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라는 말 참 좋지요
연애란 무엇입니까? 제가 보기에, 그것은 지독한 질환입니다. 편집증과 분열증이 뒤범벅되어 있는 치명적인 병.
전 존재를 내던지지 않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 그러나 꿈을 이루었다고 확인하는 순간, 사라져버리고 마는 그런 꿈. 그리하여 연애는 늘 과거이거나 미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애라는, 죽음에 이르는 병을 앓지않는다면, 그 삶은 성인식을 치르지 못한 어린이의 삶입니다. 유아치(幼兒齒)를뽑지 못한 채 살아가는 그 어린이는 아직 ‘나‘와 만나지 않은 것입니다.
아직도‘그대‘를 알아 볼 수 있는 시력과 시야가 없는 것입니다.
시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상에 대한 병적인 집중이지요. 그리하여 시쓰기는이중적입니다. 시(편지)를 쓸 때는 전적으로 나‘의 입장이지만, 시(편지)를 쓰고나면 어느새 ‘독자(연인) 의 처지로 돌아갑니다. 시(편지)를 쓴 사람은 이때부터죽음에 가까운 고통에 휩싸입니다.
이렇게 쓰면 저렇게 읽지 않을까, 혹시 웃지는 않을까, 내 의도를 몰라주는 것은 아닐까, 누구 글을 흉내낸 것을 눈치채는 것은 아닐까, 읽어주기나 할 것인가, 이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시(편지)는 자주 파지가 되곤 합니다.
연애편지를 쓰는 순간, 편지를 쓰는 ‘나‘는 일상적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 나‘와 혹독하게 대면합니다. 지금 앞에 없는 ‘그대‘ 와 한바탕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르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저는 연애편지 없는 연애보다는 연애 없는 연애편지를 편애하는 편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는 연애 없는, 없는연인에게 쓰는 편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이문재 (시인), 발문 ‘섬진강에 내리는 산그늘에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