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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으로 살고 별빛이 되다 2 - 피로 쓴 독립운동 기록물을 읽고 불꽃으로 살고 별빛이 되다 2
김용균 지음 / 여름언덕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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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어느 만화가의 어처구니없는 망발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다. 그는 친일파 후손의 대저택과 독립유공자의 집문패가 붙어있는 어느 허름한 집을 비교해가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 이 사람에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가 어떻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으로 세워진 나라인지, 우리가 지금 어떻게 식민지 백성이 아닌 당당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는지, 그게 누구 덕분인지... 생각만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을 이렇게 폄하하고 조롱하다니...

 

나도 우리 세대의 평범한, 상식 수준의 일반인이라 독립운동사에 그리 밝지는 못하다. 안중근, 유관순, 김좌진, 김구 선생처럼 교과서에 나오는 분들 밖에 모르고, 삼일절이면 겨우 국기를 내거는 일 말고는 하는 일이 없고, 영화 밀정’, ‘암살을 보면서 며칠 비분강개하다 곧 시들해지는 그럭저럭한 서민이지만 좌우 정치적 성향을 떠나 도무지 저 철없는 말에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오른다.

 

시의적절하게도 지금 읽고 있는 책 불꽃으로 살고 별빛이 되다 2”는 독립운동가 30여 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엄혹한 시대를 만나 얼마나 처절하게 일제에 맞서 싸웠는지,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희생해서 이 나라를 되찾고 지탱해왔는지 절절하게 적혀있는 책이다. 무엇보다 가슴을 치는 대목은 한분 한분의 연대기와 업적을 나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분들의 1인칭 시점으로, 매일 매일 가슴 속의 소회를 적은 글이라는 것이다. 멀게만 느껴지는 위대한 독립운동가가 아닌 평범한 자연인으로서의 두려움과 불안, 두고온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그들을 돌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보탠 것보다 더 큰 독립에의 열망이 당신들이 직접 쓴 글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나는 의병이 되어 엄동설한에 깊은 산속을 떠돌며 일본군과 싸우는 이야기며, 안동의 여러 지사들이 단식으로 자결하는 20여일의 과정을 손수 기록해가는 일기, 일본군의 진영을 탈출해 수천리를 걸어서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역정, 일제에 의해 어린 여학생들까지 죽임을 당하는 대목을 읽으며 번번히 나를 그 상황에 이입해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고민해보았다. 물론 쉽지 않았고, 그런 결정의 상황에 내몰리지 않고 지금 이 평온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허은 여사는 독립운동가 집안의 딸로 태어나, 역시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석주 이상룡의 손자며느리가 되어 서간도에서 모진 고생을 겪고 안동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친정부모, 시부모님들을 모두 잃고, 남편마저 떠나보낸 후 여사께서 회고록에 남기신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귓가를 스치는 서간도 벌판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지나온 구십 평생을 되돌아봐도 여한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 연명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고달픈 발자국이었긴 하나 큰일 하신 어른들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러울 뿐이다. 그 대신 머지않아 여러 영령들 뵈옵고 이토록 살기 좋은 세상이 된 것을 말씀드릴 생각하면 마음 뿌듯하다. 선열들의 피흘린 노력의 보람을 오늘 이 나라의 성공에서 찾을 수 있으시겠지.’

 

선열들의 피흘린 노력으로 되찾은 나라, 일제의 식민지였으나 이제는 일본과 대등한 국방력을 겨루는 나라, 세계 최고의 코로나 대응으로 국격을 뽐내고 있는 이 나라가 물론 자랑스럽지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친일청산이다. 전방위적인 친일청산과 올바른 역사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저런 만화가 따위의 민족반역적인 망발을 견뎌야할 것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역사교육 어렵지 않다. 이런 책을 곁에 두고 매일 한 꼭지씩 읽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내일 다시 일본이 쳐들어와도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上善若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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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무니타스 이코노미 - 모두를 위한 경제는 어떻게 가능한가
루이지노 브루니 지음, 강영선 외 옮김 / 북돋움coop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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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발원한 코로나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지 이제 막 1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리 세상은 정말 엄청나게 변했다. 세계경제에 미친 직접적인 피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예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거리두기 1단계니, 1.5단계니 하는 정부 방침이나 공식명칭마저 이제 친숙한 생활용어가 되었고, 반면 예전에 친숙했던 이웃들, 동료들, 나아가 단골손님들에게까지 양팔간격이상의 거리를 두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과 고립을 부추기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 또한 서글픈 변화이다.

