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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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너머
벤자민마이어스
최리외_옮김
다산책방
이키다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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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찬도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읽고 쓰는 리뷰입니다.

덜시와 로버트. 그리고, 덜시의 연인 시인 로미.
해안가 홀로 버터스라는 개를 키우며 살아가는 덜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지만 수풀이 무성하게 가리워진 그곳.
연인이었던 시인 로미의 생이 마지막으로 가라앉은 곳에서 살아가던 그녀에게 어느날 찾아온 어린 십대 나그네 소년.
북부 탄광 지방에서 광부의 대를 매듭지어 꼬여가던 소년 로버트에게 바다는 경계 너머의 시간, 경계 너머의 생을 향해 나아가던 중 덜시와 만나게 됩니다.
  이곳에 덜시와 로버트는 그들이 더이상  보지 못하지만 보게 되는 로미의 시로 말미암아 서로가 가진 생의 조각들을 보게 됩니다.
  스스로 바다에 가라앉은 로미의 생으로부터 불어오는 부서지지 않은 바람에 부서지는 마음으로
깨지지 않은 파도에 깨져버리는 마음으로 살아온
덜시의 마음은 그토록 사랑했던 로미의 시를 통해 바람과 파도에는 부서지거나 깨지지 않음으로 바다 그 경계 너머로 흘러가게 됩니다.
  로버트에게도 로미의 시는 단순히 시의 낱말이 아니라 바다와 하늘의 경계 사이의 틈을 발견하는 시간이 됩니다.
  탄광 광부로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운명의 매듭끈에서 바다와 하늘 사이로 보았던 시의 틈새로 나아가는 시간을 읽게 됩니다.
  아주 오래전 영화 하나를 생각나게 합니다. 탄광 광부의 아들로 살아갈 지 모를 어린 소년이 발레를 통해서 비상하였던 발레리노의 모습은 이 소설의 로버트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경계의 틈을 발견하고, 그 틈 너머의 세상으로 날았던 빌리나 그 틈 너머 시의 세상으로 나아간 로버트, 그리고....연인이 가라앉은 바다와 땅의 경계에서 살았던 덜시에게 로미의 시는 생을 살아가는 틈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에서 어떤 경계 사이로 새어나온 빛의 틈이 있었나를 돌아보게 합니다.
   덜시, 로버트, 로미 이 세 인물이 가진 생의 틈을 기억해 보게 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이 소설을 읽는 누군가에게도 생의 경계 그 사이의 틈을 발견하거나 있었음 하는 마음입니다.
  수평선  너머 그 평평한 선 너머에는 당신이 알지 못하는 원의 세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까지도 바다에 대한 첫인상은 물 자체가 아니라 물에서 나고 물로 돌아가는 것들이었다."p.39

"들판과 하늘과 바다가 만드는 초록빛과 푸른빛 조각들 사이에 말이 걸려 있는 듯 했다."p.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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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새의 말이 들린다
스즈키 도시타카 지음, 김소연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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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으로 읽고 남기는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내 성격에 이런 성향이 있는데, 음악을 예를 들면, 이번 1년 동안은 클래식음악에 몰입해본다거나, 클래식음악을 1년동안 몰입하고 난 후에는 국악을 1년동안 몰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내 폰의 사진첩에는  나무의 등겉을 찍어 모아둔 폴더와  또 오래된 집들의 대문-철제 대문-들을 찍어보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새의 둥지들을  찍어보기도 했었다.
  새의 둥지를 줌으로 가까이 찍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는데, 여기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새의 언어라는 세계로 들어가 새의 언어를 연구한 생물학자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새의 언어가 가진 의미들이 이토록 체계적이라는 것에 놀라움을 가지게 됩니다.
  저자는 박새의 소리에 가진 뜻과 박새들이 서로에게 전달하는 의미들을 연구하면서, 언어가 단순히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 자연의 것이라는 점을 발견하고 증명하였습니다.
  소리로 언어를 구사하여 뱀이나 매 등의 천적을 확인하고 경계한다는 것과 소리를 조합해 문장을 만들어 낸다는 것. 천적의 위험에서 새끼들이 날개짓에서.....그리고 인간이 몸짓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처럼 박새도 날개 제스처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발견하고, 서로 다른 종이지만 다른 새의 언어도 서로 상호간에 이해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새들의 소리였습니다.
  생물학자로써 그 시작과 과정을 고스란히 박새의 언어와 생태를 통해서  검증해 내는 과정들이 새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순간 생각나는 인물이 있습니다.

