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박사의 얼굴이 삽시간에 샛노래졌다. 룸미러를 통해 그의 모습을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혜영의 갑자기 얼굴이 굳어졌다.
“이런, 황박사의 졸개들이
따라 붙었군.”
“정말?”
정호도 황급히 뒤를 돌아보자 차창너미로 서너 대의 검은 승용차가 비상등을 깜박이며 쏜살같이 따라붙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은
지구끝까지 쫓아올 거다. 그만들 포기하지?흐흐,”
부하들의 추격에 자신감을 회복한 황박사는 묘하게 웃으며 혜영을 노려보았다.혜영은 쓴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잡히면
까짓거 우리는 죽겠죠. 하지만 내가 당신과 방의원이 비밀리에 나눈 대화를 모조리 동영상으로 찍어서 이미
기자에게 보냈는데 그것은 어떻게 막죠?”
“동영상을
보냈다고?”
황박사의 눈이 뒤집어질 정도로 휘둥그래졌다.
“네. 아마 곧 온 세상이 뒤집어 질 것입니다.”
태연하게 혜영이 미소까지 지어가며 대꾸하자 황박사는 절망에 빠진 모습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 끝내 너희들이 일을 저지르는구나.”
그때 뒤를 계속 살펴보던 정호가 갑자기 혜영에게 말을 내뱉었다.
“혜영아, 차를 세워!”
“왜?”
“이렇게
가다가는 저놈들에게 끝내 모두 잡히고 말거야!”
“그것은
이미 각오했어.”
“일단
차를 세워봐!
“무슨
수라도 있는 거야?”
혜영은 석연치 않았지만 일단 정호의 요구대로 차를 도로가에 급하게 세웠다. 동시에
정호는 차문을 열고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그리고는 황박사를 거칠게 밖으로 끌어냈다.그리고 권총을 겨누었다.
“황박사님, 나를 희롱한 대가입니다!”
“날 죽이겠다고!”
죽음의 위기에 직면한 황박사의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난
너희들에게 행복을 주려고 했을 뿐이야!”
“나의
운명은 내가 결정합니다.자, 그럼,”
굳은 표정으로 쏘아부친 정호는 서슴없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굉음소리와
함께 박사는 그 자리에 푹 쓰러졌다.
“……”
정호는 착잡한 표정으로 잠시 도로에 쓰러진 황박사를 내려다보더니 점점 가까히 다가오는 추격대를 힐끔 쳐다보고는 차에
다시 올라탔다.
곧바로 승용차는 그 자리를 뜨자마자 비상등을 켜고 정신없이 달려오던 세 대의 검은 승용차가 쓰러진 황박사를 발견하고는 급정거했다.
차에서 무장한 청원경찰들과 보안요원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왔다.손오궁
기술국장과 보안요원대장은 절망스런 표정으로 황박사에게 달려와 그를 끌어았다.
“박사님!”
그러나 황박사는 축 늘어진 채 움직임이 없었다. 창백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황박사의 몸을 살피던 기술국장의 얼굴빛이 갑자기 밝아졌다.
“아, 박사님이 살아있어!”
“정말?”
“팔에
가벼운 관통상을 입고 기절하신 것뿐이야. 빨리 병원으로 모셔라!"
기술국장은 황박사가 죽지않은 사실이 너무나 기쁜지 눈물까지 찔금거리며 고래 고래 소리를 질렀다. 보안요원대장은 혜영과 정호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런데 저것들을 어떻게 하죠?”
“지금은
황박사의 안위가 더 급하다! 빨리 병원으로 옮겨!”
손오궁 기술국장이 신경질적으로 고함을 치자 보안요원대장은 머리를 굵으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방의원님께 보고를 할까요?”
“안돼! 정치인들의 교활한 생리를 몰라서 그래!자신에게 불리하다 싶
으면 언제든지 우리를 죽일 놈들이야. 이 상황을 최대한 우리 힘으로 은밀하게
해결해야 한다.”
기술국장의 목소리는 매우
절박했다. 그는 황박사라고 해도 지금 자신과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황박사를 일으켜 세웠다.그리고는 자신들의 차에 그를 태우고는 오던 길을 급하게 되돌아갔다.
잠시 후 종로에 있는 여민각이라고 쓰여진 정자앞에 급정거한 승용차속에서 혜영과 정호가 황급히 내렸다.혜영은 어둠에 잠긴 여민각의 누각으로 총총히 달려가서 주위를 살폈다.잠시후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종뒤에서 30대 중반의 남자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선배!”
남자의 얼굴을 금방 알아본 혜영은 반색을 하며 남자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좀
늦었네.”
화산(華山)일보의 정치부 기자
정도영은 혜영의 손을 반갑게 쥐었다.
“황박사의
추격을 따돌리느라고 늦었어요.”
“뭐, 추격을 당해?”
깜짝 놀란 정도영은 새삼스럽게 주위를 다시 한번 살폈다.그리고 그는 총을
든 정호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그러자 혜영은 정도영의 손을 얼른 잡고 끌어당겼다.
“걱정말아요. 동영상의 내용을 증언해줄 사람이니까.”
“아, 그래.”
정도영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며 정호에게 다가섰다.그는 정호의 손을 덥썩 잡고는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정도영
기자입니다. 정말 끔찍한 일을 당하셨습니다.하지만
이제 걱정마십시요. 저희가 그런 악랄한 사기꾼들을 모두 쓸
어버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