 

우리는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헬레니즘, 헤브라이즘, 르네상스 같은 패러다임이 고대, 중세의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패러다임이었고, 근대에 들어와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같은 개념이 구체적으로 경제를 작동시키는 원리라고 배웠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루이지노 브루니는 지난 2백년 동안 군림해온 이 보이지 않는 손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음 세상을 떠받칠 패러다임으로 무상성이라는 개념을 주창하고 있다. 모든 경제학 책이 그렇듯 다소 딱딱하고 어려운 용어가 많다 보니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며칠을 두고 차근차근 읽어가다보니 큰 틀의 흐름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각 장의 논지들은 하나의 주제를 향해 점점 모여 결국 시장의 인본주의’, ‘인간적 경제학으로 수렴되는 책의 구성, 흐름은 꽤 자연스럽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무상성’, ‘관계재라는 개념은 조금은 어렵고 독특하기도 하다. 가족도 친구도 아닌 그냥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재화가 될 수 있다고 하고, 또 굳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타인과 타인 사이에 무상성아가페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개념들이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보다 더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세상을 떠받쳐 왔다는 견해는 매우 흥미롭다.

 

책을 읽는 며칠 동안은 저자가 말하는 주제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데 집중했지만 막상 책을 덮고 나니 참 생각이 많아졌다. 우선 그의 말처럼 무상성아가페가 떠받쳐주고 있는 세상이 왜 이렇게 부조리하고 혼탁한가, 그리고 요즘 세상에서 가장 민감한 것이 돈, 경제인데, 이 각박한 영역에서 과연 저런 인간적인 개념이 작동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의 아이들이 무수히 굶어죽는 줄 알면서도 돕지 않는 세상이 아닌가 말이다. 매일 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국가간, 인종간의 분쟁, 빈부의 격차, 기성 종교들의 배타성에 기인하는 끔찍한 테러가 횡행하는 세상에 무상성’, ‘아가페라니 하는 회의마저 든다.

 

사람들은 하루빨리 백신이 보급되어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원체 시크한 사람이라 코로나 이전은 뭐 대단히 좋고, 그리워할 만한 세상이었나싶어서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다. 또한 지금 수준의 자유와 평등을 향해 거의 천년을 달려왔는데, 이제 걸음마를 뗀 무상성’, ‘아가페가 보편화되려면 또 얼마만큼의 세월이 필요할까? 우리 인간의 본능적인 이기심을 제어할 수 있는 그런 강력한 기제가 있기는 한 것일까? 나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갈 길이 멀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면 길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다. 루이지노 브루니가 주창하고 있는 무상성’, ‘아가페가 바로 그 목적지이고, 이 책은 우리에게 그 길의 들머리를 알려주는 길잡이라 할 만하다. 모처럼 나의 굳어가는 뇌와 지적호기심을 자극하는 좋은 책을 읽었다.

 

上善若酒~!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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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y 2021-01-10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라딘 서평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책이 많이 어려웠는데 이렇게 핵심을 잘 간파해주신 서평 덕분에 머릿속이 더 잘 정리되는 것 같아요^^ 희망과 회의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었는데, 다시 한 번 정리해가며 생각을 해 보고 싶네요^^
 