어릴적에 TV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라는 동물관련 퀴즈프로그램에 출연하셨던 새박사 고 윤무부 교수님과 몇년전 우연히 알고 구독중인 유튜브의 새덕후 채널.....새를 사랑하는 이들이 가진 자연의 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떠올려 봅니다.

  박새를 연구하기 위해 몇달치의 식량을 가지고 숲으로 들어가지만, 연구를 마치기 한달을 남겨놓고 반찬은 다 떨어지고 쌀만 남은 상황에서 선택한 방법은 정말 찡하면서도 이렇게 까지 애정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새의 언어를 관찰하고 증명해 낼 수 있었지 않나 싶습니다. (아침은 맨밥, 점심은 뜨거운 물에 밥을 말아 먹고, 저녁은 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
  유튜브에서 저자가 박새의 언어를 연구하는 과정들에 대한 영상을 찾아 보았습니다. 낯선 언어로 소개되어지는 소리는 나에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 이때 자막 설정을 한국어로 전환하도록 설정을 바꾸니 낯선 언어의 소리가 우리말로 자막이 되어 나오는 과정을 보면서ㅡ이것이겠구나, 새의 소리가 생물학자의 연구를 통해 인간에게 전달되어 과정도 이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에, 저자의 노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동물언어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였음을.
    박새로부터 시작되어 자연의 모든 생물들에 대한 경의로움으로 나아가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탐조는 생물을 사육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 있었다. 벌레나 물고기를 상자에 넣어 관찰하는 것은 자연의 일부를 잘라내 자신의 손바닥 위에 두는 행위다. -중략- 들새 관찰은 그들이 자연에서 사는 본연의 모습을 본다. -중략- 들새를 관찰하고 있으면 마치 작은 새가 되어 그들의 세계로 들어간 듯한, 그런 묘한 기분이 든다. 동물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p.29

"박새는 '날개'로 제스처를 한다. 날개를 파닥파닥 작고 빠르게 떨면 '네가 먼저 해'뜻한다."p.283

"인간에게는 인간의 언어가 있듯 박새에게는 박새의 언어가 있다."p315

새 뿐만 동물들의 소리가 이제는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것은 이 책을 읽고 난 결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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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때리는 인문학 - 축구로 읽는 40가지 삶의 지혜
명왕성 지음 / 글의온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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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때리는인문학
#축구로읽는 40가지삶의 지혜
#명왕성
#글의온도
#이키다서평단
#도서협찬

길이 105m, 너비 68m
가로와 세로의 선이 이어진 직사각형.
우리는 축구장의 몇 개 크기라는 표현으로 특정 장소의 면적을 이야기합니다. 이처럼 축구장의 가로와 세로의 각이 맞물려진 하나의 면이 차지하는 의미는 단순히 면적의 크기가 아니라 축구라는 하나의 스포츠가 가지는 의미들이 인문학과 연결되어진다는 것이 새로운 이음의 책이었습니다.

  인문학이 가진 어제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 그리고 내일의 시간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이 축구장이라는 장소, 선수, 감독, 심판, 축구의 규칙, 그리고 군중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다룸으로 여타 스포츠와는 다른 깊이와 넓이로 독자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인문학이라는 정적인 학문의 시간이 축구라는 동적인 공간과 융합되어지는 작가의 설명은 축구와 인문학이  함께 하는 하나의 시즌을 경기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존재, 기억, 품격, 상징, 미래는 축구공의 오각형의 꼭지점과 같이 따로이지만 또한 연결된 선의 그것처럼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책의 놀라운 장점은 바로, 선수의 기술, 감독의 전술, 관객의 함성이 아우성이 밀려오는 거대한 축구장의 한가운데 한 사람의 인생이 달려가는 시간을 보면서, 인생을 깊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0가지의 삶의 지혜가 챕터마다 잘 정리되고, 축구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들과 맞물려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독자는 이러한 40가지의 패스를 머리로, 가슴으로, 발로 트래핑하는 것입니다.

  마르세유 턴이 중국 장자의 사유와 연결하여 무위자연으로 설명하고, 무위자연의 정점을 보여주는 선수로 리오넬 메시의 드리블 기술이 가진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어서, 읽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또 하나의 예로, 데리다의 해체 가 경기가 끝난 이후의 끝나지 않는 축구로 이어지는데,
“해체의 시선으로 보면 축구는 오히려 종료된 뒤에야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실천이다”
라고 적용하게 된다.
 
