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치핀 - 세상은 이들을 따른다
세스 고딘 지음, 윤영삼 옮김 / 필름(Feelm)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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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치핀이 무엇인가?
나는 린치핀을 읽고 '린치핀은 탱탱볼이다.'라고 불러봅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멈추는 문장에서 린치핀의 의미를 옮겨보면,

🏷  "일을 하는 새로운 해법을 가진 사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 줄 아는 사람,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천재성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 예술가는 바로 당신일 수 있다." p.29

뜨악! 들켰구나.  내가 바로 린치핀이라 할 수 있는 예술가인데, 어떻게 알았지. 새로운 시각과 각도로써 사물과 사물을 보고 문제들을 해체하고 새롭게 조립하여 만들어 내면서 해결을 했는데, 들켰다. 싶은 마음.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은 그 예술가가 당신이지 않는가! 라고 어디에 숨어 있든 -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나를 찾아내는 것 같습니다.

  알면서 안한다는 예기를 많이 들었다가 알면서 하니까? 더 할 수 있는 데 더 안한다 고 하고.... 스스로 재미와 흥미를 가지고 일이란 것을 관찰하고 현장의 표식들을 기발하게 만들어 냈던 나이기에 세스 고딘의 린치핀은 내가 그동안 이전 직장에서의 수고로운 노력과 창의성으로 해결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듣지 못했던 칭찬과 인정을 해주는 고마운 책이 되었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보는 것이 다르다는 시선으로 인해 나의 고집과 직위, 직책으로 나의 결정, 말이 최선의 가치를 가진다고 오만했던 날들에 대해서도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래도 새로운 직장에서 보게 되는 것은 이 새로움에 나의 새로움을 더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올려 졌다는 사실이며, 차근 차근 준비를 해 봐야 겠다는 계획을 세워보게 됩니다. 이 아이디어는 나의 지난 직장에서의 발견한 재능을 좀더 확장시켜보게될 일련의 예술적 작업(사진2)이라는 점은 린치핀에서 이야기 하는 

🏷  "우리는 그저 그런 톱니바퀴가 아니다.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예술가다."p.5

  이전 직장에서는 오로지 자동화를 추구하고, 자동화된 설비에 자동화된 인간이 있는 조직이었구나 저자가 적어놓은 다음  한줄의 문장은 20년이라는 시간과 공간에 짜뿌러진 내 상자 속의 열심을 보게 합니다.

🏷" 자동화된 인간들로 가득찬 조직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목표가 아니다."p.59

  조직의 목표란 것이 이미 정해진 길, 누군가가 밟아놓은 길을 더 짓이기고 가는 그런 느낌이었다면, 린치핀은 나의 이런 짓이겨진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 준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p.337

나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조직의 톱니바퀴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통찰력있는 예술가이며, 선물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린치핀은 조직이라는 틀 안에 있는 사람으로 웅크려 있는 것이  아닌 조직이라는 틀 밖으로 튀어나가는 사람으로 정리해봅니다. 어릴때 가지고 놀던 탱탱볼 처럼 바닥, 천정, 벽, 모서리 어디에 부딪혀도 어느 방향으로 튈 지 알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진 린치핀, 일의 지옥이 아닌 재미를 스스로 부여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서 나는 더 아름다운 탱탱볼이 되어 볼 까 합니다.

  탱탱볼 같이 통~ 탱 ~ 부딪히는 린치핀의 문장들과 생각들은 좀더 강한 탄력을 나에게 부여하고 또 이 책을 읽으실 독자에게도 전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린치핀은 조직을 위해서 두 가지 일을 한다. 감정노동을 아끼지 않고 발휘하는 것과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p.419

🏷"하루라도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내야 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높은 값을 지불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기회이기때문이다."p.177

