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르르”
생시인지 꿈인지 모를 묘한 시각에 그 남자는 오늘도 혜영의 방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
섰다.그 남자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40대 후반의 P였다.위 아래 실 하나 걸치지 않은 그는 도둑
고양이처럼 그녀의 침대로 다가왔다.숨죽이고 남자의 동작을 살펴보던 그녀는 문득 자기가 침대
가 아니라 어느 물레방앗간의 좁은 공간에 있다고 생각했다.그리고 남자도 P가 아니라 K라는 느
낌이 들었다.
어쨌든 그녀는 남자가 침대로 기어들어와 그녀의 가슴을 꽉 움켜쥐자 그녀도 남자의
튼실한 물건을 잡아 틀었다.차츰 남자의 숨소리와 동작이 거칠어졌다. P는 사무실에서 매일 보던
무미건조한 남자가 아니었다. 한 마리의 붉은 늑대였듯이 자신도 한 마리 발가벗은 여우가 되어
야 한다는 본능이 폭발했다.그런데 어느 순간 그녀는 홀연히 까맣게 잊고 있던 일 하나를 생각해
냈다.
“……!”
오늘밤은 유혹에 넘어가 절대 오르가즘을 느끼지말고 P의 몸에 특히 팔에 뭔가 표시를 해두어야
한다는 일념이었다.그래서 그녀는 오르가즘에 올라가는 순간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의 손톱으로 남
자의 오른 손 팔뚝을 세게 긁었다.가느다란 붉은 생채기가 생겨 꽤 아팠을 텐데 사내는 그것마저
자신의 힘의 상징으로 여기는 듯 더욱 짐승처럼 날뛰고 좋아했다.
그 바람에 헤영은 잠에서 깨어났다.침대옆 탁자에 있는 .스마트폰을 눌러보니 새벽 4시였다.진땀
에 젖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정말 그녀는 자신이 P하고 관계를 가진 듯 가슴이 뛰고 얼굴이
붉어졌다.그런데 왜 종종 사무실 남자 동료가 꿈속에 등장해 자기랑 밀회를 하는 것일까
.
사무실에서 P는 낮은 파티션 건너 맞은 편 책상에서 근무하고 있었을 뿐 혜영은 P한테 특별한
감정이 없었다.한 집안의 평범한 가장인 그도 그녀에게 특별하게 행동한 적이 없었다.그저 서로
무난한 직장동료였을 뿐이었다.그
런데 얼마 전부터 인가 그가 혜영의 꿈속에 가끔 나타났다.
처음에는 꿈속의 일이라 어쩌다 자신의 숨겨진 욕망이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별로 기분나쁘
게 생각하지 않았다.남편에게는 벼락받을 소리였지만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겼을 때의 기분을 간접
적으로 체험한 것 정도로 치부해버렸다.만약 꿈속의 일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 이 세상 사람들
은 모두 중죄인이 될 것이다.
하지만 꿈속에서의 일일지라도 회수를 잦아지자 그녀는 웬일인지 기분이 찝찝해지기 시작했다.사
무실에서 P와 만나는 것 자체가 불편해지고 그가 자신을 향해 씩 웃으면 마치 난 너의 모든 것을
알고 있어 하는 것 같아 몸서리가 쳐졌다.
차츰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그런데도 그는 꿈속에서는 무단침입하여 그녀의 침대를 범하곤 했다.
차츰 나중에는 우습게도 그가 진짜로 자신을 범하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가 되어버렸다.그러나 아
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런 생각은 정말로 우스운 것이었다.
꿈속의 일로 멀쩡한 남자를 강간범으로 고소하면 어느 누가 자신의 말에 귀기울 것인가.모두가
자신을 미친 년으로 여기고 당장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릴 것이다.나 자신도 정말 자신의 뇌에 이상
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어쨌거나 꿈속에서의 P 와의 밀회는 계속 생생하
게 느껴지고 현실세계는 나는 거의 미칠 지경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어느 날 혜영은 직장 회식자리에서 곁에 앉은 P에게 술취한 척하며 슬쩍 물어보았다.
“선배님, 요즘 무슨 꿈 꿔?”
“꿈? 뭐 승진하는 꿈?”
“아니, 그냥 꾸는 꿈!”
“아하, 난 원래 아무 꿈 안 꿔.기껏 꾸어봤자 내용도 생각 안 나는 개꿈이야.그건 왜?”
그리고 빤히 혜영을 바라보는 P의 무심하고 평범한 눈빛에 혜영은 애꿎은 소주잔만 연거푸 들이
마셨다.그랬었다.그녀의 숨겨진 욕망이 꿈속에서 고삐 풀어진 망아지처럼 성을 탐닉하고 있는 것
으로 스스로 몰아갔다.