  요한 하위징아의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으로써의 축구에서 시작하여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사회인 축구에 도착하기까지 인간의 시간과 공간으로써 축구의 공은 연결되어지고 있습니다.

선수과 감독, 심판, 관중이 하나가 되는 축구의 이야기는 거대한 인류사의 또다른 세계이며, 역사가 되는 것이구나 그렇게 읽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스포츠가 가진 이러한 가치와 의미들의 적용은 오늘의 축구장에서 그리고 내일의 축구장에서 진화하고, 도태되어지는 것으로 그라운드 너머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인문(人門)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남아 있는 해외 스포츠 기사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오롯히 자신의 시간을 달린 후 은퇴하는 마지막 경기, 숨가쁘게 달렸던 경기를 마친 후 밀물처럼 밀려왔던 모든 사람의 시간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경기장. 자신의 시간이 쓰러지고, 넘어지며, 부딪혔던 그라운드의 잔디에 자신의 축구화를 벗어 놓고 맨발로 앉아 있는 장면이 인상깊게 남아 있습니다.

  선수로써의 시간이 마침표를 찍었다고 해서 한 사람의 인생이 끝이 아니지만, 그라운드에 앉아 자신이 뛰어왔던 시간을 고요히 마무리하는 그 정적의 사진은 우리에게 인생의 한 장면들마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나 감정의 줄임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축구와 인문이 서로 엮이는 이야기.
이제 당신에게 둘레 70cm의 공을 연결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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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 극우가 온다
정민철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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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호주의 한인교회. 예배 중 대표기도를 하는 한 젊은 신도의 기도에서 지금의 한국 상황이 마치 공산정권인 것처럼 한탄하면서 나라를 지켜달라고 기도합니다. 호주의 친구는 자신보다 어린 이 대표기도자의 기도에 한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생각했다고 전해줍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교회에 어르신들하고 얘기할때 이 분들이 한국 투표권이 없어서 다행이다고 생각할때가 많다."

  87년의 대구.  대구 동신교 앞을 지나던 중3 학생은 대학생이 호헌철폐 독재타도 외치며
대구 동신교 앞에서 데모할때 최루탄를 터트리며 최절정기에 다다랐고, 주변에 시민들도 동참했었지. 나도 하교길에 현장에 있었다.  그냥 하교길에 동참된 거지.....5.18 광주를  생각해 보면
하교길 집으로 가는 길에서   걸어가다가 희생된 사람이 얼마나 많았을까...생각해 보게 된다.

  요즘 20대 남자들 이 시대로 돌아가고픈가?
정신 차려야할텐데....
하물며 저번 총선때 임미애 만났는데
자기 부모가 진보인데 아들 둘은 보수라고 하더라
곧 피해자라는 거지.......

   정치색이 뭐야?  10대의 아이에게 묻는다. 아이는 답한다.
  "저는 민주당과 국민의 힘이 합쳐진 즉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어울러진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희망합니다ㅋ"
  " 정치관련해서 카톡을 정부에서 감시하고 있다고 유튭에 카톡검열 검색하면 나온다고......"

  무엇이 잘못되어가고 있다. 어디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을까? 세대간의 이 극렬한 프레임의 테두리 안에서.....
  1020의 극우화라는 이 보이지 않던 선이 겹줄의 굵은 선으로 보여지는 이 시간...
저자는 1020의 극우화가 만들어낸 조롱과 거짓의 프레임에 갇혀 버린 그들의 프레임을 깨트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어른의 언어가 아닌 어른의 글이 아닌 그들의 언어와 그들의 글과 그들의 쇼츠에 극우와 혐오, 알고리즘에 잠식된 1020의 교실을 이야기 하고 부모와 자식간에도 치열하게 부딪히고, 외면하고 숨어진 1020의 집을 이야기 합니다.
  
  "국회의 돔 아래에서는 엄숙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진짜 전쟁은 돔 밖, 내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액정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민주당은 그 전쟁에서 학살당하고 있었다."p.12



  그들의 표가 어디로 몰려갔으며, 왜 그러한 결과에 양극의 끝에서 서로 치열하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길에서 대립하고 있는지도 면밀히 분석하면서, 그들이 앞으로 사회의 리더가 되고, 사회의 구성원이 될 때 이념의 운동장이 크게 기울어질 것인지 경고하고 있습니다.
  1020의 스마트폰 속에서 그들이  사로잡혀가는 알고리즘 세상에서  괴물은 무엇이며, 쇼츠의 그 짧은 영상의 영향이 짧지 않음을 이야기 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1020의 시간과 그들의  손 안에서 놀아나는 밈과 쇼츠가 혐오와 상대적 피해자라는 코스프레, 극우화라는 것으로 피어나는 악의 꽃씨를 퍼트리는 것임을 보여주면서,  그들에게 기울어지는 것의 무게를 올리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올려놓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저자의 글들이 간절함과 절박함의 고함이라는 것을 읽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밈(이런 것이 있었는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으로 10대들에게는

