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 이게 다 네놈들 탓이야 !

 “뭐라고 ? 뭐가 우리 탓이야?

세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글쎄,

“젠장, 네놈들이 세상을 모두 전자 방범장비로 도배질을 해놓았는데 도대체 우리들이 할 일이 뭐가 있겠어? 며칠 전 어느 덜 떨어진 납치범들이 일을 벌인 것을 빼고는 지난 일 년 동안 단 한 건의 사건도 없었다고 !

“아니이 친구!지금 범죄를 그리워하는 거야 ?"

"아니, 범죄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세호의 날카로운 지적에 갑자기 대응할 말이 궁해진 강형사는 말을 더듬었다.세호는 그런 모습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보고 그런 것을 만들어 달라고 애걸 복걸한 사람은 누군데. 바로 자네들이야. 아니범죄를 두려워하던  세상사람들이지. 우리는 단지 머리를 짜내어 온갖 방범 프로그램들을 세상에 선보인 죄밖에 없어. 결국 그 덕분에 사람들은 범죄없는 깨끗하고 안온한 세상에 살고 있잖아그런데 이제는 우리를 탓해? 씁쓸하군.

세호는 정말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쩍 다셨다.

“이 친구 정말 심각해졌네. 난 단지 세상이 너무 조용해져서 경찰로서는 좀 재미없어졌다고 말한 것 뿐인데......

“그렇다면 투정은 그만 부리게나. 어째든 범죄는 근절되어야 해.

“젠장, 투정 한번 잘못 부렸다가 본전도 못 찾는군.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요즈음은 형사로서 사는 재미는 없네. 세상이 너무 투명해지고 정확해졌어. 전설도 사라지고 모험도 없어졌네.

........

처음으로 세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경찰인 철민에게서 일거리와 사는 재미를 빼앗는 데 그도 일조를 했다는 책임감과 미안함에서 그런 듯 싶었다.

 잠시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그때 어디선가 짐승이 포효하는 듯한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강형사가 잠깐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보고는 세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얼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생떼를 쓰는 이 무서운 아저씨에게 무엇을 선물해줄까 ?

그때였다. 세호의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연구실 구석에 있던 TV의 화면 밑에 '긴급속보'라는 붉은 글씨가 큼직하게 나타났다이어서 말끔하게 생긴 젊은 앵커의 얼굴이 화면에 잡혔다.

“긴급 뉴스입니다.

“긴급뉴스 ?

역시 경찰답게 강형사의 눈썹이 제일 먼저 치켜 올라 갔다. 그는 잽싸게 소파에 있던 리모컨을  집어들고  TV의 소리를 크게 올렸다.

“오후 3시 현재 수원시 팔달문 거리에 거대한 호랑이가 나타나 사람을 해치고 있다는 긴급보도입니다.

“호랑이?

“저희 TTT방송 보도진에 의하면 오늘 오후 2 50분쯤 팔달로 북쪽 방향에서 홀연히 나타난 백호(白虎)는 상점으로 뛰어들어 상점 주인과 손님 두 사람을 살해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상점을 뛰쳐나간 백호는 시내에서 닥치는 대로 인명을 살상하고 있습니다. 백호가 워낙 번개처럼 신출귀몰하는 바람에 긴급히 출동한 경찰도 속수무책이라고 합니다. 시민 여러분은 출입을 삼가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무슨 홍두깨같은 소리야시내 한복판에 호랑이라니 ?"

강형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글쎄, 아무튼 게으른 강형사 자네에게 할 일이 하나 생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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