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쥐새끼를 잡았군!”
엉겁결에 따귀를 얻어맞은 혜경이 바닥에 휘청 쓰러지자 콧수염을 가늘게 기른 다른 청원경찰이 얼른 다가와 그녀를 일으켜세웠다.
“그만하고
황박사에게 데려가자.”
콧수염 청원경찰이 한번 더 손찌검을 하려는 뱀눈 청원경찰을 제지하자, 그자는
마땅치않은 표정을 짓더니 이윽고 혜영의 이마에 권총을 겨누었다.
그들은 겁이 질린 혜경이 양 손을 번쩍 들자 따로 수갑을 채우지 않고 뒤에서 권총만 겨눈 채 경계를 하면서 황박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들은 긴 복도를 한참 따라가다가 이윽고 아랫층으로 내려갔다.그런데 그들은
중간에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노인을 만나자 황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말끔하지만 왠지 카리스마가 넘치는 노인의 옆에는 신원미상의 신사가 서 있었다.
“황박사님, 침입자를 검거했습니다.”
뱀눈 청원경찰이 자랑스럽게 보고를 하자 황재인 박사는 못마땅한 시선으로 혜영을 쏘아보았다.
“네가
끝내 화를 자초하는구나.”
혜영은 황박사라는 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정호에게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그건
네가 알 것 없어.”
황박사는 혜영에게 차갑게 내뱉고는 다시 뱀눈 청원경찰에 시선을
던졌다.
“이
아이를 절대 도망갈 수 없는 정글감옥에 처넣어라.”
청원경찰에게 지시를 내린 황박사는 같이 있던 신사에게 안심
하라는 듯이 미소를 지어보였다.혜영도 재빠르게 그자를 흝어
보았으나 그 역시 파란 선글라스를 착용해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곤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그자의 풍채
는 왠지 익숙했다.
그자가 좀 못마땅한 시선으로 혜영을 주시하면서 관심을 보이자 황박사는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청원경찰들도 혜영을 곧바
로 엘리베이터앞으로 끌고갔다.그들중 하나가 지하5층의 단추를
눌렀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하자 뱀눈 청원경찰이 혜경을 바라보며 위로인지 놀리는 거인지 모를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후후, 안됐다. 끔찍한 정글감옥에 들어가면 끝장인데……”
마침내 지하5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찬 바람이 섬뜩하게
밀려왔다.그런데 어디선가 짐승의 포효소리가 들려왔다. 그녀가
깜짝 놀라며 움찔하자 뱀눈 청원경찰이 히죽 웃었다.
“자,죽음의 밀림에 온 것을 축하한다.”
“여기는
아무나 오는 것이 아니니까.흐흐,”
콧수염 청원경찰도 맞장구를 치며 혜경을 바라본다.
“무서우면
맘껏 소리쳐라. 아무도 못들을테니까.”
뱀눈이 한번 더 지껄이자 콧수염이 짐짓 그를 꾸짖는 척 했다.
“이봐, 너무 겁주지마, 이 아가씨 너무 떨고 있잖아.”
그리고는 권총으로 혜영의 등을 꾹 찔렀다. 그러나 이미 알 수 없는 공포에
질려버린 혜영이 떨기만 할 뿐 꼼짝안하자 그들은 그녀를 강제로 끌어당겼다.잠시 후 그녀가 마구 끌려간 곳은 어느 검은 색 철문앞이었다.
안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들의 소리가 사납게 새어나왔다. 뱀눈
청원경찰이 철문을 열기위해서 그곳에 다가가서 비밀번호를 누르느라고 잠시 허리를 굽혔다.
“……!”
그때를 놓칠세라 혜영은 오른 쪽 팔꿈치로 자기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는 콧수염 청원경찰의 명치를 사정없이 가격했다.
“헉!”
기진맥진한 연약한 여자라고 방심했던 콧수염은 외마디 비명 한 번 지르고는 푹 고꾸라졌다.뜻밖의 사태에 철문을 열던 뱀눈은 크게 놀라면서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려고 했다.그러나
그보다 더 빨리 그녀의 오른 발이 뱀눈 청원경찰의 옆구리로 날아갔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자 역시 앞으로 쓰러졌다.그녀는 땅바닥에 떨어진 권총을 집어들고 두 사람을 겨누었다.
“당신들
간이 부었군. 감히 태권도 유단자의 뺨을 때리다니……”
잠시 후 청원경찰의 옷으로 갈아입은 혜영은 다시 정호가 있는 극장으로 찾아가 은밀히 숨어들었다.청원경찰에게서 빼앗은 파란색의 선글라스를 착용한 덕분에 정호가 앉아 있는 곳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정호는 여전히 스크린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그녀가 살짝 선글라스를
내려 맨 눈으로 쳐다보니 정호와 승희가 한창 단란하게 저녁을 먹고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저
년이 또 여우짓을 하고 있군. 도대체 정체가 뭐야?)
질투심과 뒤엉킨 궁금증을 간신히 누르며 혜영은 선글라스를 고쳐썼다.꼴보기 싫은 장면들이 사라지면서 드러난 빈 의자 밑에 스마트 폰 하나가 떨어져있는 것이 눈에 띠었다.혜영의 것이었다.
혜영은 오, 예!를 외치며 스마트폰을 집어들고는 주머니에서 밧데리 하나를 꺼내들었다.잃어버린
스마트폰을 찾을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가져온 것이었다.청원경찰들은 혜영을 체포하면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스마트폰은 압수해버렸지만 그녀의 주머니 바닥에 깊이 숨겨져 있던 밧데리는 미처 보지 못했었다. 그녀는
재빨리 밧데리를 갈아끼웠다.다행히도 스마트폰은 로고가 뜨면서 금방 살아났다.그런데 아쉽게도 밧데리량을 나타내는 초록색 눈금이 두 줄밖에 되지 않았다.
“금방
이곳을 빠져나갈테니까 이 정도도 충분하겠지”
되찾은 스마트폰이 그럭 저럭 잘 작동하자 혜영은 스스로 애써 위안을 하고 있을 때 출입문쪽에서 누군가 들어오는 인기척이 났다.
“이크, 경찰들이 왔나?”
혜영은 청원경찰들이 다시 쫓아오는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재빨리 고개를 스크린쪽으로 돌려 관람객인 척 위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