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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들
아이셰귤 사바쉬 지음, 노진선 옮김 / 더퀘스트 / 2025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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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진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분명 내가 살아온 도시의 길이 남겨진 기억이 있지만, 사진 속 그 도시의 길은 전혀 낯익지 않은 낯선 느낌으로 다가온 기억입니다.
사진 속에서 내가 본 것은 도시의 건물이나 거리, 가로수가 아닌 밤의 도로를 달려갔던 수많은 차들이 가진 빛의 궤적을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long exposure light trail)
빛의 흐름들이 지나간 선들이 흐리지 않음으로 흩어지지 않음으로 끊어지지 않음으로 이어져 있음을 보았던 그 느낌을 인류학자의 책에서 다시 찾아 보게 됩니다.
소설 속 아시아, 마누, 레나, 테레자, 라비, 사라, 샤론과 폴, 아시아가 공원에서 인터뷰한 사람들, 아시아와 마누가 새로 거주할 집을 찾아 만난 사람들......공원, 집, 가게 그리고 거리와 사람들의 흐름,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빛의 색깔을 가지고 있고ㅡ 또 사람들의 궤적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가 있다면 이 소설 속 그들의 흐름은 어떤 사진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인지 상상해보게 됩니다.
끊어지지 않는 빛의 고리를 무수히 많은 선들이 골목과 모퉁이를 돌아가고 또 지나가기에 그 흐름에서 빠름도 느림도 알 수 없는 색깔의 선을 볼 뿐이지 않을까?
그들의 삶이 낯선 이방인의 언어와 문화, 생활일지라도 사람이 가진 저마다의 고유한 빛의 흐름처럼 그들은 정주하고 또 유랑하며 빛과 빛의 부딪히 산란되고 어느 생의 시기에는 안개 속 빛무리가 될 지라도 소설 속 그들에게서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의 흐름을 가지고 있음을 읽게 될 것입니다.
생성과 소멸의 빛은 무슨 색깔일까?
아시아의 할머니와 점점 기억을 잊고 잃어가는 이웃 할머니 테레자의 빛은 소멸의 빛으로 깜빡이고 있음을....샤론과 폴의 아이, 아시아와 마누에게는 아직 찾아 오지 않은 탄생의 빛.
밝으며 차갑고, 어두우며 따듯한 빛이 있다면, 소설 속 그들은 시대가 만들어낸 시선의 궤도가 아닌 다른 환의 곡선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낯선 선 위에 낯익은 색으로 그어진 인물들의 이야기....사랑, 죽음, 정주와 유랑, 세련된 도시의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서 보게된 퇴색된 골목의 녹슨 철문 위 사자의 모양처럼. 우리의 삶이 진행되어지는 동안 어느 시간의 한 모퉁이에 남겨진 문장이 녹슬어 갔으면 합니다.
"난 단지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정말로 어떻게 사는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p.47
"시는 우리의 마음을 비워냈고 그 빈자리를 시의 형상으로 가득 채웠다. P.118
"삶은 상실과 파괴의 연속이었지만 그럼에도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흘러갔다."p.135
"겉보기엔 다양해 보여도 결국 살아가는 방식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덧없이 흐르는 하루의 시간을 뚫고 나아가는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사실을."p.190
본 도서는 출판사에서 소정의 제작비와 책을 지원받아 읽고 남기는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