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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아직 희망이 있는가? - 100년 후에도 희망이 되는 기독교를 위하여
김형석 지음 / 두란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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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과 무뎌짐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미래는 없을지도.

 

기독교는 무엇이며, 종교는 무엇인가. 이 책은 그런 질문들에 대해 어떤 형식적이며 이론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그것들은 고착화되어 있지 않고 생동하는 것으로서 우리 삶의 영역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분명히 강조한다. 주 무대는 한국이 되어 역사적으로 영향을 끼친 기독교에 대해서, 그리고 그 기독교가 마땅히 기독교라는 한 종교로 오늘날의 우리에게 작용하기 위한 것으로 본질적 정의를 풀어가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기독교가 개독교라고 불리며, 목사님이 목사놈이라고 불린다. 어쩌면 훗날에는 잘못을 하지 않고도 너무나 당연한 대명사로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를 향한 사회로부터의 신뢰는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유럽과 미국이 그런 과정을 밟았으며 한국 또한 머지않았음을, 향후 100년을 견지하며 계속 주의해야 함을 저자 또한 역설한다. 이제는 누구 하나의 잘잘못으로 치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100세의 나이를 넘기며 아직도 활발한 저작활동과 강연을 펼치고 있는 저자이다. 그는 살아온 100년을 되돌아보고 또 다시 살아갈 100년을 내다보며 한국 기독교를 향한 뼈아픈 조언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희망의 메시지들을 함께 전한다. 그는 마치 예언자(선지자)와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구약 성서의 예언미래에 일어날 일을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대언한다'는 뜻이다. ‘너희가 돌이키면 충분히 멸망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지금의 기독교에도 아직 희망이 있으니 얼른 반성하고 노력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이익만 챙길 줄 아는 자에게는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아야 한다. 우리의 공동체는 평안한지, 사회는 기독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흔적은 어떻게 다시 드러날 수 있는지를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기독교의 사명은 기독교의 세상화가 아니다.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그리스도화하는 일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선포들에 우리는 반응할 수 있을까? 기독교의 정체성을 망각할 때가 있고, 기독교의 방향성을 잘못 설정한 것에 무뎌지곤 하는 우리에게 마땅히 읽혀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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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만나거든 - 현실과 씨름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야고보의 지혜
박대영 지음 / 두란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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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마주하는 우리는

시험을 다스리는 법을

너무도 쉽게 잊고 살기에,

 

인간은 숱한 시험을 만나게 되지만, 그 중에서 야고보서가 특히 강조한 것은 에 대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두 가지는 인간이 취하기 가장 쉬운 것일 것이다. 또 그 취함은 너무도 쉽게 욕구를 넘어서 욕심이 되는 지경에 이른다. 우리의 흘러가는 삶을 잠시만 의식해보더라도 우리 자신을 거쳐 가는 돈과 말은 차고도 넘친다. 우리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평탄하게 흘러가지 않고 우리를 거리낌 있게 하는 모든 것들이 시험이 된다면, 돈과 말이 주는 위험은 가장 친숙하고도 적합한 것이 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돈과 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시험자체에 야고보서가 주목하고 있다는 것이다. 돈과 말은 시험에 가장 가까울 뿐이다. 그렇게 범주화된 시험들에 대한 총체적인 해결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그 근본(9:10)이라 하는 지혜가 됨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계속 상기시켜야 하는 것이다. 시험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들에 대해, 우리는 지혜로 하여금 시험을 영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영적으로 대응할 줄을 알아야 한다.

 

이 때 영적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애매모호함을 준다. 나는 이에 대해 과감하게 주어진 것으로부터 한 걸음 거리를 두고 하나님께 구하며 관망하고자 하는이라고 해명하고 싶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선하고, 좋고, 유익하고, 건강하다는 것도 다 본질적으로 그런 것이 될 수 있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저자가 책의 초입에 이야기 했듯, 부와 가난, 평탄과 험난, 건강과 병약은 우리에게 있어 독과 득이 될 수 있는 지점이 매번 달라지기 때문이다. 결국 시험영적인 것을 이끈다.

 

