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50
고미숙 지음 / 책세상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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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을 비롯한 '연구공간 '너머''의 멤버들의 특징은 학문의 탈영토화라고 할 수 있는 학문의 경계를 해체하는 것이다. 그 경계를 넘나들고 가로지르면서 기성의 학문에 대한 비판적 의혹을 강렬하게 내비취고 결국은 그것을 해체의 논리로 전복시킨다. 그러나 그들의 학적 담론은 그 세련된 레토릭에도 불구하고 푸코와 데리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모사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일명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하는 사조에 기반한 그들의 해체적 전략은 모더니즘에 대한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 오해는 끝없는 착종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 책은 개화기의 문헌, 특히 대한매일신보의 개화등가사를 중심 자료로 하여 우리의 근대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의 세 코드로 읽어내고 있다. 내부자의 시선이 아닌 근대의 외부에서 외부자의 시선으로 근대를 탐색하겠다는 저자의 의지는 대체적으로 성공하고 있는듯 하다. 그러나 이 책 전반을 가로지르고 있는 '동일성'과 '차이'의 이분법은 동일성을 악으로 차이를 선으로 보는 단순한 도식을 따르고 있다. 이 책의 한계란 '동일성-공동체-악'의 한 축을 '차이-개별자-선'이라는 또다른 축으로 비판하고 있는데서 찾아질 수 있다. 물론 이런 비판자체의 도식화가 단순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리고 부분적으로 이런 비판이 적용될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근본적인 저술의 자세는 이 간단한 도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동일성과 공동체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던 우리 인문학의 편향을 반성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무시할 수 없다. 뿐만아니라 근대적 주체의 형성에 대한 설명과, 근대적 가치의 표상 체계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에 대한 천착 등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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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는 반역이다 - 신화와 허무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서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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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사실상 국가의 공백을 채워주는 신화적 실체'였다는 폭로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민족주의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을 탁월하게 이루어내고 있다. 특히 '민족주의를 고정불변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역사적 변화에 열려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운동''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1부의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와 '전근대 사회에 대한 민족주의적 접근이야말로 분단체제를 고착시키는 반민족적 역사서술'로 타락하기 쉬우므로 '민족을 초역사적인 자연적 실재로서 부당 전제하는'오류에서 벗어나야함을 지적하고 있는 [한국사 학계의 '민족' 이해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저자의 비판적 지성이 돋보이는 글들이다.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미덕을 갖추고 있고,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가 지배체제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될때 민족주의의 진보적 측면을 유실할 수 있음을 지적한 대목은 탁월하다.

2부의 '맑스주의와 민족주의'는 맑스와 엥겔스, 로자 룩셈부르크의 민족주의 이론의 한계와 반성을 담고 있다. '계급해방'을 '민족해방'에 우선시했던 맑스와 엥겔스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들의 민족주의 이론의 변모가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단초가 되었음을 지적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우는 국제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이론으로 조국 폴란드의 독립과 자치에 반대했던 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3부의 '동유럽의 민족주의'는 우리의 식민통치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폴란드를 중심으로 헝가리 유고 등의 동유럽 민족주의와 민족운동을 검토하고 있다.

4부 '에필로그-이데올로기의 속살들'에서는 동일성의 해체에 몰두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패권적 정황에서 민족주의의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해체론자들의 논리를 '이들의 기본 시각은 역사라는 거대 담론이 계몽사상 이래의 '모던'이라는 기획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지적하고, '허구냐 진실이냐를 떠나서 거대 담론의 희망을 절망과 좌절로 뒤바꾸어 놓았던 우리네 삶의 모반 과정을 이해하고 싶다.그것이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민족주의의 해체가 아닌 반역적 민족주의를 성찰하고 민족주의의 건강한 진로를 모색하려 한다는 것은 해체론자들의 섣부른 발상을 검토한 뒤의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가치롭다. 푸코의 발상인 '미시사 방법론'을 통해 '거대담론'과 '일상적 삶'의 관계를 후자의 입장으로 역전하려는 '신문화사'의 시도를 '민족국가가 고안해 냈던 다양한 상징 조작과 신화 만들기를 규율 권력과 미시 권력 또 담론 권력의 관점에서 분석한다면,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일면 긍정하는것 같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전략, '무엇을 할 것인가'가 없다는'데서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신문화사'의 거대 담론 해체 전략은 미래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뒷받침 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빛을 발할 것이다.'(335쪽)

이 말은 너무도 명쾌하다. '창조적 해체'를 주장하는 저자의 입장은 그들의 논리에 비해 훨씬 성숙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념의 진보와 삶의 보수성]은 '앎'의 '함', 즉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의 실마리를 얻어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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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대, 선비는 무엇을 하는가 - 남명 조식과의 만남, 위대한 한국인 9 위대한 한국인 9
허권수 지음 / 한길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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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조선조의 지식인 조식 남명 선생의 전기이다. 저자는 경상대학교 부설 '남명학 연구소'소장직을 맡고 있는 허권수다.

남명은 나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그의 삶과 학문과는 관계없이 그저 이름만으로 그랬다. 남명의 외가이자 출생지인 합천의 톳골, 그곳은 남명이 '뇌룡사'를 짓고 12년간 후학을 양성했던, 남명의 삶과 학문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이다. 바로 그곳은 내가 유년 시절을 보낸 나의 고향이다. 남명 그리고 '뇌룡정'(뇌룡사를 복원한 것)은 조식 남명이라는 한 위대한 지식인과는 상관없이 내 유년의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작년에 이윤택이 극본을 쓰고 연출한 [시골선비 조남명]을 보고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을 남명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 연극은 내 기억을 새롭게 환기시켰으며 올 가을에 뇌룡정을 다시 찾게 만들었다.

