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사는 광교산 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들어 섰다. 몇 시간 전에 찍혔을 것으로 보이는 선명한 왕대의 발자국이 산길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산길 오른쪽은 시커먼 어둠이 흐르고 있는 얕은 계곡이었다. 산길은 낮에도 잡목이 빽빽히 우거져 있어서 매우 어둠침침했다.몇 번이나 돌부리에 걸려 자빠질 뻔 했지만 강형사는 손전등을 꺼버리기로 했다. 어디선가 왕대가 그의 손전등 불빛을 주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했던 것이다.
어두운 동굴같은 산길을 벗어나자 앞이 확 트였다. 계단식 논이 계곡을 따라 오밀조밀하게 만들어진 작은 평지였다. 어두운 밤하늘을 이고있는 형제봉의 정상이 멀찌감치 보였다. 사방이 훤히 뚫린 지대로 들어서니 산길을 지나면서 극도로 고조됐던 경계심과 공포심이 조금 누그러졌다.
“젠장, 내가 지금 무엇을 하겠다는 거야 ? ”
강형사는 갑자기 꿈에서 깨어나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한순간 자신의 행동이 무척 무모하게 비춰졌다. 그리고 깊이 숨어있던 공포심이 아우성치며 터져나오면서 그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도망치려면 지금 도망가야 한다. 안전한 도시로……
강형사는 서서히 돌아섰다. 그의 시야에 저 멀리 도시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나무가지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왔다.그는 약간 인상을 찡그렸다.
도시는 안전했지만 살아있는 곳이 아니었다.전기불빛에 의해 겉으로는 살아있었지만 속은 죽어있었다.
안전한 도시에서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설사 생긴다 하더라도 너무나도 밝은 불빛들에 의해 금방 투명하게 드러나고 만다. 신비함도 물론 없다.
지금 강형사의 육신(肉身)과 영혼은 햇빛속으로 내던져진 물고기마냥 저 도시의 투명한 불빛에 의해 메마르면서 지쳐 가고 있는지 모른다. 가련한 물고기는 말라가고 있는 자신의 비늘을 위해서 깊고 깊은 어두운 심연(深淵)의 바다속으로 돌아가기를 필사적으로 갈구한다. 설사 그곳에서 아귀같은 심해어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을 지라도.
지금 앞으로 나아가면 자신의 육체는 죽음의 신(神)인 왕대에게 갈가리 찢길 수도 있다. 아니 반드시 그럴 것이다. 혹시 재수라도 좋으면 강형사 자신이 왕대을 죽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보였다. 그래도 그는 광교산을 향해 다시 돌아섰다.그리고는 강형사는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
그런데 산중턱에서 ‘백년수(百年水)약수터’라고 쓰여진 말뚝을 지나치면서부터 주변 공기가 싹 달라졌다. 우선 산길은 다시 가파르고 숲속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삼림이 무성하게 우거졌다. 숲속 여기 저기서 차가운 살기(殺氣)가 뻗어 나왔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말라는 왕대의 경고였다. 산등성이로 올라서자 형제봉과 경기대(京畿大)로 나뉘어지는 갈림길이었다.
그는 잠시 주변을 살폈다. 경기대쪽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소나무가 여기 저기 처참하게 부러져 있었다. 그 처참한 모양은 아래쪽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왕대가 숲속을 마구 달릴 때 그 큰 소나무들이 왕대의 큰 덩치에 부딪쳐 맥없이 부러져 나간 모양이었다.
놈은 거치장스러운 삼림속에 자신의 전용 도로를 만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강형사는 빼어든 권총에 힘을 더욱 주고는 마침내 왕대의 전용도로로 들어섰다. 가까이서 보니 그 소나무의 긁기도 만만치 않게 보였다. 그런데도 대부분 엿가락처럼 꺽어지다니..... 강형사는 새삼 간담이 서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