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일주일을 밑도 끝도 없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던 혜영은 결국 정호가 일한다는 상상프로젝트개발공사를 직접 답사해보기로 했다.

태권도 도장은 부관장에게 맡기고는 혜영은 정호가 일러준 회사의 이름을  스마트폰의 네비게이션에 찍어넣고는 차를 몰았다.

 

()의 북쪽으로 10분 정도 달리자 얼마 후 네비게이션에서 목적지 근방에 도착했다는 안내음성이 나와 그녀는 공터에 급히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과연 어떤 건물일까 하고 기대와 걱정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차창너머로 이리 저리 살피던 그녀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슬그머니 번졌다.동쪽 방향 1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그리스의 하얀 신전같은 웅장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그 건물은 회색의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멋대가리 없는 사각형의 콘크리트 건물이 아니라 건물 전체가 미학적으로 설계된 탓에 주변에서 눈에 확 뜨이는 예술적이고 세련된 건축물이었다.

군계일학같은 위풍당당한 건물을 말끔하고 나즈막한 하얀 나무 담장이 운치있게 둘러싸고 있었다.

 

혜영은 자기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검은 색 정장을 정갈하게 빼입고는 발랄한 모습으로 하얀 건물의 정문으로 떼지어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상상프로젝트개발공사라는 것을 직감했다. 혹시나 했던 그녀의 불안감이 순식간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혜영은 보면 볼수록 맘에 쏙 드는 웅장한 건물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정호가 사연이야 어쨌든간에 자신의 인생을 전부 걸어도 될 만한 직장을 획득했다는 사실을 마침내 확인하고는 비로소 새삼 콧끝이 찡해짐을 느꼈다

 (저 정도면 그동안 온갖 유혹과 비난을 물리치고 정호를 기다려온 보람이 있어.)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정호로부터 모든 연락이 뚝 끊어졌다.

 

 

“………!”

지난 번 자기 눈으로 정호회사를 확인 한 후 나름대로 부푼 꿈을 키워가던 혜영은 지난 번 호프집에서 정호를 본 이후에는 그와는 어떠한 접촉도 없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고는 이상한 불안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신입사원이라 일 배우느라고 무지하게 바쁘겠지만  전화 한 통 할 시간도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혜영은  혹시 정호가 변심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백수시절때 구박한 기억이 되살아나 그녀를 걷어차고 딴 여자를 사귀면서 자신에게 소리없이 복수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그냥 앉아서 맥없이 당할 혜영이 절대 아니었다.그녀는 저녁에 도장일이 끝나자 마자 곧바로 정호의 모친에게 쫓아갔다. 혜영은 정호와는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온 터라 정호 모친하고도 허물없이 왕래를 하고 지냈었다.

정호는 왜 그리 바빠요?”

아니, ?”

육십을 조금 넘은 정호의 늙은 모친은 느닷없이 나타나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는 표정으로 혜영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보이지 않아서요?”

안보이다니? 지난 주에 며느리하고 우리 집에 놀러왔었는데……”

정호모친은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다가 나왔는지 불쑥 나타난 혜영이 별로 달갑지않다는 듯 한마디 툭 내던졌다. 눈에 익은 일일 드라마를 한창 풀어놓고있는 TV가 놓여있는 거실안으로 진입할 틈을 노리던 혜영은 흠칫 동작을 멈추었다. 되돌아보는 그녀의 눈이 주먹만해졌다.

며느리라니요?”

그 사이에도 정호모친은  TV쪽을 슬쩍 바라보다가 혜영의 엉뚱한 대꾸에 연속극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못마땅한지 볼멘 소리를 한다.

정호 마누라말이야!”

정호 마누라요?”

혜영이 매우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제서야 정호모친은 겨우 연속극에서 시선을 떼어내며 얘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 하는 표정으로 혜영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정호 결혼했잖아?”

결혼요?”

혜영의 얼굴이 아예 백짓장처럼 하애졌다.

 그래. 혜영이 너도 결혼식에 왔었잖아.”

정호모친의 목소리는 혜영이 자신을 놀린다고 여기는 듯 약간 노기마저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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