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다음날 아침 일찍 혜영은  상상프로젝트개발공사 정문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밤새 그녀를 괴롭힌 무섬증을 푸는 유일한 방법은 회사에서 정호를 만나 자기 스마트폰을 돌려받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정문앞에는 수많은 청년들이 간밤의 피로를 모두 털어버리고 다시 활기차고 자부심에 가득 찬  모습으로 다시 모여들고 있었다.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사원들틈에 섞여 현관으로 향했다. 검색대 옆에는 파란색 선글라스를 낀 청원경찰 두 명이 사원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 하고 있었다.

삐익 삐익!”

그런데 혜영이 검색대를 빠져나간 남자사원의 뒤에 바짝 붙어 묻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경고음이 들려왔다. 줄곳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있던  청원경찰 두 명이 동시에 그녀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돌리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내 스마트폰을 찾으러 왔는데요?”

스마트폰?”

어제 제가 여기다 놓고 갔어요.”

여기 직원이 아니신 것 같은데 여기를 들어왔었다고요?”

선글라스 너머로 그녀를 흝어보던 청원경찰의 눈이 심상치않게 변했다.

그게…… 친구네 집에 왔었는데……”

친구요?”

그녀의 해명이 더욱 수상하다는 듯 다른 청원 경찰은 이미 허리춤에 찬 권총에 손을 갖다 대고 있었다.

. 여기 위치추적 앱을 보면 내 스마트폰이 여기 있는 것으로 나오고 있어요.보세요.”

여기에는 출입증이 없으면 아무도 출입를 못합니다.”

청원경찰들은 혜영이 보여주는 앱을 유심히 보더니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자신들의 철통보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에 매우 놀라는 눈치였다.  그들은 곧 서로  수상한 시선을 교환했다.

“……!”

그들의 은밀한 속셈을 감지한 혜영은 갑자기 뒤돌아서서는 밀물처럼 몰려오는 인파속으로 번개처럼 도망쳐버렸다.

 

 

 그러나 정확히 3일 후 혜영은 상상프로젝트개공사 건물로 줄지어 출근하는 젊은 사원들틈에 다시 끼여 있었다. 그리고는 그녀는 목에 건 사원출입증을 검색대에 대고는 청원청찰들이 자신을 알아볼까봐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조용히 건물안으로 들어섰다.

 

출입증이 없으면 도저히 건물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혜영은 전격적으로 상상프로젝트개발공사에 입사지원서를 냈었다.그런데 설마했는데 놀랍게도 이틀만에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다.최고일류회사로 소문난 공사에 그렇게 쉽게 합격을 하다니 그녀는 잠시 어안이 벙벙했었다.

 

 

“……”

어쨌든 바닥이 황금빛 원목으로 치장된 로비에 들어선 혜영은 곧바로 위치추적 앱을 작동시켰다.

이런!”

그런데  잃어비린 자신의 스마트폰의 밧데리가 다 되었는지 더 이상 붉은 화살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은 건물 전체를  일일이 다 뒤져봐야 한다는  것이라 혜영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별 수 없이 퇴근길에 정호를 만나기로 하고 자신이 일하게 될 시각디자인부로 향했다.시각디자인부에서 일하는 사원들은 혜영을 뜨겁게 환영해주었다.

그녀는 고참사원들로부터 이것 이것 일을 배워가면서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그녀들의 동료들은 모두 창조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일했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쏟아내던 그들은 오후 5시가 되자 환호성을 지르더니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

 

혜영도 그제서야 하루종일 꾹 참고 있었던 은밀한 계획을 실행하기 시작했다.그녀는 사원들이 제일 먼저 로비의 정문쪽으로 달려가 커피를 마시는 척 하면서 검색대를 빠져나가는 사원들을 유심히 지켜보기 시작했다.처음에는 정호에게 직접 전화를 해 만나려고 했다가 혹시라도 그에게 치근덕거리는 것처럼 비춰질까봐 계획을 바꾸어서 일단 몰래 뒤를 밟기로 했다.

“……!”

그런데 사원들이 거의 다 회사를 빠져나간 것 같은데도 정호의 모습은 통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퇴근하는 사원들을 일일이 주시했기 때문에 정호를 놓칠 리가 없었다. 혹시나 정호가 잔업을 하나 싶어서 그녀는 사무실을 조용히 둘러보기로 했다.

 

 

그 시각 상상프로젝트개발공사의 통제실,

그곳에 60대의 황재인 박사는 안락의자에 앉아 전면에 설치된 수 십개의 CCTV화면들을 면밀히 둘러보고 있다.이마가 양 쪽으로 조금 벗겨진 황박사의 얼굴에는 단순한 과학자같지않은 범상치않은 카리스마와 야심이 배여 번들거리고 있었다.

“……!”

그때였다.CCTV의 중앙화면이 켜지면서 잔뜩 긴장한 손오궁 기술국장의 젊은 얼굴이 나타났다.

뭔가?”

박사님, 김혜영이 퇴근하지않고  건물안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역시 우리 생각대로 뭔가 딴 속셈이 있었군.”

황박사는 직원들이 텅 빈 사무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고 있는 김혜영의 동선을 계속 추적중인 CCTV의 스크린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며칠 전에도 이 공사건물안으로 들어오려다가 그대로 도주한 적이 있었다.그러더니 다음날 뜬금없이 대담하게도 회사에 입사원서를 냈었다.황박사는 그녀의 진짜 속셈을 알아보기 위해서 즉시 합격통지서를 발송했었다. 

 “죄송합니다.김정호 결혼식에 저 아이를 직접 불렀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요.”

손오궁 기술국장은 큰 죄라도 지어 죄송하다는 듯 몸을 움츠렸다.황박사는 혜영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대꾸했다.  

“그래서 정호네 신혼살림을 보여줬는데  무엇 때문에 정호에게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군.

“뭔가 냄새를 맡은 것 같은데 그만 잡아들일까요?

기술국장은 앙큼한 도둑 고양이 김혜영을 행여나 놓칠까봐 조바심을 내며 황박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야, 차라리 정호때처럼 멋있는 녀석을 하나 붙여줘.”

그 말씀은 저 아이까지……”

저 아이를 이곳에 붙잡아 두어야 우리 비밀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을 것 같네.”

하긴 그 수밖에 없겠네요.”

기술국장은 지금 자신에 대한 황박사의 신뢰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김혜영을 당장 검거해서 따끔하게 혼내주려고 했으나 황박사가 예상밖의 조치를 지시하자 약간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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