당신은 린치핀인가?
당신은 탱탱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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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를 찾아라 - 법정 스님 미공개 강연록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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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강연 말은 빠름이 아닌 바름의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름의 시대를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어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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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나를 찾아라 - 법정 스님 미공개 강연록
법정 지음 / 샘터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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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가을이라 샘터사에서 책을 한권 골라서 읽고 리뷰를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좋았습니다. 고심 끝에 선택한 책이 법정 스님의 진짜 나를 찾아라.
20년이 훌쩍 넘어 오랜 시간에 색이 바래지지 않은 말씀이 문장이 되어 한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음이 얼마나 좋은지요.
  '맑다' 와 '밝다' 의 의미에서 맑다, 맑음, 맑은 은 어디에 이어지고 끝나도 참 좋은 말인 것 같습니다.
맑은 하늘, 맑은 별빛, 맑은 달빛, 맑은 공기, 맑은 물, 맑은 눈동자, 맑은 공간, 맑은 만남 등으로 맑다는 것은 느낌이 좋은 것으로 이어지고 또 전해집니다.
    법정스님의 맑은 말씀을 듣고 보는 가을은 맑은 가을날이었습니다.
  16편의 말씀에서 일, 고독, 공덕, 자연, 인연, 시간, 공간, 마음, 참된 구도자, 인간, 흐르는 강물, 계절, 차(차) 등의 주제로 엮어져 있는데,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이어 흐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 모든 것에 참다운 법정스님의 맑은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2024년의 우리나에서 세대간, 인간과 자연, 도시와 환경 들의 차이와 차별, 편견 그리고 오염된 땅, 하늘, 물, 인간, 마음까지도 시대를 지났지만 여전히 진심으로 그릇되지 않은 말씀을 하십니다. 꽃을 보시면서

"꽃은 피어날 때도 아름답지만 질 때도 아름답습니다....중략....그때그때의 자기 생에 최선을 다하지 않던가요?....중략...지금 현재에 충실하십시오. 자신의 일을 사랑하십시오."P.23

  지금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홀로 있는 것만이 고독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가 진정 바라고 바라는 고독에 대해서 법정스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침묵의 바다에 들어가 봐야 벌거벗은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시간을 경험할 때 진정한 고독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P.27

  침묵의 바다....그 바다에 들어가는 것...내가 고독해지고 싶은 것이 바로 침묵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인가 싶습니다.
  하루에도 200개의 카톡들과 사람들의 말의 홍수에 떠내려 가고 이리 치이고 저리 차였던 시간들에서 홀로 있는 시간을 갈망했던 것이었나 싶습니다.

나이들어 간다는 것이 사진에 찍히거나, 거울을 본다는 것,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두려울 떄가 많았습니다. 이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이 참 좋아서 기억해 보려 합니다.

"세월의 굴곡은 얼굴의 주름으로 나타납니다.....중략....주름은 우리가 쌓은 경험을 나타내는 은유입니다."P.29

  굴곡진 경험의 시간을 내 몸에 새기고 나는 살아 왔음을 깨우치는 시간이었습니다. 주름이 늚음이 아닌 경험의 깊이와 가짓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입니다.

  새롭게 직장을 옮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창립기념일 행사로 서울에 전 직원들이  참여했는데,  낯선 이들과의 식사와 대화는 무척이나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들이 저에겐 소음이었습니다. 멀리보이는 성당의 첨탑만을 보면서 이 시간과 공간에서 무탈하기를 바랐는지 모를 것입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침묵이었습니다.

  "침묵은 깊은 무게를 지니며, 그 무게 속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답이 담겨 있습니다."P.82

침묵은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침묵의 질문에 침묵의 답을 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대화일 것이라고.

법정스님은 맑은 가난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가난이 맑은 것이 있나요?  맑은 가난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가난이에요."P.129  가난이 무척 싫어지는 말일 수 있지만 그것이 법정스님의 맑은 가난에 이르러서 맑은 가난을 나 역시도 선택하고 싶어 집니다.
  지금 세상은 늘, 항상, 언제나  빠름,  빠름을 이야기 하면서 진정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바름, 올바름이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 가는 세상이 법정스님이 내어주시던 차, 찻물 처럼 그렇게 우려내어지는 시간의 속도로 살아갔으면 싶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빠름의 인간들에게 바름의 인간이어야 함을 가르쳐 주신 말씀들을 깊이 우려내어 봅니다.

