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결코 첨단 과학에 뒤쳐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고 어디서 얻어들은 단어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그 말을 내가 자신의 신제품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피에로는 무척 반색을 했다.
“그래도 안목은 있었군요. 이건 그 이상입니다.”
“당신 말이 사실이라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환장하면서 사겠군, 숨은 애인을 찾기 위해서 말이요.후후.,”
나는 짐짓 농담을 하는 것처럼 헛웃음을 치며 나의 본심을 숨겼다. .
“ 손님도 별 수 없을텐데요.”
요란한 분장사이로 피에로의 입가가 묘하게 비틀어졌다.하지만 내가 기분상할까봐 얼른 말꼬리를 이어갔다.
“사실 애인이 있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죠. 더구나 그것이 마누라 몰래 사귄 것도 아니고 예전부터 내게 있었던 애인을 찾아내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죠.”
‘잠깐, 예전부터 있었던 애인을 찾아내다니? 그게 무슨 뜻이요?”  

 내가 슬슬 관심을 보이자 피에로는 내 눈앞에서 선보이던 그 휴대폰을 내손에 덥썩 쥐어준다.
얼떨결에 살펴본 슬라이더형 휴대폰은 전면의 반 이상이 사각형 액정화면으로 구성된 그저 평범한 것이었다. 액정의 바로 오른쪽 위에 자리잡고 나를 무심히 바라보는 렌즈도 별로 시선을 끌지 못한다.
액정 바로밑에는 100원 짜리 동전 크기만한 은색 원이 그려져 있고 원을 따라서 10개 정도의 작은 원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안에는 아무런 내용도 적혀 있지 않았다. 단지 원 바깥에 는 0부터 9까지의 숫자가 각각 하나씩 붙어 있었다.그리고 전원을 켠 상태도 아닌데 파란 불빛이 그 작은 글자위를 빠르게 돌고 있는 것이 좀 특이했다. 시큰등한 내 표정을 읽은 눈치빠른 피에로는 액정의 왼쪽 아래에 있는 메뉴 버튼을 가리켰다.  


“사실 이것은 겉모습만 휴대폰이지 손님의 마음을 읽는 기계랍니다. 만약 애인찾기를 원한다면 이 메뉴에서 ‘숨겨진 애인찾기’ 모드로 돌려놓고 이 유리눈을 잠시 바라보면 이 휴대폰이 손님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냅니다. “
피에로는 상단위의 무심한 렌즈를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내 마음을 읽는다고?”
“네. 손님의 취향을 읽는 거죠. 그리고 메뉴밑에 있는 통화 버튼을 누르면 입체 휴대폰이 천년의 동굴속 같은 손님의 마음속을 샅샅이 뒤져 손님의 취향에 걸맞는 숨어있는 애인을 찾아내어 연결합니다. 그러면 마술램프의 요정처럼 입체영상으로 손님앞에 짠!하고 나타난다 이거죠 .”
“에이, 믿을 수가 없어.
“믿든지 말든지 그건 손님의 자유입니다. 그대신 손님께서는 환상적인 경험을 할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텐데요.”
믿어달라고 애걸하지 않고 딱 잘라서 단언하는 피에로의 그 말이 오히려 이상하게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렇다고 대놓고 피에로의 황당한 이야기를 수긍할 수도 없었다. 그런 나의 마음을 이미 꿰뚫어보았는지 피에로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그렇다고 아무나 숨겨진 애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
“무슨 조건이라도 있다는 거요?”
“암. 그렇게 굉장한 일이 쉽게 이루어진다면 그건 사기가 아닙니까?”
피에로가 사기라는 말에 유난히 강조를 하면서 오히려 반문하자 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하지만 걱정마세요. 그 조건은 바로 숨겨진 애인을 찾기위해서는 단지 처음에 반드시 초기화를 해야한다는 점입니다.“
“초기화?”
피에로가 제시한 조건이 초기화라는 사실에 나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 초기화란 손님의 마음의 세계를 완전히 복사하고 그것을 입체휴대폰에 재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처음 한 번만 초기화시켜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초기화없이도 즉각 즉각 입체영상을 만들어 냅니다.”
“말은 그럴 듯 하군.”
“잘나가가다가 또 삐딱선을 타는군요. 하여간 믿든지 말든지 그건 당신 자유입니다.어쨌든 초기화하는 동안에는 절대 이 휴대폰으로 통화를 해서는 안돼요.”
“정말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군. 초기화시키는데 기껏해야 한 시간 이상 걸리지는 않을테니까.”
어느새 나는 피에로의 언어의 마술에 걸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그것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다.그런데 피에로는 나의 대답에 정색을 했다.
“아닙니다. 100일이 필요해요.”
“100일씩이나? “
“네.”
“아니, 무슨 초기화가 100일씩이나 걸려 ? 잠시도 통화를 안하고는 못사는 요즘 같은 시대에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불편해도 참아야 합니다. 그 조건만 잘 지키면 100일 째 되는 날 손님은 고대하고 고대하던 아름다운 애인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대가에 비해 너무 쉬운 일 아닌가요?”
너무나도 단호하게 말을 마쳤지만 피에로도 잠시 긴장한 빛을 띠우며 나의 반응을 살폈다.
“그게 뭐가 쉬워?”
“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볼 만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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