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바위속은 밑이 뻥 뚫려 있는 듯 아무리 내려가도 바닥이 닿지 않았다. 그대로 죽는 것 싶어서 와락 겁이 난 지수와 영재는 살기위해서 필사적으로 허우적거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쉼없이 자맥질하던 지수의 발끝에 굳은 바닥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힘차게 바닥을 딛고 일어서자 신기하게도 갑자기 지수의 온몸을 감쌌던 물이 모두 싸악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살았다 싶은 반가움에 황급히 눈을 뜨자 눈앞에 영재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도대체 여기는 또 어디야?”
마치 깊고 깊은 바닷속 바닥에 떨어진 듯한 낯선 광경을 살펴보던 지수와 영재는 주변에 서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놈들이야?”
“쉿!”
지수는 영재의 입을 입다물게 하고는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는 사람들앞으로 조심스럽게 두어 걸음 다가가 자세히 살폈다.
“영재야, 이것들은 모두 조각상이야!”
잠시 후 지수가 안심하라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해주자, 영재는 후다닥 그쪽으로 달려간다. 그것들은 정말 바위를 깍아 만든 나찰(羅刹)모습이었는데 여러가지 험악한 표정으로 포효를 하고있는 것이 얼마나 정교한지 등골이 다 서늘해졌다.
“이놈 때문에 난 정말 간떨어지는 줄 알았어!”
너무나 놀랐던 영재는 나찰에 다가가 분풀이라도 하듯이 오른손 검지로 대뜩 나찰의 눈을 찌르려고 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마!”
그때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지수는 정색을 하며 영재를 말렸다. 하지만 영재는 개의치않고 심술궂은 아이처럼 나찰의 눈을 푹 찌른다. 그러던 영재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이거?"
그때 영재에게 눈을 찔렸던 나찰이 갑자기 거대한 아메바처럼 꿈틀거리더니 순식간에 그의 오른손을 팔꿈치까지 삼켜버렸다.예상치 못한 사태에 영재는 비명을 지르며 팔을 빼내려고 발버둥쳤다.
“적색분자 발견!”
그런데 영재의 손을 빠른 속도로 빨아들이던 나찰은 갑자기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그것이 신호라도 되는 양 주변에 있던 모든 조각상이 푸른 빛으로 감싸이더니 요동을 쳤다.
“적이다!”
그리고는 서로 연락을 취하는 듯 조각상들 사이에서 날선 경고음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이제껏 돌덩어리인 줄로만 알았던 모든 조각상들이 진짜 나찰처럼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깜짝 놀란 영재가 급히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나찰은 순식간에 영재의 어깨죽지까지 삼켜버렸다.
“으악! 살려줘!”
공포에 질린 영재는 뒤로 허리를 젖히며 발버둥을 쳤다.지수도 번개처럼 달려들어 영재를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때 지수의 눈빛에 문득 섬뜩한 독기가 번뜩이었다.
“죽어라!”
지수는 동굴이 떠나갈 정도로 버럭 고함을 지르는 것과 동시에 있는 힘을 다해 주먹으로 나찰의 가슴 한 가운데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러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찰의 가슴에 큰 구멍이 나 버렸다.뜻밖의 상황에 매우 놀랐는지 나찰은 영재의 어깨죽지를 토해내며 황급히 떨어져 나갔다.구멍이 난 가슴에서 석회가루가 와르르 쏟아내자 나찰은 급격히 전의를 상실한 듯 주춤거렸다.
“개새끼들! 다 죽여버리겠어!”
자신의 괴력에 용기를 받은 듯 지수가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다른 나찰들을 향해 눈을 부릅뜨자 모두 슬금 슬금 물러섰다.그들을 향해 지수가 덤벼들려고 하자 영재가 급히 만류했다.
“그만해! ”
“이놈들은 씨를 말려버려야 해!”
평소 지수답지않은 과격한 대꾸에 영재는 동굴뒷쪽을 손으로 급히 가리켰다.
“벌써 검귀가 저기까지 왔다고!”
영재의 다급한 외침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지수가 뒤돌아보니 정말 검귀가 부하들을 잔뜩 이끌고 성난 모습으로 지수와 영재에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빨리 도망쳐!”
영재가 먼저 허겁지겁 내빼자 지수는 아쉬웠지만 나찰들을 포기하고 줄행랑을 쳤다. 이미 두 아이를 발견했던 검귀의 군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퍼붓자 허공을 가르며 소나기처럼 쏟아진 화살들은 아이들의 앞뒤로 무수히 떨어졌다.
하지만 지수와 영재가 요리 저리 잘 도망치자 갑자기 나찰속에서 푸른 빛들이 빠져나와 일제히 지수와 영재를 향해 날아갔다. 푸른 빛들은 정신없이 도망치는 두 사람의 머리를 그대로 지나쳐나가더니 약 20미터 정도앞에 일제히 멈추어 섰다 .
거대한 푸른 빛의 덩어리들은 마치 조준 사격을 준비하는 사병들처럼 공중에 늘어섰다.그들밑 땅바닥에는 누군가가 쓰다가 내버려둔 듯한 삽과 망치 그리고 드릴 등 각종 날카로운 공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젠장,”
지수와 영재는 푸른 빛이 덩어리를 지어 자신들의 도주로를 미리 막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당황하여 뒤돌아서려고 했다.그러자 푸른 빛들은 문득 땅바닥에 흩어져있는 연장위로 우르르 쏟아져내렸다.
푸른 빛이 연장속으로 스며드는 것과 동시에 놀랍게도 제일 먼저 드릴이 공중으로 붕 떠올라왔다. 그리고 바위를 깨던 드릴의 날카로운 정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섭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신호로 주변에 있던 삽, 망치 그리고 곡괭이들도 모두 살아있는 새처럼 일시에 공중으로 떠올라 왔다.
"저건 또 무슨 조화야?”
아이들이 기겁하는 사이 날카로운 공구들은 마치 먹이를 발견한 독수리처럼 위협적으로 지수와 영재를 향해 달려들었다. 금방이라도 머리통을 뚫을 듯한 드릴의 위협적인 큰 소리에 영재는 혼비백산하며 뒷걸음질 쳤다.하지만 뒤에서는 이미 창칼로 무장한 검귀의 부하들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퇴로가 막혀 사색이 되어버린 지수와 영재에게 공중에 떠있던 날카로운 삽날이 드디어 기회를 잡았다는 듯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비켜!”
목이 날아가버릴 절대 위기의 순간에 지수는 얼떨결에 쥐고있던 족자를 마구 휘두르며 삽날의 치명적인 공격을 피해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삽날이 족자를 스쳐가면서 족자를 감고있던 끈을 베어버렸는지 족자가 주르르 풀어졌다. 한 남자의 초상화가 드러났다. 부릅뜬 두 눈이 지수의 머리를 향해 달려오는 드릴과 곡괭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캬약!”
그런데 사정없이 달려들던 드릴과 곡괭이가 갑자기 단발마같은 비명을 지르더니 마치 허공에 얼어붙은 듯이 일제히 급정거했다.그리고 몸체를 부르르 떨기 시작하는데 잠시후 그속에서 푸른 빛의 덩어리들이 서둘러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살벌하게 달려들던 드릴, 곡괭이, 망치 그리고 삽 등 연장들은 문득 끈떨어진 꼭두각시처럼 일제히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지수와 영재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무조건 앞으로 달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