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과의 만남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6년 6월
평점 :
이 책은 보통으로 사는 게 불가능한 시기를 살아온 저자의 소녀시절의 회고록이다.
1945년11월부터 1952년3월까지의 회고와 서울에서 만난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 저자가 느낀 서울스러움에 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38선이 그어지고, 6.25전쟁까지 경험한 소녀의 지난날을 들여다보는데, 전쟁을 겪어본 적 없는 내가 지금껏 살아오고 현재를 사는 지금 보통의 삶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난세에는 보편적 삶의 질서가 깨져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드라마틱해진다. 너와 나의 체험이 달라지고, 극적인 상황이 양산되는 것이다. (6p)
함경도에 살던 소녀가 가족들과 한밤중 피란 기차 지붕 위에 앉아서 아슬아슬하게 서울로 내려오던 일, 가족의 모든 것을 북에 두고 와서 어떠한 기록도 남지않은 일, 어둠 속 한탄강 철교를 기어서 건너던 그 무서움과 건너자마자 미군들이 꼬질꼬질했던 피란민들에게 전염병 대비 디디티를 마구마구 뿌릴때의 액션에서 오는 수치심과 무례함의 느낌...
약을 뿌리는 통이 너무 커서 위협적이었고, 몸을 돌려 가면서 약 뿌리는 시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장난으로 뺑뺑이를 돌린 기분이었다. (49p)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장면들을 수없이 겪으며 맞이한 서울!
그 서울생활에서 고향 함경도 문화와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을 알게되고, 점점 새로 만난 서울의 전통문화가 좋았고 거기 탐닉해 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서울에 내려와서 적산가옥에 거주하면서 일본인들이 두고간 살림살이를 그대로 쓰는 고마움과 찝찝함, 남동생의 죽음과 그로인한 엄마의 충격의 나날들과 당시 이웃들 이야기.
죽은 남동생 관 위에 개나리 가지를 장식해준 이웃 진이 엄마의 애도와 각박한 삶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심미적 여유에 저자는 많이 놀라고, 그녀에게 서울말을 배우고, 요리를 배우며 서울사람의 세련된 어법과 매너 같은 예절을 하나하나 습득한다.
서울 아이들이 모인, 가장 서울다운 학교에 들어간 나는, 이 책이 끝나는 1952년까지 그 학교 학생이었다. 경기여고는 서울 중에서 가장 서울 다운 아이들이 오는 학교였기 때문에 경기다움은 서울다움과 오버랩되었다. 나는 그 학교에서 서울이라는 도시의 문화와 한국의 전통 문화를 만난다. (9p)
먼거리를 등하교 하는 고단함과 책이 흔치않던 시절을 살면서 이모부의 서재책, 오빠 책들 빌려 읽으며 책의 세계에 빠진 이야기가 제법 길게 나온다. (많은 책들이 언급된다)
궁핍의 시대를 살면서도 책들 덕분에 얼마나 풍성한 젊음을 보냈는가를 생각하면 그 모든 책에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그건 결핍이 낳은 보너스였다. 지금처럼 놀잇감이 풍성하면 누가 그렇게 미친듯이 아무 책이나 읽고 있겠는가? (246p)
내가 학창시절 국사나 문학시간에 접했던 책들과 인물들 언급에 그 시대를 사셨던 저자의 회고가 마냥 신기했다.
그 시절 독서, 교육을 접할 수 있고 저자의 명문학교에 다닌 자부심이 글에서 많이 묻어난다.
경기여고 동문들의 서울다움에 대한 예찬으로까지 확대된다.😅
이 책이 내가 기대했던거랑은 살짝 다르게 전개된 면은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지못한 전쟁세대의 일상적인 삶을 기록하고, 문화가 다른 지역에 살던 이가 서울에 와서 살면서 경험하고 느낀 서울스러움과 그 예찬, '서울스럽게 늙고 싶다' 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결핍의 시대에 저자가 책을 사랑했던 점, 책에 언급된 (내가 좋아하는)정동길, 남대문, 종로쪽이 훤히 떠올라 몰입하기 좋았다.
저자가 연세가 있으시니 할머니의 그때 그 시절을 듣는 편안한 느낌이었다고나할까....
ㆍ
ㆍ
ㆍ
●참고로,
이 책을 읽으며 알게된 사실은 작가님과 고 이어령교수님은 부부라는거다.
책에서 두 분의 죽은 딸 이야기가 몇 번 살짝 언급된다. 이어령교수님 책에서 많이 등장하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