어젯날 철천지원수의 땅에서 자유를 노래하다 - 주성하와 탈북 청년들의 아메리카 방랑기
주성하.조의성 지음 / 북돋움coop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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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스턴 로케츠, 샌안토니오 스퍼스, LA 레이커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모두 미국 NBA 농구팀 이름이다. 마이클 조던 시절부터 농구팬이었던지라 미국 농구팀과 선수들 이름은 줄줄 꿰고 있으면서 정작 그 도시들이 어디 있는지 지도를 펴고 찾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이 미국 여행기를 읽기 시작하며 웬만하면 대충 넘어가려했는데 첫 장부터 등장하는 그 휴스턴이 어디쯤 있는지 모르고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워 결국 컴퓨터를 켤 수 밖에 없었다. 구글지도를 열고, 휴스턴에서 샌안토니오, 산타페, 그랜드캐년, 라스베이거스, LA로 어어지는 길을 죽 연결해보니 그제서야 이들의 여행경로가 한눈에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많이 봐왔던 여행기와는 달리 탈북청년들의 눈에 비친 미국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다소 특이한 여행기이다. 여행기가 마땅히 갖춰야할 사진작가 수준의 멋진 사진이라든가, 현지인이 추천하는 맛집정보 같은 것은 없고, 다소 무겁고 우울한 주제인 북한 얘기가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긴박했던 탈북과정의 스토리, 북한과 한국, 미국 사회에 대한 여러 방면에서의 차이 같은 내용들은 생소하기도 하고, 유익하기도 했다.

 

책을 읽고나서 굳이 한가지 고백하자면 내가 그동안 탈북자들에 대한 시각이 늘 부정적이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복잡하고 애매한 것들은 될 수 있으면 들여다보지 않으려 하고, 일단 탈북자라면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밀어내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책장을 다 넘기고나니 북한 젊은이들 중에서는 가장 열정적이고 진취적이고 뛰어난 사람만이 탈북에도 성공하고, 다른 세상에 와서도 제자리를 금방 잡고 잘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 책 덕분에 그들에 대한 이해가 꽤 넓어진 것 같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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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리라이팅 클래식 15
고미숙 지음 / 그린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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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재미있다고 해서 몇 번 보게 됐다.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드디어 한글을 반포할 모양인데, 세종대왕 한석규(역시 연기는 고참 배우들이 짱!)와 반대파의 두목 정기준이 한글의 필요성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저분이 한글을 만들지 않았다면 동의보감 같은 한문책도 다 원문으로 그냥 읽고 있지 않을까?, 알파벳 쓰는 나라들은 꽤 오래된 책들도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데 왜 우리는 백 년 전에 써진 글조차도 읽지 못할까?’ (물론 조크다. 한문을 가르치지 않은 우리 근대사 탓이지 세종대왕께 따질 일은 아닐 테니까...)

 

우리가 한문을 아직 쓰고 있었더라면 조상들의 많은 저술을 별도의 해설 없이도 웬만큼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리라이팅 클래식 시리즈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라이팅자체가 불필요할 테니까...^^) 하지만 동의보감은 좀 얘기가 다르다. 한문을 안다 해도 또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우리에게는 동양철학과 의학에 대한 기본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펄럭이는 태극기에는 태극문양과 네 개의 막대기들이 그려져 있고, 매일같이 신문을 뒤져 오늘의 운세를 읽고, 좋아 죽고 못 산다던 커플도 어허, 궁합이 안 좋아. 원진살이 있어...’ 점쟁이의 이 한마디에 그길로 갈라서면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그 음양오행이라는 것이 우리와 동떨어진 세상의 관념이자 허황한 미신이라고만 믿고 있다.

 

X-ray 처럼 모니터에 띄워주는 서양 의학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 정, , , 경락 운운은 당연히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스폰지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은 동의보감에는 투명인간이 되는 방법이 적혀 있다라는 제목으로 신비적, 엽기적 처방만을 모아서 희화화한 적도 있지 않은가. 서구적 관점에만 빠져있는 우리는 천지의 기를 받아 생명이 만들어지는데 하늘의 양기는 기가 되고 땅의 음기는 혈이 되므로...운운하면 벌써 귀를 닫고 잠 들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동의보감 번역서가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무슨 재주로 그걸 읽어낼 수 있으랴. 초보적인 입문해설서라면 모를까...

