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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주의자 마리아 - 그때는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안정혜 지음 / IVP / 2019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기독출판사에서 웹툰을 책으로 출간하기 시작했다. 새물결플러스에서 나온 일명 “뒷조사”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다. 이번에는 IVP와 웹툰이 만났다. 이 환상적인 콜라보의 첫 번째 작품은 바로 <비혼주의자 마리아>, 기독교 웹툰 사이트 ‘에끌툰’에서 ‘린든’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여성 그리스도인 작가 안정혜 씨의 작품이다. 나는 텀블벅 프로젝트 참여로 공식 출간보다 일찍 책을 받게 되는 영광을 누렸다. “에끌툰 연재작 중 조회수 1위”를 차지한 이 책만의 매력을 한번 살펴보았다.
먼저, 이 책의 주제가 눈길을 끈다. 최근 사회적 이슈인 “페미니즘”이 책 전체를 감싸고 있다. 주인공 ‘마리아’가 파혼을 하고 비혼주의자가 된 배경을 쫓으며, 자연스레 교회 안에 팽배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마주하게 한다. 스토리 곳곳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적나라하고, 숨김이 없다. 그런데 이 사례들이 상상으로만 탄생한 게 아니라는 점은 남성인 나를 부끄럽게 했다. 작가는 1년 넘게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 그룹 미팅 등을 하고 관련 도서와 기사, 자료 등을 기반으로 연구했고, 그 결과물이 다양한 사례로 나왔다. 부서 담당전도사가 여성 신체에 대한 무례한 발언을 한다던가, 수련회장에서 부장 집사가 여자 청년을 성희롱 한다던가, 예배 시간 중에 설교자가 자매의 옷차림에 대한 지적을 받는다던가 하는 불쾌한(?) 사례들부터, 여자 청소년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전도사를 두둔하는 담임목사, 상처로 교회를 떠난 여성에 대해 이단이라는 소문이 도는 교회의 현실,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가 성 상담 전문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등 고개를 젓게 하는 사례들까지 등장한다. 이런 사례들을 마주하며 남성으로서 여성들의 수치와 아픔을 공감하지 못했고, 주변 남성들의 무감각과 무지함에 침묵하였던 것을 반성하게 되었다. 나아가 목회자와 성도 모두가 이 책을 출발점 삼아 나와 우리 공동체에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고,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예방할 것인지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작품이 스토리 전개를 위한 여러 사례들로만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페미니즘과 관련한 사회적·신학적 논쟁거리도 함께 집고 넘어간다. 이를테면, 존 파이퍼의 “남녀 평등주의가 성폭력의 원인입니다”라는 발언에 관해 설명하기도 하고, “그루밍 성범죄”에 대한 개념도 다룬다. 또한, 성차별적으로 보이는 바울의 성경 내용이라든지, 가부장제를 죄에 따른 저주로 볼 수 있는지 등 성경 이해에 대한 여러 이슈들도 이야기 전개에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작가는 사례 조사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신학적 이슈 역시 쉽게 여기지 않았다. 그녀가 적합한 정보전달을 위해 열심히 관찰·연구한 흔적은 참고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로드니 스타크의 <기독교의 발흥>, 크레이그 키너의 <바울과 여성>, 그리고 각종 주석들(NICOT 창세기, 틴델 구약주석 시리즈 1: 창세기, WBC 마태복음 하) 등 실제 인용하게 된 참고문헌은 이렇지만 이 외에도 다양한 신학서적들을 주제탐구를 위해 참고하였을 걸로 보인다(웹툰 작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독서토론”이라는 상황을 설정하여 논쟁거리에 대한 대립된 의견을 모두 보여주려는 상황 설정도 돋보이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신학적 내용들을 웹툰의 특장점을 살려 간결하고도 명료한 표현력에 담아낸 것도 칭찬하고 싶다.
페미니즘에 관해 사례를 통한 문제 제기, 전문자료들을 바탕으로 한 면밀한 분석 과정을 거친 후 작가가 독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여성들이 더 이상 차별과 폭력으로 인해 위축되지 않길, 그리고 남과 여 모두가 동일한 인간 존재로서 당당하게 자립해 나가길 바란다는 것이다.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으로서’ 신앙 행위를 하고 있었던 마리아도, ‘인간으로서’ 예수 부활의 증인이 되었던 막달라 마리아도 둘 모두, 저주가 끊어진 하나님 나라의 자립된 개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요.(266~267p)
하나님 나라에선 가부장제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결혼도 없어지는구만요.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남녀 역할에 집착하기보다 그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284p)
지금 이 모임을 통해서 깨달은 우리부터 목소리를 내고,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요? 더 이상 차별이 없고, 남녀의 위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가 자립된 개인으로 서서 서로 사랑하게 될 그 부활의 날을 그려보면서요.(288p)
우리(남성, 그리고 여성 모두)는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당부에 충분히 귀 기울여야 한다.
책을 읽으며, 과학과 창조기사의 관계를 다룬 <창조론 연대기>가 생각났다. ‘만화’로 시작해 ‘신앙’과 ‘신학’을 최대한 올바르게 해석하고자 하는 작품 스타일이 굉장히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 책의 작가(김민석 씨)와 이 책의 작가(안정혜 씨)가 부부라고 한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두 분 모두 웹툰으로 한국교회에 여러 화두를 던지는 중요한 역할들을 감당하고 계시다. 이 노력의 경주를 지속해주시길 바라며, 다음 작품도 손꼽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