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적이 드문 어느 후미진 주택가, 그 흔해빠진 CCTV도 하나 없는 골목길을 빨강색 팩백을 등에 멘 십대 소녀가 터덜 터덜 걸어가고 있다.오후 3시라 해도 동네 전체가 쥐죽은 듯 했고 그래서 그런지 갖가지 부식들을 싣고 다니며 팔던 트럭들도 그날따라 얼씬도 안했다.워낙 적막해서 도회지라기보다 차라리 시골 읍내 같았다.골목이 점점 길어지고 깊어지자 소녀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듯 스마트폰의 이어폰을 타고 올라오는 음악에 더 집중하기 시작한다.소녀가 가장 으슥한 곳에 자리잡은 3층 단독주택을 마악 지나자 길가에 주차되어있던 검은 색 봉고차가 급히 시동을 건다.그리고는 삵괭이처럼 슬그머니 소녀의 뒤에 천천히 따라붙는다.운전석에는 검은 선글라스를 낀 젊은 사내 녀석이 틀어앉아 왠지 모를 불안감에서 벗어나 음악에 빠져드려는 듯 고개를 까닥거리는 소녀의 잘룩한 허리를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감상한다. 뒷좌석에도 턱수염을 기르고 선글라스를 낀 젊은 사내녀석이 긴장감을 삭히는 듯 껌을 질겅 질겅 씹으며 언제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듯한 자세를 하고 있다.
소녀가 이윽고 서쪽으로 기우는 해 때문에 가장 그늘이 짙게 드리어진 골목길로 들어서자 운전석의 선글라스는 봉고차를 소녀옆에 바짝 세웠다. 그리고는 턱수염을 돌아보며 버럭 소리친다.
“자, 지금이야!”
그말이 떨어지자마자 턱수염은 날렵하게 차문을 열었다.그때까지도 두 마리의 늑대가 자신을 노리고 따라붙은 것을 까맣게 모르고있던 소녀는 그때서야 눈이 휘둥그래졌다.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봉고차에서 튀어나온 턱수염의 우악스런 손이 소녀의 가방을 사정없이 나꿔챘다.그 바람에 소녀는 맥없이 차안으로 끌려들어왔다.소녀를 잡아챈 턱수염이 서둘러 차문을 닫아버리자 운전석의 선글라그가 재빨리 잠금장치를 작동시켰다.비로소 사태를 파악하고 새파랗게 질린 소녀가 비명을 지르려고 하자 턱수염은 시퍼렇게 날이 선 잭 나이프를 들이댔다. 소녀는 그만 아무 소리도 못하고 덜덜 떨기만 했다.그 틈을 이용하여 턱수염은 청테이프로 소녀의 입을 봉해버렸다.
“자, 이제 외곽으로 빨리 빠져!”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해냈다고 생각했는지 턱수염은 의기양양하게 운전석을 향해 소리쳤다.
“오케이!”
운전석의 젊은 녀석도 완벽하게 풀려가고 있는 자신들의 납치행각이 맘에 든 듯 히죽 웃었다.저 아이의 부모라면 수 억 원정도는 쉽게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아 더욱 기분이 좋았다.경찰의 추적을 피하고 돈을 빼낼 대책도 이미 완벽하게 준비해두었다. 그런데 그들이 주택가에서 벗어나 오산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한 3분 정도 기분좋게 달리고 있을 때 느닷없이 뒤에서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운전석의 선글라스가 설마 자신들을 쫓아오는 것이 아니겠지 하는 표정으로 룸미러를 흘끔 보다가 흠칫 놀란다. 세 대의 경찰차가 분명 자신들의 봉고차를 겨냥하고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놈들이 정말 우리를 쫓아오는 거야?”
“설마, 이렇게 빨리?”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연신 뒤를 뒤돌아보던 턱수염의 얼굴빛도 이내 샛노래졌다.그리고 그들이 몇 미터도 더 가기 전에 경찰차 한 대가 질풍노도처럼 달려 봉고차를 앞지르더니 그 앞에서 급정거를 했다.기겁을 한 선글라스는 갓길로 피하였다.그 바람에 봉고차가 가드레일을 들이박고 정지하자 경찰차에서 권총을 거머쥔 정복 경찰과 사복형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중키에 전혀 형사같이 생기지 않은 남자가 두 납치범에게 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꼼짝마!”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