본 도서는 샘터 출판사의 서포터즈 물방울 서평단에 참여하면서 지원 받은 도서를 읽고 남기는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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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의 기록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19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덕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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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이다.

"때때로 황혼 무렵, 일터에서 돌아와 감옥에서 취사장으로 다시 취사장에서 감옥으로 천천히 감옥 마당의 광장을 따라 어슬렁거리고 있는 죄수들을 감옥의 계단 위에서 바라보면서, <죽음의 집이다!>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곤 했다."P.139

죽음의 집이다.
욕심의 인간들이다.
죽음의 집이다.
벌거벗은 죄의 인간들이다.
죽음의 집이다.
사망의 그늘에 드러누운 인간들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죽어 있는 집과 같은 감옥에서의 바라본 죽음의 집과 죽어있는 자들의 모습을 통해 벌거벗은 채 마주하게 되는 욕심과 죄, 그리고 사망을 봅니다.
  감옥에서의 시간은 도스토옙스키에게 무엇을 빼앗았고, 또 무엇을 주었을까? 도스토옙스키에게 감옥에서의 시간을 인간이 인간으로써의 존재, 가치를 있게 하는 것을 빼앗았고, 주었을 것인가?

  또, 감옥이라는 공간은 어떠한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과의 거주 공간은 도스토옙스키에게 공간의 감옥에서 더 치열한 고독의 공간을 갖게 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도스토옙스키에게 죽음의 집은 속박의 공간이요 구속의 시간이었지만 그의 정신과 사상이 뜨겁게 녹아내리는 공간이며, 정제되어지는 시간이었음을 읽게 됩니다.

  지옥같은 목욕탕에서 수많은 죄수들의 벌거벗은 몸과 들이 붓는 물, 사람의 체온으로 뿌여진 공간의 산란에서 마주하는 도움 속에서 그는 씻기어 졌을 것입니다.
성탄절과 그 연극 무대에서의 죄수들의 연극은 인생은 하나의 축제이며, 비극과 희극이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시간이며, 스스로에게 죽음의 집은 더이상 죽어 있는 집이 아니었음을 자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을 또한 알게 합니다.

  나에게 이러한 공간과 시간이 있었나 자문하게 됩니다.
자신을 극한 공간으로 몰아쳐 내몰았던 시간이 있었나? 나는 녹아내렸으며, 정제되어졌는가 나의 인생의 죽음의 집은 무엇이었을까를 책의 맨 뒷장에 적어놓아 봅니다.

  병원에서 그가 듣게 되는 살인자의 이야기나 인간이 인간으로써 생명을 빼앗는 죽임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야기 하고 또 죽음의 집에 찾아온 동물들조차도 그의 기록에서 죽어버린 개, 거위, 염소와  다친 독수리는 자유하게 되는 대목에서는 여운이 남는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되어 집니다.

"이상한 일이었다. 마치 자신들에게 잠시나마 자유가 주어진 것처험 죄수들은 무척 만족스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잠시라도 가두지 말자. 어서 빨리 자유롭게 해주자고. 진짜 자유 말이야. 자유!"P.384

도스토옙스키는 이 죽음의 집에서 출옥은 그에게 새로운 생활에 대한 믿음과 고백을 하게 되는데, 이 한권의 책에서 시작하고 끝나는 그의 시간을 시베리아에서 한 남자의 죽음이 아닌 죽음조차 꺽이지 않는 숭고하고 정제된 믿음으로 부활한 고백일 것입니다.

   "대장장이들은 나를 돌려 세우더니, 뒤에서 나의 발을 들어 올리고는 족쇄를 부수었다.......족쇄가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들어 올렸다........중략.....
   그렇다. 하느님의 은총과 함께! 자유, 새로운 생활,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순간인가!"P.457

생명의 집이다.
고난의 시간이었다
부활의 집이다.
고독 속에 하느님과 걸었던 철책의 장소였다.
하느님의 집이다.
심판의 자리에서 살아났던 그 순간이 영원이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죽음의 집의 광경들이다.

