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은 김훈일 때 가장 빛난다. 김훈은 소설에서 이순신도 되었다가 인조와 서인도 되었다가 정약전도 되었다. 젊은 여인이 되기도 한다. 심지어 개도 되었다. 하지만 김훈 특유의 사유와 문체 때문에 그들 모두가 어쩔 수 없이 김훈으로 보인다.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훈의 힘이 각 인물들을 잡아먹은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소설가로서의 김훈에게는 약점이다. 그래서 김훈의 글은 이처럼 김훈이 김훈 일 때, 소설보다 에세이일 때 더욱 빛나는 것이다. 김훈의 글은 읽을수록 번뜩이고 음미할수록 깊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일상의 어떤 것도 그냥 보이지 않는다. 스쳐가는 바람의 질감마저도 다시 느껴지게 하는 책. 김훈의 예민한 감각들이 부럽다. 온몸으로 느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