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알라딘연재소설님의 "어.나.벨 작가의 말"
행여나 선생님의 흔적을 찾아 서성였던 발걸음이 오늘에서야 선생님의 긴 글 앞에 멈추어 섰습니다. 축구...많이 아쉬웠습니다. 골이 상대측 쪽으로 향할 때는 마음이 조마조마해 차마 볼 수가 없어서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던 긴장감은 결국 그렇게 아쉬움으로 남고 말았어요. 그러나 선생님 말씀대로 참 잘 싸워줬습니다, 우리의 태국전사들. 2시 25분. 선생님이 깨어 계시는 그 시간 까지도 저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늦은 밤에 마셨던 커피 탓인지, 아쉬움이 남은 축구 때문인지...아니, 아닐 겁니다. "혼자 있을 때면 창을 든 사냥꾼처럼 내 마음을 들쑤셔대던 아픔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어느 것 하나 가닥이 잡히지 않는 혼란한 생각들. 어느 날, 새벽 네 시가 다 되어가는 거리를 쏘다니다 어떤 곳에서 터져 나오는 탄식과 함성 소리에 쓸쓸해하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날이 시퍼런 칼날 같은 청춘에도 이제 곧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의 시간에도 절망과 상처가 동반되는 것은 마찬가지 일거라고... 그게 삶일 거라고...물풀도 휘청 이면서도 그 거센 물줄기 안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데 나는 왜 그 어느 곳이든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이렇게 하염없이 아프게 둥둥 흘러가고만 있는지...그래요, 선생님. 삶이든 ,사람과의 관계 맺기든 세월의 연륜과는 상관없이 저는 참 서툴고 힘이 듭니다. 선생님,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선생님이 사신 그곳의 백합은 아직 피질 않았다 봅니다. 이곳의 베란다 화분 속 백합은 벌써 누렇게 져버렸습니다. 처음엔 각각 두 송이의 꽃봉오리가 푸르른 잎속에서 도드라져 보였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한송 이는 시름시름 앓다 누렇게 변색이 돼서 결국엔 피지도 못하고 말라버리고 말았어요. 남은 한 송이만이 실하게 피어 나름대로 향기를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 한 송이의 백합이 필 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선생님이 사시는 그 곳의 백합도 피었을까, 라는. 내일은 서울에서 마지막 싸인회가 있는 날이다구요. 그곳에 사시는 애독자 분들이 많이 부럽습니다. 어. 나. 벨...가방 속에 항상 넣고 다니다 음식점에서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꺼냈는데 책이 딸려 나왔어요. 문장을 곱씹으며 천천히 읽느라고 다 보지 못했는데 친구가 그 책 며칠만 읽어보면 안 되겠냐는 부탁에 거절도 못하고...(책을 잘 가까이 하지 않는 친구라 빌려주고 싶진 않았지만 이 참에 한번 선생님의 글을 접해 보라는 의미에서) 아직 까지 저는 책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다시 한 권 사서 읽고 소장하면 되는 일이지만 그건 선생님의 귀한 싸인 본이 있는 책이라...그렇게 서툰 관계 맺기가 단절이 되고 말았어요. 언젠간 작은 오해들로 단절된 소통이 이루어지는 날이 있을 테고 선생님의 귀한 필체가 있는 책도 돌려받을 날이 있을 테죠. 절망과 상처투성이의 청춘을 견뎌온 것처럼 지금 이 시간의 절망과 상처도 견디게 하는 어떤 의미가 삶에는 분명 있을 테죠. 그러나 살아가야만 하는...저를 어디론가 둥둥 흘러가게 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반드시 꼭 살아내야만 하는...잠들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들었던 빗소리는 그나마 제겐 평안이고 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밤에 내리는 비를 참 좋아해요. 그러나 지금은 비는 멈추었고 하늘은 잔뜩 흐리기만 합니다. 선생님, 바쁜 일상으로 건강이 손상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구요. 이렇게라도 제가 아끼는 선생님을 뵐 수가 있어서 행복했고 글을 읽을 수가 있어서 좋았습니다.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