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야,”
하지만 그때까지 사투를 지켜보았던 영재는 아귀의 모습에 혼이 빠져나갔는지 감히 아귀에게 덤벼들 엄두도 내지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마침내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생각했는지 노인은 너털 웃음을 터뜨리며 아귀를 향해 말했다.
“결국 네 놈이 해결했구나. 수고했다.”
아귀도 주인에게 칭찬을 받고 싶은지 물살을 헤치며 호수가로 다가왔다. 노인이 손을 내밀어 아귀의 등을 도닥거려주는 순간 갑자기 아귀의 등이 갈라지며 속에서 지수의 모습이 솟구쳐나왔다.아귀의 몸을 쫙 밀치고 벌떡 일어난 지수는 아직도 분이 덜 풀렸는지 들고 있던 날카로운 작살로 아귀의 몸을 난도질쳤다.그리고는 노인을 향해 매섭게 노려본다.
“남의 기억을 도둑질을 한 당신을 용서할 수 없어!”
“날 용서 못한다고? 으하하하,”
노인은 자신에게 작살을 겨누는 지수가 매우 가소롭다는 듯 요란하게 웃었다.
“너야말로 자연계의 순리를 어지럽힌 놈이다! 용서못해!”
노인은 호통을 치더니 두 손을 들어 허공에다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그리고는 아뢰야 동굴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쳤다.
“나의 자식들아! 저 방자한 놈에게 카르마 용암의 뜨거운 맛을 보여주거라!”
노인의 날카로운 외침이 사라지자 마자 호수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갖가지 형태의 고기떼들이 하나의 띠를 형성하기 시작했다.순식간에 그들은 용의 형상으로 바뀌어 갔다.마치 용트림을 하는 듯한 거대한 용의 형상은 어느 순간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붉은 용암으로 바뀌어 지수의 몸을 감기 시작했다.그의 몸에서 부지직!하고 살이 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솟구쳤다.
‘아악! 뜨거워!”
너무나 고통스러워 지수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가물가물해지면서 이제 이렇게 허망하게 죽는구나 싶은 순간 그의 귓가에 푸른 빛의 음성이 들렸다.
(안되겠어. 최후의 일격을 가하자!)
“무슨 말이야?”
(소유천이 따라붙을까봐 위험하지만 그 수밖에 없어! 빨리 암호를 외쳐!)
“암호가 뭔데?”
(구식심왕의도(九識心王之都)!)
푸른 빛의 형상이 암호를 일러주자 워낙 위급했던 지수는 뜻도 잘 모르면서도 무조건 따라 불렀다.
“구식심왕지도(九識心王之都)!”
지수의 암호가 아뢰야동굴에 크게 울려퍼지는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의 몸둥아리를 완전히 녹여버릴 것 같은 뜨거운 용암이 순식간에 식으며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또한 격렬하게 소용돌이 치던 호수의 물도 위력을 잃고 서서히 사라져 호수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다.
“헛! 나의 철옹성이 무너지다니! 안돼!”
노인은 급변한 상황이 매우 당황스러운 듯 허둥거렸다. 그 사이 물이 완전히 빠진 호수에는 넓고 넓은 초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높고 높은 푸른 하늘 속에는 양떼같은 흰구름이 떠다니고 가벼운 바람이 하늘거리면서 묘한 선율을 지어내는 그런 평화로운 세계였다. 지금까지의 음침했던 아뢰야 동굴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왠지 지수의 마음을 안온케 하는 묘한 힘이 서려 있다.
“이건 또 뭐야?”
완전히 뒤바뀐 세상에 노인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절규를 했다. 그러나 그의 고통스러운 몸부림도 잠시 노인의 형상은 태양앞의 아침이슬처럼 덧없이 없어져 버렸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이마에 흐른 진땀을 닦아내며 드넓은 초원을 둘러보는 지수는 마치 세상의 모든 짐을 벗어던진 거처럼 마음이 한없이 가볍고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다. 영재도 낯설은 풍경에 매우 놀란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저게 웬 건물이지?”
지수는 저멀리 능선 너머에 위풍당당한 성과 성곽이 솟아나 있는 것을 보고는 손으로 가리켰다.
“일단 저 성으로 가보자”
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 모르지만 지수는 성으로 가보고 싶었다. 지수가 먼저 걸음을 떼자 영재는 내키지않는 표정으로 그뒤를 따랐다. 그런데 그들이 얼마 가지않아서 난데없이 검귀와 그의 군사들이 그들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