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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의 일 - 작은도서관의 광활한 우주를 탐험하고 싶은 당신을 위한 안내서
양지윤 지음 / 책과이음 / 2021년 2월
평점 :
가을이라 하지만 더운 여름 날씨에 지쳐있던 나는 도서관에 가보았습니다. 몇년전 깔끔하게 리모델링한 도서관. 책을 읽지 않았던 30대의 암흑기를 지나 다시 책으로 생의 희망을 찾았던 도서관.
책을 대출받고 반납하면서 사서분과 잠간의 대화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대출할려는 책을 키오스크로 검색하고 혼자서 바코드 찍고 반납도 비대면으로 하는 기기의 발전을 좋다고 해야 할지, 편리하다고 해야 할지. 희망도서를 받을 때에야 잠간 나누는 대화는 플라스틱 투명창에 막혀 소리도 눈빛도 막혀버린 것 같습니다.
양지윤 작가의 사서의 일을 읽습니다.
사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책을 관리하는 것은 또다른 일이 되는 것이구나 싶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사서의 시간에서 삶의 열매를 수확하고, 씨를 뿌리고, 새싹을 키우고 또 계절을 보내고 맞으면서 사서의 시간을 충실하게 채우고 있음을 읽게 됩니다.
사서라는 것이 책을 가까이 하기에 좋겠다 싶었는데, 의외의 사무적인 일들에 놀라게 됩니다. 세상에 어떤 직업도 일도 쉬운 것이 없구나 싶다는...
작은 도서관을 맡고 있는 사서인 작가가 처음 도서관에 채용된 날로 부터 지금까지 경험하게된 일과 사람, 책과 인연이 따듯한 느낌으로 읽었습니다.
공감가는 문장이나 생각들에서는 어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셨구나 좋아하게 되기도 합니다.
작은 책도둑 에서 "만약 보고 싶은 영화가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것이라면 먼저 책부터 읽고 보는 쪽을 선호한다. 영화는 그다음에 볼 것. 이것이 내 나름의 규칙이다."p.51
저는 영화를 잘 안보지만 가끔 유튜브를 통해서 결말있는 영화 리뷰 영상을 보는데, 원작이 있은 영화라면 원작을 우선으로 책을 구입해 읽으려 합니다. 그래서 구입한 책이 책도둑이란 책이고 DVD입니다.(아직 책도 DVD도 못보고 책장에 쌓여 있습니다.)
어릴 적 전집을 애지중지 이사때마다 아끼고 이사했던 작책을 일본 유학 다녀온 기간에 냅다 정리해버린 것에서 한참 책들을 채우고, 선물받았던 책들이 대구 생활 중 부모님의 이사하신 소식에 내려갔더니 휑하게 사라진 책들. 고물상에 갖다 파셨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좌절....어떻게 이런 일이....싶어 여러날 울적했던 그 날의 감정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때 사라진 책들을 기억을 짜내어 최대한 처음 구입했던 판본으로 중고책들로 구입하려 했던 것까지. 아...이건 감동의 재회가 아닌 가 싶은 일화였습니다.
도서관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항상 도서관에 가까운 위치에서 이사를 다녔고 3층 도서관에 맨 위층은 일반인 열람실이라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는 들어가지도 못했고, 2층에 열람실 두군데가 마주보고 있는데 한곳은 남학생용, 반대편은 여학생용이었습니다. 1층에 서가가 있었던 기억과 복사기가 있었습니다. 주로 남학생용 열람실에서 공부하다 대학생이 되어 일반인용 3층에 들어갈 수 있었던 그때의 첫 떨림과 설렘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복사기와 관련된 재미있는 사건이 있는데, 도서관에서 발행하는 복사카드를 구입해서 복사를 할 수 있었는데, 어느 우중충하고 비가 쏟아질 것 같은 날 5,000원짜리 복사카드를 구입해서 복사기에 투입하고 복사를 하려는 순간 천둥과 번개가 파바바박, 순간 정전에 전기가 깜빡했는데 글쎄 5,000원이었던 복사카드 충전 금액이 8,000원이 찍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완전 신기했던 그날의 기억도 도서관에 추억되어 있습니다.(제가 주로 간 도서관은 포항시립영암도서관이고 사진 2입니다.)
사서의 일을 읽고 느낀 소감은 여름 같은 가을에 읽기 좋았다는 것입니다. 사서의 시간이 이어지는 글들에서 내가 좋아했던 것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힘들고 우울한 감정에 무기력한 날, 사람을 피하고 싶던 날들에 도서관 좁은 책장 사이에 놓여있던 작은 나무의자에 앉아 있었던 40대의 나의 시간이 기억납니다.
도서관들은 계속 리모델링 되면서 피난처가 되어줄 나만의 아늑한 공간은 찾기 힘들지만, 힘든 마음에 책을 한가득 가방에 넣고 짊어진 채 밤의 길을 나서는 오늘도 나는 책과 함께 합니다.
사서의 일을 읽으신다면 당신만의 책과 인연을 떠올리시리라 확신합니다.
"냄새는 기억을 발현한다는 말처럼, 오타루가 그리워질 때면 향초를 켜두고 순백의 거리를 거닐던 순간을 추억하기 위해."p.86
"영화 속 모험가들이 낡은 고지도에 의지하여 세상을 탐험한다면, 사서는 책의 지도인 '십진분류법'에 의지하여 도서관을 여행한다."p.186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나만의 이야기가, 언젠가 글로 표현해주기를 바라며 내 안에서 조용히 부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p.209
"꽤 좋아하면서도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드러내기 망설여지는 것들이. 그것은 특정 사물일 때도 있고 독특한 취행이거나 내 생각이 담긴 글일 때도 있다."p.227
사서의일은 책과이음 느린독서에 신청하여 지원받은 책을 읽고 책과 도서관에 엮인 나의 기억을 남기는 리뷰로 마무리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