남명의 학문은 '경'과 '의' 두 글자로 요약된다. 학문의 주체인 '나'를 성찰하고 돌보는 것이 '경'이라면, '의'는 이러한 '나'를 외부적인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을 일컫는다. 이러한 '경'과 '의'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써 '실천'된다. 남명은 죽음을 앞두고도 제자들에게 '경'과 '의'의 가르침을 남겼다. 그의 학문적 태도와 삶은 시종일관 '경'과 '의'에 대한 지극한 신념을 따르고 있다.

저자는 남명이 남긴 글들(시, 서간, 상소문 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500여년 전의 지식인 남명을 생동감있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의 글들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실천'이었다. 그 실천은 때로는 목숨을 담보로 할만큼 적극적인 것이었다. 이로써 남명은 지식인의 책무가 한 개체의 '생명'을 능가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생활인으로서, 스승으로서, 지식인으로서 남명은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해냈다. 그의 삶을 다시 반추하는 것은 과거에 대한 골동취미에서 나온 도락적인 이유가 아니다. 지금 남명이 주는 의의는 오늘날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지식인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들을 성찰하게 하는데 있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그 시류를 거스를 수 있는 결단력, 입신출세라는 개인적 욕망을 당대의 역사적 조건에 대한 도전으로 이끌 수 있는 인성의 범대함, 이런 것들은 남명의 삶 자체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인 것이다.

나는 다음과 같은 말에 깊은 울림을 느낀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학문의 가시밭길을 기꺼이 걸어가도록 만드는 엄청난 울림이다.

'사람들 가운데 곤궁함을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곤궁함에 바탕해서 형통함을 구한다. 나의 곤궁함을 가지고서 다른 사람들의 형통함을 바꿀 수 있겠지만, 나는 바꾸지 않겠다. 다만 나의 다리 힘이 약해서 용감히 나아가 힘써 행하지 못할까 두려울 따름이다.'

남명이 과거라는 것을 버리고 시험에 필요한 공부가 아닌 진정한 공부에 몰두하고 있을 때 그의 친구 송인수가 보낸 <대학>의 뒤에 이와같은 글을 남겼다. 그 기개와 의지가 500여년의 시간을 건너 지금 나에게 그대로 느껴진다. 이제 나는 더이상 '곤궁함'과 '형통함' 사이에서 고민할 이유가 없어졌다. 왜냐면 '곤궁함' 속에는 '형통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주변이야말로 진정한 중심의 '도'가 들어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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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
코모리 요우이치 외 지음, 이규수 옮김 / 삼인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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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의 진보적인 지식인 18명을 필진으로 하여 일본 내셔날리즘을 비판적으로 해부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으로 대표되는 극우주의자들의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그러한 반동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배제된 타자들의 복원을 지향하는 것이 편집의 기본 방향을 이루고 있다. 일본 극우들의 논리인 '자유주의 사관'의 문제점을 여러 방면의 전공자들을 통해 다각도로 비판한다. 특히 카토 노리히로의 <패전후론>이 가진 이분법적 논리의 기만성을 지적하고 있는 비판들은 일본의 전후 콤플렉스가 얼마나 강렬한 것인가를 엿보게 한다. 그리고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 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의 구름> 속에 내재해 있는 국가주의 논리를 파헤치고, 이와 같은 논리를 재생산하는 극우주의자들의 편향적 논리를 비판하는 것도 흥미롭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일본 군국주의가 저지른 범죄들에 대한 책임이 단순한 보상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자신의 병폐를 치유하는 한 방도라는 지적도 참신하다.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 초민족주의와 해체주의를 방법론으로 하여 일본 극우들의 국가주의 논리를 분석한 이 글들은 역사적 현실에 대한 이론적 모색이라는 점에서 뜻깊은 작업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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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와 하버마스를 넘어서 현대사상신서 2
윤평중 / 교보문고(단행본)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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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한국어로 옮기면서 수정 증보한 것이다. 철저한 근대주의자인 하버마스와 탈근대주의자인 푸코의 계몽에 대한 사유에서 공통분모를 찾아 새로운 비판 논리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기본 태도이다. 흔히 하버마스로 대변되는 비판이론과 푸코로 대변되는 해체주의는 화해할 수 없는 관계로 알려져 있지만 저자는 이 둘의 관계를 상보적으로 파악하여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 내고 있다.

특히 푸코의 후기 저술에 주목하여 사회 비판의 인식론적 규범의 가능성을 하머마스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논리와 결부해 이 둘의 상생적 관계를 입증하고 있다. 저자의 태도는 보편적인 논리를 펼치는 하버마스보다는 구체적인 권력관계의 고고학적 분석에 주목하는 푸코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푸코의 인식이 답할 수 없는 영역-왜 비판해야 하고 어떻게 비판해야 하는가-에 대해 하버마스의 통찰을 끌어들여 보다 철저한 근대성의 비판작업을 수행하고자 한다.

이 책은 하버마스와 푸코의 사상을 이해하는 개론서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그 전거로 내세웠던 포퍼와 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에 대한 개괄적 이해를 도와주는 입문서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부록으로 실린 저자의 논문은 이 책의 이해를 도와주며, 역시 부록으로 실린 하버마스와 푸코의 근대(계몽)에 대한 글들은 두 사상가의 입장을 확인하게 해준다.

이율배반적인 관계로 알고 있던, 비판이론과 해체주의의 상보적 이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 책의 독서는 새로운 논리 모색의 여백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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