 

내가 한의학도도 아닌데 동의보감 번역서인들 해설서인들 읽어서 어디다 쓸 것인가.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의학서적의 해설서가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동양학 인문교양서로 풀어 놓았다. 친절하게도 젊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쓰는 이모티콘이나 흠, , , ~ 등의 명랑 발랄한 감탄사까지 동원해 어려운 의학 용어 빼고 일상적인 생활언어로 가볍게 풀어 놓았고, 변강쇠와 옹녀전 같은 옛날이야기를 비롯해 가깝게는 아바타’, ‘나는 가수다까지 넘나들며 최대한 쉽고 재미있게 써놓았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저자의 열하일기처럼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아무리 집중해서 정밀하게 읽어도 태역, 태시, 태초, 태극 등의 개념은 다 그게 그거고, 오행, 오운, 육기 역시 고만고만 구별이 가지 않는데다 그런 개념들을 사람의 몸 부분 부분에 연결해 놓았으니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오죽하면 글줄께나 읽었다는 우리 마나님께서도 어려운 부분은 대충 건너뛰고 민담류의 예능적 임상이나 엽기처방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읽었다고 했겠는가. (그렇게만 읽어도 충분히 발랄하고 재미있더란다)

 

다행히 7, 8장 부분은 아주 쉽고 평이한 문체로 동의보감이 권하는 여성 건강과 자녀교육법을 소개하고 있다. 성적에 대한 부담을 이기지 못한 아이들이 창밖으로 뛰어내렸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고, 날마다 옆집 아이들과 경쟁하고 비교당하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다 때려치우고 저자가 권하는 방식으로 우리 아이들을 방목시켜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물론 내일 아침 눈뜨자마자 숙제는 했는지 닥달하겠지만...)

 

감기만 걸려도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고 약부터 먹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막연하나마 내 몸과 건강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 사람의 몸과 마음을 따로 떼어내 생각할 수 없다는 것, 병은 밖으로부터의 침투가 아니라 내 몸의 균형이 흔들린 데서 온다는 것, 사람의 몸은 자동차처럼 고장난 부분만 열어서 수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정도는 깨달은 느낌이다. 죽고 사는 것 역시 마찬가지. 나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들은 내가 죽고 나서도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것이며, 내 나이 이제 마흔 줄에 불과하지만 나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은 저 하늘의 별들과 똑같은 나이라는 낭만적 상상에 이르면 삶과 죽음이라는 것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 만큼 무서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소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

 

동의보감이 한의학계에서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졌다지만 그렇다고 책이 권하고 있는 양생법을 다 지키고 살 생각은 없다. 저녁에 포식하지 말고, 그믐에 술 취하지 말고, 겨울에 멀리 여행하지 말고, 밤에 불을 켜고 성생활을 하지 말라니. 지금 열심히 즐기고 있는 것들만 딱딱 골라서 금하라니 대체 어쩌란 말이냐. ^^ 그렇게 사셨던 조상들이나 지금 세상이나 백년도 못 채우는 수명은 고만고만하지 않느냐. 나는 적당히 지키고 적당히 누리면서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으로 그냥저냥 살고 싶다. ^^

 

 

上善若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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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금, 보험, 저축을 능가하는 노후대비'책'
    from 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2012-11-01 18:18 
    '두통에는 진통제', '우울증엔 항우울제', '불면증엔 수면제'라는 것이 공식처럼 각인되고 있다. 그러나 시댁과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의 두통과 학습우울증에 걸린 청소년의 두통이 과연 같은 질병일까. 또 시댁과 갈등을 겪는 주부에게 어깨 결림,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 생리통이 동시에 나타났다면, 이는 각각 정형외과, 신경과, 정신과, 내과, 산부인과에서 따로 해결해야 할 병일까. ─강용혁, 『닥터K의 마음문제 상담소』, 12쪽 예전에 손발이 너무..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
일연 지음, 리상호 옮김, 강운구 사진, 조운찬 교열 / 까치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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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어느 방송사의 사극 ‘태조 왕건’이 있었다. 최수종(왕건), 서인석(견훤), 김영철(궁예) 등 많은 베테랑 연기자들이 출연해 후삼국 통일 과정을 잘 그려냈던 사극 드라마로 시청율도 상당히 높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매번 고만고만한 청춘남녀의 사랑싸움 아니면 남편 바람피우는 얘기가 대부분인 멜로드라마에 비해 이러한 역사극은 그 스케일이 웅대하고 스토리 전개가 상당부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에게 좀더 진지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듯싶다. 그런데 역사라는 분야에 대해 항상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런 사극들을 보면서 항상 궁금한 것이 있었다. 즉 어디까지가 사료에 근거한 부분이고 어디부터가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이냐는 것이다.


