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도 가상세계의 감옥에 갇혀있는 정호는 헤하고 바보 같은 미소만을 짓고 있다.

혜영이 다시 선글라스 너머 맨 눈으로 슬쩍 살펴보니 마침 저녁식사를 하던 가상의 캐릭터 황승희는 느닷없이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정호를 거실 소파로 끌어당기며 유혹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그것이 한낱 3차원 그랙픽에 지나지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았지만 혜영의 가슴속에서 뜨거운 질투의 불길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리고 아무리 증강현실속이라도 승희의 엉덩이를 탐하며 희희낙낙하는 정호가 정말 꼴보기 싫어졌다.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욕망의 노예가 된 정호를 그대로 놔두고 자기 혼자만 극장을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누구든지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다. 더구나 정호는 가상의 세계라고 해도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저렇게 잘 살고 있는데 자기가 왜 그의 인생에 개입해야 하는가 하고 냉정하게 생각했다.이유야 어쨌든간에 정호의 마음이 자신을 버렸듯이 자신도 그를 미련없이 버려야 한다고 모진 마음을 먹고는 혜영은 밖으로 향했다.

젠장,”

그런데 출입구까지 거침없이 걸어나가던 혜영은 우뚝 멈추어섰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에게 강한 질투심을 느끼고는 가엾은 정호를 그냥 쉽게 넘겨주고 돌아서는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인간인 내가 저 년에 비해서 뭐가 부족해?”

그녀는 서서히 돌아섰다. 어두운 증강현실 공간에서 허공만 쳐다보고있는 정호의 모습이 새삼 가슴시리도록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성큼 성큼 다가가 신혼생활의 달콤한 삼매경에 빠져있는 정호의 옆구리를 꾹 찔렀다.깜짝 놀란 정호가 그녀를 돌아보았다.그의 눈동자는 강렬한 빛을 쬐인 사람처럼 심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정호야, 빨리 이 거지 같은 곳에서 나가자!”

어딜 나가?”

정호는 그가 탐닉하고 있던 승희의 육체에 대한 잔영(殘影) 때문에 혜영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듯 했다.그는 다시 허공에 시선을 돌렸다.

지금 네가 보고있는 것은 다 가짜라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정호는 새색시 승희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것에 무척 짜증이 나는 듯 돌아보지도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호야,”

혜영이 간곡한 표정으로 다시 정호에게 말을 걸려고 하였으나 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할 지 몰라 막막해 하던 그녀는 불현듯 스마트폰을 다시 켜 동영상을 틀었다.그러자 조금 전에  황박사와 방의원이 나누던 은밀한 대화 뚜렷한 음성으로 재현되어 나왔다.화면은 너무 어두웠다.혜영은 정호의 눈앞에 동영상을 들이댔다.

,이게 뭐야?”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내용을 강제로라도 보게된 정호의 두 눈이 크게 확대되었다.비로소 상황파악을 한 그의 몸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믿을 수가 없어……이 모든 것이 가상현실이라고?정말 가짜야?”

정호는 미친 사람처럼 되묻었다.혜영이 냉정하게 고개를 끄떡이자 그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이 울먹이었다.

,안돼,”

정호야,빨리 이곳을 나가자. 그리고  세상에 황박사의 사기행각을 세상에 다 까발기자.”

“……”

그러나 정호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정호야!”

혜경은 왠지모를 분노에 소리를 꽥 질렀다. 그러자 겨우 제 정신을 되찾았는지 정호는 두 사람의 탈출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를 빠져나가지?”

뭔가 방법이 있을거야.”

말을 마친 혜영은 극장의 안을 유심히 살피며 탈출구를 찾았다.하지만 밖에 쫙 깔려있을 청원경찰에게 들키지 않고 않고 건물밖으로 탈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이러 저리 궁리를 하던 혜영의 시선이 문득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금방 혜영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일단 세상에 이 사실을 폭로하는 거야.그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이야.”

설사 탈출에 실패하더라도 상상프로젝트개발공사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지면 나중에라도 모두가 구출받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 것이었다. 일단 결심이 그렇게 굳어지자 혜영은 재빠르게 스마트폰을 켰다.

이런,”

그런데 스마트폰의 밧데리 량을 나타내는 초록색이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희미하게 흔들렸다.동영상을 찾는 그녀의 손가락이 다급함에 몇 번이나 헛손질을 했다.겨우 동영상을 찾아낸 그녀는 공유모드를 선택하고는 유력한 지방신문의 정치부 기자로 일하는 남자 대학선배 정도영의 전화번호를 겨우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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