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처음 정호를 만났던 지점에 돌아와서 자기 차에 올라탄 혜영은 무심코 주머니속을 뒤지다가 허전함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스마트폰이 없어진 것이다. 어디서 잃어버렸나 하고 기억을 되살리던
혜영은 정호의 집에 스마트폰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정호가 살던 곳으로 가려고 되돌아서던 혜영은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갑자기
정호가 살던 곳이 어디였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자신이 한없이 걸어나왔던 소방도로마저도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겨우 집으로 돌아온 혜영은 서둘러 집전화를 들었지만 전화번호가 떠오르지 않았다.
“……!”
잠시 막막함에 어쩔 줄 몰라하던 혜영은 자신의 스마트폰에 스마트폰을 잃어버렸을 경우를 대비하여 위치추적을 할 수
있는 앱을 깔아놓은 것을 떠올리고는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는 여동생에게 달려가 스마트폰을 빼앗아와서는 위치추적 앱을 로딩시키고 자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그러자 잠시후 지도가 뜨고 자신이 잃어버린 스마트폰이 있는 곳이 빨간 화살표로 지정되어 나타났다.
“됐어!”
혜영은 밖으로 뛰어나와 자기 승용차에 동생의 스마트폰을 네비게이션처럼 걸어두고는 차에 시동을 걸었다. 잠시라도 스마트폰이 없으면 무척 불편한 세상이라 늦은 시각이었지만 그녀는 정호의 집에 가서 스마트폰을 찾아올
작정이었다.
그녀는 자기의 기억대신 스마트폰에서 알려주는 대로 운전을 해야하는 자신의 처지가 처음으로 한심하게 여겨졌다.
정호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예전의 기억은 새록 새록 살아 나왔는데 방근 전에 방문했던 정호네 집 위치와 전화번호가
잘 생각나지 않다니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어쨌든 얼마 후 스마트폰의 위치추적 앱이 그녀의 차를 데려간 곳은 예술적인 취향이 물씬 풍겨나는 어느 현대식 하얀
건물앞이었다.주변의 삭막하고 멋없는 건물들속에서 두드러지게 탐미적인 자태를 뽐내고있는 신전 같은 건물의
위엄이 그녀를 압도했다. 건물의
예술적인 미를 감상하던 그녀는 ‘건물외벽에 상상프로젝트개발공사’라는
로고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 여기는 지난 번에 와봤던 정호 회사인데……이런, 위치추적이 또 잘못 된 건가?”
당혹스런운 혜영은 스마트폰을 집어들고는 위치추적을 다시 작동시켜 보았다 그러나 자신이 잊어버린 스마트폰이 있는 위치를
나타나는 붉은 화살과 자신이 현재 서 있는 곳을 나타내는 동그라미 표시는 정확하게 일치되어 있었다.
“헐, 저 건물속에 정호가 살던 집이 있다는 소리야?”
자신이 내뱉은 말이었지만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그녀가 다녀온 곳은
기억이 아련하지만 3층 단독주택 건물로 여겨졌다. 그녀는
혹시나 싶어서 건물주변을 돌아보았다.주위에는 사무용 건물과 유흥음식점이 몇 개 있을 뿐 일반 주택건물은
그 어디에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위치추적용 앱의 붉은 화살은 여전히 상상프로젝트개발공사라고 씌여진 곳에 드리어져 있었다.
그나마 조금 합리적인 설명은 자신이 잃어버린 휴대폰을 정호가 발견하고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개발공사 사무실로 가져갔을
거라는 것이었다.그렇다면 도대체 얼마나 급한 일이 회사에서 벌어졌길래 정호는 심야시간에 이곳으로 달려왔단
말인가. 더구나 자신의 휴대폰을 가지고서 말이다.
어쨌든 지금 저 건물안에 정호가 자신의 스마트폰만 갖고 있으면 모든 의문이 풀리는 것이었다.
“……!”
그때 늦게까지 일하고 퇴근하는 듯한 젊은 남자 둘이 정문을 마악 나서는 모습이 보였다. 서둘러 차에서 내린 혜영은 놓칠세라 그들에게 뛰어갔다.
“저
말씀좀 묻겠는데요.”
“무, 무슨 일이죠?”
전형적인 회사원 차림인 젊은 남자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혜영을 피곤에 지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저 건물안에 김정호라는 분이 아직
일하고 있나요?"
“김정호요?”
젊은 남자들중 키다리는 김정호를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는 올백 머리로
멋을 한껏 부린 자신의 동료를 멀뚱히 돌아본다.”
“김정호라는
사람 알아?”
“아니, 이 친구야! 우리 직원이 몇 천명인데 어떻게 일일이 다 아나?”
올백은 대식구를 거느린 회사에 근무한다는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 목소리에 엄청 힘을 주며 대꾸했다.키다리가 고개를 크게 끄떡인다.
“하긴
그렇지.”
“그리고
우리 나오기 전에 점검했는데 오늘은 야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올백의 남자는 피곤하니까 더 이상 물지말라는 듯이 빠르게 내뱉고는 돌아섰다.
“네, 감사합니다.”
혜영은 총총히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남자들의 뒤통수에 대고 고개숙여 인사를 했다.사실
헤영은 회사안에 사택 특히 단독 3층 건물이 있느냐고 물어보려다가 미친 여자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아예 입밖에 내지도 않았다.대신
어둠에 잠겨있는 웅장한 건물을 바라보는 혜영은 갑자기 극심한 무섬증을 느끼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