금 슬금 물러섰다.그들을 향해 지수가 덤벼들려고 하자 영재가 급히 만류했다.

 

“그만해!

“이놈들은 씨를 말려버려야 해!

 

평소 지수답지않은 과격한 대꾸에 영재는 동굴뒷쪽을 손으로 급히 가리켰다.

 

“벌써 검귀가 저기까지 왔다고!

 

영재의 다급한 외침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지수가 뒤돌아보니 정말 검귀가 부하들을 잔뜩 이끌고 성난 모습으로 지수와 영재에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빨리 도망쳐!

 

영재가 먼저 허겁지겁 내빼자 지수는 아쉬웠지만 나찰들을 포기하고 줄행랑을 쳤다. 이미 두 아이를 발견했던 검귀의 군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퍼붓자 허공을 가르며 소나기처럼 쏟아진 화살들은 아이들의 앞뒤로 무수히 떨어졌다.

 

하지만 지수와 영재가 요리 저리 잘 도망치자 갑자기 나찰속에서 푸른 빛들이 빠져나와 일제히  지수와 영재를 향해 날아갔다. 푸른 빛들은 정신없이 도망치는  두 사람의 머리를 그대로 지나쳐나가더니   20미터 정도앞에 일제히 멈추어 섰다 .

 

거대한 푸른 빛의 덩어리들은 마치 조준 사격을 준비하는 사병들처럼 공중에 늘어섰다.그들밑 땅바닥에는 누군가가 쓰다가 내버려둔 듯한 삽과 망치 그리고  드릴 등 각종 날카로운 공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젠장,

 

지수와 영재는 푸른 빛이 덩어리를 지어 자신들의 도주로를 미리 막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당황하여 뒤돌아서려고 했다.그러자 푸른 빛들은 문득 땅바닥에  흩어져있는 연장위로 우르르 쏟아져내렸다.

 

푸른 빛이 연장속으로 스며드는 것과 동시에 놀랍게도 제일 먼저 드릴이 공중으로 붕 떠올라왔다. 그리고 바위를 깨던 드릴의 날카로운 정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섭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신호로 주변에 있던 삽, 망치 그리고 곡괭이들도 모두 살아있는 새처럼 일시에 공중으로 떠올라 왔다.

"저건 또 무슨 조화야?

 

아이들이 기겁하는 사이 날카로운 공구들은 마치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위협적으로 지수와 영재를 향해 달려들었다. 금방이라도 머리통을 뚫을 듯한 드릴의 위협적인 큰 소리에 영재는 혼비백산하며 뒷걸음질 쳤다.하지만 뒤에서는 이미 창칼로 무장한 검귀의 부하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퇴로가 막혀 사색이 되어버린 지수와 영재에게 공중에 떠있던 날카로운 삽날이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는 듯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비켜!

 

목이 날아가버릴 절대 위기의 순간에 지수는 얼떨결에 쥐고있던 족자를  마구 휘두르며 삽날의 치명적인 공격을 피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삽날이 족자를 스쳐가면서 족자를 감고있던 끈을 베어버렸는지 족자가 주르르 풀어졌다한 남자의 초상화가 드러났다. 부릅뜬 두 눈이 지수의 머리를 향해 달려오는 드릴과 곡괭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캬약!

 

그런데 사정없이 달려들던 드릴과 곡괭이가 갑자기 단발마같은 비명을 지르더니 마치 허공에 얼어붙은 듯이  일제히 급정거했다.그리고 몸체를 부르르 떨기 시작하는데 잠시후 그속에서 푸른 빛의 덩어리들이 서둘러 빠져나오기 시작했다그러자 살벌하게 달려들던 드릴, 곡괭이, 망치 그리고 삽 등 연장들은 문득 끈떨어진 꼭두각시처럼 일제히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지수와 영재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무조건 앞으로 달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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