  "그들에게 노무현은 실존했던 인간이 아니라 '뽀로로'나 '펭수' 처럼 소비되는 하나의 디지털 캐릭터다. 이것이 바로 혐오가 문화가 되는 과정의 가장 끔찍한 지점이다. 대상이 사람이라는 인식이 사라질 때, 잔인함은 유희가 된다."p24

  책에서 가장 위험한 3세대를 마주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틱톡
이 초단위 영상이 가져오는 극악의 알고리즘에 갇혀 버린 시대.   마의 삼각지대에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아래로 빠져들어가는 것에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020의 극우가 드러내어지는 하나의 문화처럼 소비되어지는 것에서 시작이 되어 그들의 성장하고 사회의 구성원이 되어서 그들의 극우가 혐오와 폭력, 차별과 편견, 불평등의 정당한 논리가 되어지지 않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저자는 무엇보다 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정답을 고르는 기술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지혜를 이야기해야 한다."p77

  1020의 리듬으로 진실을 알리는 것.  
  목소리도 얼굴도 조작되어져 거짓을 믿게 만드는 것에서 정의를 볼 수 있는 필터를 가지는 것.
  그들의 언어로 싸워야 한다는 것 등 사회적 규제와 가족간의 대화, 눈높이에 맞는 교육.....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고, 해야하는 것에 행동을 부르짖는 외침이 나에게 큰 울림이 되어집니다.

  어느 예능 속 한 장면이 쇼츠에 등장합니다.

당으로 끝나는 말 세개? 를 말해야하는 출연자는

민주당,  새누리당.......몇 초가 흐르는 사이 머리를 잡기도 하고...몸을 들썩들썩...생각을 쥐어짜면서 외치는 마지막 당은 공산당.

예능의 한 장면에  나 역시도  크게 웃으면서...지금 이 책을 읽고나서 이 장면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면서 민주주의 가치
. 그리고 윤석열의 계엄령과 이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없고 사과도 없으며 부끄러워 하지 않는 그 언행에 더 부끄러운 대구 시민으로써 읽고 씁니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직장이 있는 곳으로 주소를 옮기려다가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 나의 한표가 나의 의지라는 것을 똑바로 보여주는 증거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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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지막으로 남긴 노래
이치조 미사키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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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으로 읽고 남기는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시는 노래의 시작이며, 시의 끝은 노래이다.

한 소녀의 시간이 하나의 선으로 그어지고,
소년의 시간도 하나의 선으로 그어진다. 소녀의 기타 스승이었던 남자의 시간도 하나의 선으로 그어져 있다.  소녀의 어머니가 소녀를 버리고 떠나버린 그 자리에서 소녀와 함께한 외삼촌의 시간도 하나의 선이 되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서로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지만...서로를 잇는 하나의 음이  있습니다.
  오선지 위에 그려지는 음표들이 서로의 선에 울림이 되어지기도 하고..떨림이 되어지기도 합니다.
  어그러진 감정의 날에 그려지는 음표들의 불협화음도 소리를 내지르는 소녀의 시간일 것 같습니다. 소녀와 소년이 보낸 유년시절의 상실과 부모의 부재가 가져온 공란의 공간이 그들에게 인생의 소리없는 악보의 여백이 아닌가  보게 됩니다.
    자신의 삶에 선들에 음표들이 앞의 음은 뒤의 음을 당겨주시기도 하고, 또 밀어내기도 하며, 주저 앉게 하기도 하지만, 또한 일으켜 세우기도 합니다.   소녀의 음표에 글 없는 소리의 울림...그렇기에 소년의 시는 소녀의 소리에 글이 되어 주었습니다.
소녀가  살아온 날의 노래와 소년이 살아갈 날의 시(글). 소녀와 소년의 악보에 시작이 되는 존재의 이름이 그들에게 불리어지는 소중한 날을 읽으며...삶은 악보 속 음표들과 음의 세기(강약), 음의 속도로 나에게 남겨집니다.
  소녀의 삶은 Ritardandoㅡ점점 느려져ㅡ결국 그 마침표를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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