@woojoos_story 모집 @열린책들 도서 지원으로
우주클럽에서 미션 7회를 완료했습니다

#죽음의집의기록, #도스토옙스키, #열린책들,
#우주클럽_세계문학방, #온라인글쓰기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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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집에서 보다 - 도스토옙스키와 갱생의 서사
석영중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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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그 안에 숨겨진 의미들을 찾는 시간.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읽었다면, 죽음의 집에서 보다 는 넓게 읽음과 깊게 읽음으로의 정점을 파내려가는 책이었습니다.
4명의 저자가 죽음의 집의 기록에 담겨있는 의미들을 찾아 가는 과정에서 "모든 책은 자기만의 탄생 과정을 거친다."p.5 는 머리말의 첫 문장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죽음의 집의 기록 속에서 육체와 굴레의 옷 에 대한 상징성-영성-과 목욕탕이라는 공간에서 읽어내는 악의 시간과 공간을 성탄절을 앞두고 목욕탕에서의 서술된 장면, 그리고 병원에서 듣게되는 아내를 잔혹하게 목을 잘라 살해한 시시코프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목욕탕이라는 공간과 그 시간은 나에게 목욕탕이라는 공간에서의 고독과 시간에서의 침묵이라는 도스토옙스키를 바라보게 됩니다.

  죽음의 집, 지루한 집은 죽음의 집의 기록에 첫 장에서 소개되어지는 옴스크 안에 있던 수용소와 옴스크 밖의 시베리아 에 살았던 한 수형수의 공간-집-에 대한 깊이입니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도 "수용소 밖의 사람들"이라는 문장이 있지만, 도스토옙스키에게는 수용소 안의 사람들보다 더 악한 수용소 밖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 있었기에 집에 대한 그의 생각은 죽어있는 집이라는 원제로 다시 기억하게 되엇습니다.(석영중 교수님의 EBS 강연 중 죽음의 집의 기록 원제는 죽어있는 집이라고 이야기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노예와 초인, 영원을 보다 에서 석영중 교수님의 글이 또다른 신의 계획 아래 있음을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죽음의 집의 기록에서는 그리스도와 죄인의 구원, 구속에 대해 직접적인 문장을 읽을 수는 없지만, 도스토옙스키가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책 -성경-을 통해서 그의 삶이 수용소 안에서 고독 공간 속에서 침묵의 시간을 통해서 세미한 소리를 들었을 것이라 생각해보았습니다.

  석영중 교수님의 노예와 초인, 영원을 보다에서 악이 농축되어지고 추출되어진 수용소의 죄수들로부터 도스토옙스키로 대변되어지는 시선은 보다 종교적이라는 것. 죽음의 집의 기록은 신과 인간에 대한 그리고 인간과 인간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신앙고백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글이었습니다.

"옷에 대한 태도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기에 이는 동시에 그가 인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하다."P.24

  "고란치코프는 자신이 정신적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를 감옥에서 홀로 스스로 돌아보았기 때문으로.....그는 반성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다름 아닌 <고독>을 꼽는다."P.113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서 시간의 유한함에 갇히지 않으면서 전체로서 현전하는 존재는 신뿐이었다."P.157

  "<생각없음>은 무섭다. 생각없는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P.175

  "도스토옙스키에게 영원성이란 <시간 없음>이었다.P.180

  "당시 도스토옙스키에게 자유의 부재 못지 않게 고통스러웠던 것은 강제된 공동생활이었다."P.186

  "도스토옙스키에게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이다."P.208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통해서 나는 보게 됩니다.
  죽어있는 집과 죽어있는 사람들, 죽어있는 땅의 이미지로써 흑백의 이미지로 상상을 하게 됩니다.
  흑백의 집과 흑백의 사람들, 흑백의 땅과 흑백의 하늘에서 흑백의 도스토옙스키가 서 있는 초상은 흑백의 침묵과 고독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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