하여튼 꿈속에서 P의 팔뚝에 생채기를 낸 다음 날 아침 , 숙취로 무거운 머리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서던 혜영은 P와 중간에 마주쳤다.그런데 P의 오른 쪽 팔뚝에 붉은 생채기가 그려져 있었다.
“선배님 팔뚝은 왜 그래?”
혜영은 자기 책상에 털썩 앉으며 무심한 척 P에게 물었다.
“응, 오늘 아침 우리 집 야옹이가 발정이 났는지 발톱으로 할퀴었군. 암컷이 무척 사나워.”
P는 파티션 너머로 반창고를 달라는 듯 손을 벌리며 웃었지만, 그의 생채기가 꿈속의 것과 너무
똑같아 혜영은 도저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반창고를 줄 수 없었다. 그날로 혜영은 며칠 휴
가를 내고 사무실에 안 나갔다.
우연이었겠지? 아니야. 아니라니? 누군가 내 꿈속으로 침입해오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어! 아,
요즘 내가 과로로 내가 너무 예민해진 것은 아닐까.
처음에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집안에 콕 박혀 지내다보니 어지러운 마음이 차츰 안정이
되었다.그리고는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만지며 뒹구는 일이 차츰 지루해졌다.그래도 딱이 힐 일이
없어 그저 스마트폰만 못살게 만지작거렸다.
그때 수많은 어플의 숲에서 헤매던 혜영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이
어.느 어플 광고에 꽂혔다.
-너의 꿈속으로-라는 어플이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신들린 것처럼 클릭을 하자 어플의 내용물이 쫙 펼쳐졌다.제작회사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누군가 수신자의 기본 정보를 입력하면 어풀이 잠잘 때 생기는 수신자의 수면뇌파를 인
식하여 발신자를 그 사람의 꿈속으로 유도한다는 어플이었다.
다소 황당한 어플이었지만 최근에 비슷한 일을 겪은 혜영에게는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그녀는 침
을 꼴깍 삼키며 어플을 노려보다가 비장한 마음으로 어플을 다운받았다.그녀는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수신자로 P의 전화번화를 찾아 입력시켰다.다행스런 것이 어플이 제대로 작동하면 발신자의
전화번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P에게 ‘사무실은 별 일 없나요?”라는 문자를 쏘았다.
그리고 혜영은 자기 스마트폰을 자기의 머리맡에 두었다.그리고는 P도 그의 스마트폰을 뇌에서
가깝게 두었기를 간절히 빌었다.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그러나 잠은 생각만
치 쉽게 오지 않았다.한참을 뒤척이다 혜영은 간신히 잠들었다.
“……”
꿈속에서 혜영은 어느 안개 낀 외진 산속을 걷다가 으슥한 물레방앗간을 발견했다.그런데 다 부서
진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자신의 침실이었다.그곳에 P가 벌거벗은 몸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웃고 서
있었다.
그는 한동안 못 만나 욕정이 가득 쌓였는지 성난 말처럼 그녀에게 달려들었다.그러나 이번에는
혜영은 뒷걸음치며 도망쳤다.하지만 욕정에 미쳐 달려드는 짐승을 어떻게 그녀가 막아내랴. 그녀
가 엎어지자 거대한 말이 그녀의 뒤로 달라붙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헤영은 필사적으로 조그만 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랬다.남
자의 뜨거운 물건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녀의 손에 번적이는 작은 은장도가 쥐어져
있었다.그녀는 그것으로 백말의 가슴을 향해 힘껏 찔러버렸다.심장이 터진 듯 단발마의 비명이
들리고 뒤로 물러서는 백말의 얼굴에서 P의 낯짝이 스쳐갔다.그리고는 그 위로 두터운 암흑이 내
렸다.
“아앗!”
혜영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홍건이 젖은 속옷속에서 그녀의 작은 몸이 애처롭게 떨고 있었
다. 가쁜 숨을 진정하면서 그녀는 꿈속의 일을 곰곰이 회상했다.비록 꿈이었지만 통쾌했다.
다음날 아침 혜영은 휴가를 끝내고 사무실에 출근했다.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고
심상치 않았다.그때 K선배가 그녀를 보더니 급히 다가왔다.그런데 그의 옷이 말끔한 검정색 이었
다.
“야, 오대리, 그렇지 않아도 연락하려고 했는데,”
“무슨 일 있어요?”
“참 세상 별일이야. 하룻밤 안녕이라고 하더니 딱 그렇네.”
“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아 글쎄, P가 새벽에 심장마비로 죽었단다.”
“네엣?”
“원인은 아직 모른대. 쯧쯧,”
“……”
K가 두려운 듯 몸서리치며 혀를 차자 혜영의 얼굴은 차츰 창백하게 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