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는 반역이다 - 신화와 허무의 민족주의 담론을 넘어서
임지현 지음 / 소나무 / 1999년 3월
평점 :
절판


'민족은 사실상 국가의 공백을 채워주는 신화적 실체'였다는 폭로로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민족주의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을 탁월하게 이루어내고 있다. 특히 '민족주의를 고정불변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역사적 변화에 열려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운동''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1부의 [운동으로서의 민족주의]와 '전근대 사회에 대한 민족주의적 접근이야말로 분단체제를 고착시키는 반민족적 역사서술'로 타락하기 쉬우므로 '민족을 초역사적인 자연적 실재로서 부당 전제하는'오류에서 벗어나야함을 지적하고 있는 [한국사 학계의 '민족' 이해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저자의 비판적 지성이 돋보이는 글들이다. 뿐만 아니라 민족주의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미덕을 갖추고 있고, 한국 사회의 민족주의가 지배체제의 이데올로기와 결합될때 민족주의의 진보적 측면을 유실할 수 있음을 지적한 대목은 탁월하다.

2부의 '맑스주의와 민족주의'는 맑스와 엥겔스, 로자 룩셈부르크의 민족주의 이론의 한계와 반성을 담고 있다. '계급해방'을 '민족해방'에 우선시했던 맑스와 엥겔스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들의 민족주의 이론의 변모가 레닌의 제국주의론의 단초가 되었음을 지적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우는 국제주의에 입각한 사회주의 이론으로 조국 폴란드의 독립과 자치에 반대했던 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3부의 '동유럽의 민족주의'는 우리의 식민통치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폴란드를 중심으로 헝가리 유고 등의 동유럽 민족주의와 민족운동을 검토하고 있다.

4부 '에필로그-이데올로기의 속살들'에서는 동일성의 해체에 몰두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패권적 정황에서 민족주의의 올바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

저자는 해체론자들의 논리를 '이들의 기본 시각은 역사라는 거대 담론이 계몽사상 이래의 '모던'이라는 기획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지적하고, '허구냐 진실이냐를 떠나서 거대 담론의 희망을 절망과 좌절로 뒤바꾸어 놓았던 우리네 삶의 모반 과정을 이해하고 싶다.그것이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타진할 수 있는 첫걸음'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민족주의의 해체가 아닌 반역적 민족주의를 성찰하고 민족주의의 건강한 진로를 모색하려 한다는 것은 해체론자들의 섣부른 발상을 검토한 뒤의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가치롭다. 푸코의 발상인 '미시사 방법론'을 통해 '거대담론'과 '일상적 삶'의 관계를 후자의 입장으로 역전하려는 '신문화사'의 시도를 '민족국가가 고안해 냈던 다양한 상징 조작과 신화 만들기를 규율 권력과 미시 권력 또 담론 권력의 관점에서 분석한다면,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일면 긍정하는것 같으면서도 ''미래에 대한 전략, '무엇을 할 것인가'가 없다는'데서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신문화사'의 거대 담론 해체 전략은 미래에 대한 진지한 모색이 뒷받침 될 때, 비로소 그 진정한 빛을 발할 것이다.'(335쪽)

이 말은 너무도 명쾌하다. '창조적 해체'를 주장하는 저자의 입장은 그들의 논리에 비해 훨씬 성숙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념의 진보와 삶의 보수성]은 '앎'의 '함', 즉 이론과 실천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의 실마리를 얻어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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