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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ㅣ 리라이팅 클래식 15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새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재미있다고 해서 몇 번 보게 됐다.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드디어 한글을 반포할 모양인데, 세종대왕 한석규(역시 연기는 고참 배우들이 짱!)와 반대파의 두목 정기준이 한글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분이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면 동의보감 같은 한문책도 다 원문으로 그냥 읽고 있지 않을까?, 알파벳 쓰는 나라들은 꽤 오래된 책들도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데 왜 우리는 백 년 전에 써진 글조차도 읽지 못할까?’ (물론 조크다. 한문을 가르치지 않은 우리 근대사 탓이지 세종대왕께 따질 일은 아닐 테니까...)
우리가 한문을 아직 쓰고 있었더라면 조상들의 많은 저술을 별도의 해설 없이도 웬만큼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라이팅’ 자체가 불필요할 테니까...^^) 하지만 동의보감은 좀 얘기가 다르다. 한문을 안다 해도 또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우리에게는 동양철학과 의학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펄럭이는 태극기에는 태극문양과 네 개의 막대기들이 그려져 있고, 매일같이 신문을 뒤져 ‘오늘의 운세’를 읽고, 좋아 죽고 못 산다던 커플도 ‘어허, 궁합이 안 좋아. 원진살이 있어...’ 점쟁이의 이 한마디에 그길로 갈라서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 음양오행이라는 것이 우리와 동떨어진 세상의 관념이자 허황한 미신이라고만 믿고 있다.
X-ray 처럼 모니터에 띄워주는 서양 의학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 정, 기, 신, 경락 운운은 당연히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스폰지’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은 ‘동의보감에는 투명인간이 되는 방법이 적혀 있다’라는 제목으로 신비적, 엽기적 처방만을 모아서 희화화한 적도 있지 않은가. 서구적 관점에만 빠져있는 우리는 ‘천지의 기를 받아 생명이 만들어지는데 하늘의 양기는 기가 되고 땅의 음기는 혈이 되므로...운운’ 하면 벌써 귀를 닫고 잠 들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동의보감 번역서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무슨 재주로 그걸 읽어낼 수 있으랴. 초보적인 입문해설서라면 모를까...
내가 한의학도도 아닌데 동의보감 번역서인들 해설서인들 읽어서 어디다 쓸 것인가.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의학서적의 해설서가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동양학 인문교양서로 풀어 놓았다. 친절하게도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쓰는 이모티콘이나 흠, 쩝, 쳇, 헐~ 등의 명랑 발랄한 감탄사까지 동원해 어려운 의학 용어 빼고 일상적인 생활언어로 가볍게 풀어 놓았고, 변강쇠와 옹녀전 같은 옛날이야기를 비롯해 가깝게는 ‘아바타’, ‘나는 가수다’까지 넘나들며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써놓았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자의 ‘열하일기’처럼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아무리 집중해서 정밀하게 읽어도 태역, 태시, 태초, 태극 등의 개념은 다 그게 그거고, 오행, 오운, 육기 역시 고만고만 구별이 가지 않는데다 그런 개념들을 사람의 몸 부분 부분에 연결해 놓았으니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오죽하면 글줄께나 읽었다는 우리 마나님께서도 어려운 부분은 대충 건너뛰고 민담류의 예능적 임상이나 엽기처방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읽었다고 했겠는가. (그렇게만 읽어도 충분히 발랄하고 재미있더란다)
다행히 7, 8장 부분은 아주 쉽고 평이한 문체로 동의보감이 권하는 여성 건강과 자녀교육법을 소개하고 있다. 성적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한 아이들이 창밖으로 뛰어내렸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고, 날마다 옆집 아이들과 경쟁하고 비교당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다 때려치우고 저자가 권하는 방식으로 우리 아이들을 ‘방목’시켜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물론 내일 아침 눈뜨자마자 숙제는 했는지 닥달하겠지만...)
감기만 걸려도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고 약부터 먹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막연하나마 내 몸과 건강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는 것, 병은 밖으로부터의 침투가 아니라 내 몸의 균형이 흔들린 데서 온다는 것, 사람의 몸은 자동차처럼 고장난 부분만 열어서 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정도는 깨달은 느낌이다. 죽고 사는 것 역시 마찬가지. 나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은 내가 죽고 나서도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것이며, 내 나이 이제 마흔 줄에 불과하지만 나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은 저 하늘의 별들과 똑같은 나이라는 낭만적 상상에 이르면 삶과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 만큼 무서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소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
동의보감이 한의학계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다지만 그렇다고 책이 권하고 있는 양생법을 다 지키고 살 생각은 없다. 저녁에 포식하지 말고, 그믐에 술 취하지 말고, 겨울에 멀리 여행하지 말고, 밤에 불을 켜고 성생활을 하지 말라니. 지금 열심히 즐기고 있는 것들만 딱딱 골라서 금하라니 대체 어쩌란 말이냐. ^^ 그렇게 사셨던 조상들이나 지금 세상이나 백년도 못 채우는 수명은 고만고만하지 않느냐. 나는 적당히 지키고 적당히 누리면서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으로 그냥저냥 살고 싶다. ^^
上善若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