이 험난하고 쉽지 않은 과정을 인지하면서, 나는 야고보서와 이 책을 읽으면서 대담하게 한 가지를 취하고자 한다. 그것이 시험에 대항할 지혜인지, 영적인 것의 산물인지는 여전히 쉽게 규정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것은 바로 동등성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이 이웃을 섬길 줄 아는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믿음과 행위가 함께 일어나는가를 늘 되묻는. 두 가지를 동등하게 여기는 것이 줄 수 있는 유익함에 대한 고찰이다. 우리를 더욱 단단하게 그리고 온전하게 이끌 것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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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듣는 법 - 분별과 은혜
김형익 지음 / 두란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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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것이 익숙하여
듣는 법을 놓치진 않았는지,
그런 자신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인간의 눈이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항시 떠서 사물과 현상들을 관찰하는 것처럼, 귀 또한 쉬지 않고 만물의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들 중 어떤 것은 무의미하게 우리를 스쳐지나가지만, 다른 어떤 것은 우리의 머리와 가슴에 새겨져 그 삶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충분히 ‘듣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듣고자 하는 대상과 내용에만 집중을 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우리는 듣는 주체인 우리의 상태와 그 듣는 방식을 다듬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저자는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경험하는 ‘설교’를 대상으로, 바로 앞문장의 내용-듣고자 하는 대상, 대상이 전달하는 것, 듣는 주체, 듣는 방식 등-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듣는 법’을 성서를 근거로 하여 제시한다. 최소 일주일에 주일 공예배 한 번을 드린다고 했을 때마저, 우리의 금쪽같은 시간은 상당히 소요된다. 절대 허투루 보낼 수 없는 귀한 시간이다. 더욱이 설교를 하나님의 대언자인 설교자를 통해 그 분의 말씀이 선포되는 시간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일분일초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설교는 일반적인 강의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이야기들이 영적으로 우리 가슴에 심기어지는 은혜의 순간이며 그것을 전달 받는 장애물이 없으면 없을수록 더욱 풍성하게 누릴 수 있는 시간이다. 그 듣는 자들로 하여금 설교에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듣는 자들의 믿음과 분별, 그리고 순종함이 있는 설교는 마땅히 설교로 작용한다. 늘 내 눈 속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 눈 속의 티를 먼저 보는 습성을 가진 우리는 설교자를 책망하기 바쁘다. 그러나 저자는 설교의 강력함은 오롯이 설교자와 설교를 듣는 자들이 함께 나아감에 있음을 역설한다.
책에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설교를 듣는 법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설교를 듣는 자들을 향한 권면은 충분하지만 위로가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부터 극심한 물질적‧육체적‧정신적 피해를 받는 이들의 상황을 더욱 분석하고 그 처한 마음을 조금 더 헤아리는 깊이 있는 장과 단락이 있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설교 듣는 법을 모르는 것에 대한 가르침보다 그들이 처한 어려움에 대한 공감이 더욱 우선되어야 할 과제 같이 느껴진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이미 아신다.(마6:8,32) 우리가 듣고자 하는 것은 어떤 것을 향하고 있어야 할까? 무엇을 들을까 무엇을 취할까 고민하고 있다면 과감히 내려놓고 이 책을 통해 천천히 발견해보자!


우리는 사람에게 너무 집중합니다. 설교자의 의도, 설교자의 생각을 묵상하지 마십시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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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진심 - 산상수훈을 통해 듣는
스카이 제서니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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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 누군가는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한다

이 책이 꼭 그렇다.

 

마태복음 5·6·7장에 나오는 산 위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결코 단순한 내용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읽어내야 하고 그것을 위해 시간을 들여 묵상하고 공부해야함을 저자는 은연중에 역설한다. 성경을, 그리고 성경에 적혀있는 예수님의 명령과 진심을 정말 제대로 읽고 있는지 각자 확인해보라는 것이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어떤 공격처럼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부드럽고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당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이들은 선포 자체에서 권위를 느낄 만큼 놀라움을 느꼈다. 내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만약 예수님의 가르침이 진실로 복음이고 진리가 맞다면,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서도 그것은 어김없이 새겨들을 만한 것이 되며 우리를 참된 평안 가운데 살게 할 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서두에 이 책에 대해 진리 자체가 아닌 진리를 맛보다로 표현하고 있다. 이 책은 분명 저자의 관점에 따라 좋고 선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지만 그조차 진리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진리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새롭게 이해되어 다가올 것이며, 그 자체의 고정성을 떠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역동성을 발휘할 때 진리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역동성은 결국 우리를 행동하게 만들 것이다. 그랬을 때 우리가 진정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즉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의 진심을 놓쳤을 수 있다. 세상에 대한 타협적인 태도와 입맛대로 취함, 그리고 말씀에 대한 왜곡이 그렇게 만든 것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 준 질문과 도전처럼 우리는 무엇 하나 제자리에 머물러 있듯이 있지 말고, 꾸준히 성찰하고 묵상하며 늘 새롭게 진리를 발견해나가야 한다. 그것은 결국 우리를 '살아있게' 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도전에 힘을 실어 넣어준다. 제목처럼 예수님의 진심을 발견하고자 하는 1가지 주제와 세부적으로 9가지 파트, 그리고 72개의 소주제로 구성되어있으며 큰 글씨와 논리성이 담긴 일러스트 삽화는 책에 대한 이해를 더해준다. 또한 소주제의 마지막마다 배치되어있는 성경 구절들은 저자의 주관적 해석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한 노력과 함께 독자가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짧은 단락들의 구성으로 인해 한 번에 읽어내기에는 다소 분산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가방에 넣어놓고 분주한 일상을 살다가 짬짬이 꺼내어 예수님의 진심을 기억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책인 듯하다. 목회자도 그렇고 평신도가 읽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는 책이다!

누구든 가까워지는 순간, 싫어진다. 하지만 언제나 개인들이 싫어질수록 인류 전체를 향한 사랑은 더 불타오른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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