최근 종영된 ‘서동요’ 역시 마찬가지다.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어떠한 근거로, 어떠한 고증 절차를 거쳤기에 천년 전의 역사를 저토록 단정적으로 정의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물론 인터넷 상의 서동요 공식 싸이트를 찾아 고증 게시판을 보니 제작진들의 고민과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여전히 드라마의 스토리와 역사적 진실과는 어느 정도의 간극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꺼내보는 책이 바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인 것이다. 나는 비록 사진의 퀄리티에 혹해서 책을 구입한 경우이지만 실상 읽다보니 그동안 우리가 삼국시대 관련 사극에서 본 이름들이나 사건들이 거의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드라마나 영화의 스토리만큼 구체적이고 세세하지는 않지만 줄거리의 큰 틀은 모두 이 책에서 나온 것들이라 할 수 있다.


평소 취미로 역사공부도 조금 하고 가끔 답사여행도 다녔더니 이렇게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에서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다음은 바로 그런 사례들, 영화 ‘황산벌’을 보면서 찾은 장면들이다.



1. 백제금동향로


나당연합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의자왕 오지명이.. 계백 박중훈을 불러놓고 술 한 잔을 권하며 묻는다.


 "계백아.. 니 애들은 몇이나 뒀냐?"

 "예.. 셋입니다."

 "그려, 잘혔다. 내가 아들만 마흔 세 명인데 자슥새끼 많아봤자 좋을 거 하나 없다. 자, 한 잔 더 혀라"


바로 그 술상 옆에 놓인 향로가 백제금동대향로였다. 백제의 위덕왕(물론 서동요에 나왔던)이 그 아버지 성왕을 추모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는 그 국보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 주말에 국립부여박물관에 일부러 찾아가 향로를 구경하고 왔다.



2. 근친혼


 “나는 신라의 대장군 김유신의 조카이자 사위인 관창이다!!

 계백은 어서 나와 내 칼을 받아라~!”


5천 결사대의 목책 앞에 죽으러 온 화랑의 고함소리를 듣고 백제군 이문식이 이렇게 답한다.


 “야 이놈아~! 조카면 조카고, 사위면 사위지, 조카이자 사위는 또 어느 나라 개족보여~?”


신라의 극심했던 근친혼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진본이냐 조작이냐 논란이 많았던 화랑세기 필사본 등 문헌에 의하면 김유신의 여동생이 문희인데, 바로 그 문희와 김춘추 사이의 딸 ‘지소’는 외삼촌 김유신에게 시집을 간다. 그러니까 김유신은 환갑이 되던 해에 자신의 친조카와 결혼했다는 얘기다. 그들 사이에 여러 자식도 뒀다고 한다. 물론 오늘날의 잣대로 윤리, 비윤리를 논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3. 소정방과 김유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김유신이 당나라 장군 소정방 앞 테이블에 칼을 꽂으며 위협을 한다.


 “니덜 당나라놈들...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끼라”


그리고 이 위협은 곧 사실이 된다. 김유신이 충청도 계립령 아래 당교라는 다리 밑에 소정방을 죽여서 묻어버리고, 그 다리 위로 신라사람들이 지나다니게 했다는 설이 있다.



내가 역사학자가 아닌 마당에야 굳이 이 책을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공부해야할 일은 없다. 다만 영화 ‘왕의 남자’는 장녹수에 관한 문헌이나 중종반정에 관한 역사적 사실 등을 검색해보고 가면 훨씬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처럼 삼국시대, 통일신라 등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는 이 책 ‘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를 곁에 두고 볼 일이다.

 

上善若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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