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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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잔상들>를 읽고 적어둔 레퍼런스 목록들 중 하나를 찾아 찬찬히 읽어보려 하다가, 오래 전에 읽은 이 책이 생각나 다시금 펼쳐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강을 열렬히 좋아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근데 지금도 잔잔바리로 좋아하고 있는 상태니까 이런 말 하는 것이다.) 자기소멸의 욕구로 가득 찬 한강의 인물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럼에도 <희랍어 시간>은 좋아했고 앞으로도 좋아할 소설.

 

 

남자와 여자는 서로가 서로를 결코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안다. (두 사람 사이에 길게 가로놓인 칼처럼) 그럼에도, 서로의 움직임을 더듬는 숭고한 행위.

중학생 때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남자가 여동생에게 쓴 편지가 눈물 날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는데, 다시 읽어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그냥 아름다운 건 언제든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 이번 학기 비평 수업에서 어떤 언니가 한강에 대해 쓴다고 했는데, 어떻게 됐을까. (수업 드랍해서 모름) 그 언니의 말에서 한 작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와서 +_+ 이런 눈으로 엿들었다. ㅇㅊㅈ 교수님도 주욱 듣다가 한강에 대해 쓰라고, 저번 학기에 썼어도 또 쓰면 된다고. (ㅋㅋ) 스윗하시나 학부생들한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것 같아서(^^) 드랍. 그리고 다른 학생들한테 기죽어서 드랍했는데 다른 수업에서도 기 죽고 있다는 거..ㅠ 기죽는게 일상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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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 민음사 모던 클래식 51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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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 종료된 민음사 모던클래식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

<모조품>

:범박하게는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왕-아버지-로부터 탈피해 발언권을 얻고자 노력하는 이야기.

 

<숨통>

:표제작. 제목이 소설 안에서 쓰이는 방식이 좋다. 약자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태도를 지닌 그도 그녀를 절대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 순수한 호감, 열정이 꼭 올바른 이해를 수반하진 않으니까. 미국(타지)에는 그녀가 속한 문화,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결코 없을 것이고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만다.

 

<미국대사관>

:민주주의, 정의와 같은 거대한 가치에 가려진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우곤나. 개인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 미국 대사관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굳센 뒷모습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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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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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에는 드디어 테드창을 읽었다.

 

테드창이 하드 SF 소설가라고 하던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묵직한 느낌의 단편들이 많았다. 읽고 나서 너무 좋아서 메모를 붙여놓은 단편도 꽤 된다. 다음은 각 단편에 대한 느낌. (메모 남겨놓은 것들만. 하핫)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책에 실린 첫번째 단편인데, 명성에는 이유가 있구만 감탄하며 읽었다. 탁월하고 정교한 이야기다. 알라를 믿는 무슬림 세계를 배경으로 삼아 '모든 것은 결정돼 있다'는 명제를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미래나 과거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것들을 더 잘 알 수는 있다는 것. 얼마나 위로가 되는 상상력인가.

 

<소프트웨어 객체 생애주기>

: 테드창은 과학도지만, 과학에서의 생존법칙-효율,뛰어난결과,이익-이 꼭 답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게놈이 무관심 속에서 혼자 쑥쑥 자랄 수는 없는 것처럼, 경험을 알고리즘적으로 압축할 수는 없듯, 과학의 효율성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한 생애를 온전히 길러내기 위해선 끈기, 존중, 애정이 필요하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것이 사랑일 것이다(그러나 이 사랑은 마냥 낭만적이진 않다.) 잭스의 권리를 인지하고 그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려는 애나의 태도가.. 숭고하다. (개인적으로 눈물 났다. 그 숭고함의 이면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

 

<사실적 진실, 감성적 진실>

: 책을 덮고 계속 생각나는 단편. 머리를 꽝! 하고 한 대 내려치는 듯한 상상력이다. 기억의 왜곡을 짚어내는 날카로움. 어쩌면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과 같은 맥락의 메세지라고 느꼈는데, 과학기술은 지나왔던 일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게 도와준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우리가 선한 행동을 택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선하게 살 확률이 높아진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이야기.

 

테드창은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담아내는 그릇, 둘 다를 갖춘 소설가다. (형식이 독특한 소설들이 많음) 8월에는 좋은 책을 많이 읽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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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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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을  읽고 이 책을 읽게 돼서 신기했었다. 마찬가지로 드레스덴 폭격을 다루고 있는데다 상실에 차마 접근할 수 없어서 상상력을 통해 전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비슷하다. 특히 필그림이 영화를 거꾸로 보는 장면과 오스카가 9.11 테러의 그 날을 역순으로 상상하는 장면이 겹쳐졌다. 물론  <제5도살장>이 더 sf적이지만..?

 

웃긴 게 고등학생 때 이 책이 우리나라에 출간되자마자 샀었다.. 아마 그 당시 <빨간책방>을 열심히 듣고 있었고 김중혁이 열렬히 좋아하던 작가가 커트 보네거트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 당시는 책의 내용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고, 다시 읽으니 여전히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반전소설로 읽기에는 그 이상의 소설이라는 것쯤은 알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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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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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읽은 책을 이제야.

올해 읽은 가장 압도적인 소설. 소설을 읽고 포어가 쓴 다른 모든 소설이 궁금해졌으나 아쉽게도 그는 과작을 하는 작가인 듯하다.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아홉 살 소년 오스카가 상실의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오스카는 아버지 방에 있던 꽃병 속에서 열쇠를 발견하는데, 그 열쇠가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라고 여긴다. 그래서 열쇠가 들어있던 봉투에 적혀 있는 '블랙(black)' 이라는 단어를 단서 삼아, 뉴욕에 사는 모든 '블랙'을 만나러 8개월 동안 도시를 헤맨다. 오스카의 이야기와 함께, 드레스덴 폭격을 겪었던 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가 진행된다. 끔찍한 재난으로 인한 거대한 상실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홉 살 소년의 시선으로 상실을 이야기한다는 접근법 자체가 훌륭하다. 오스카는 자신의 고통을 언어화할 수 없어 끊임없이 떠드는 것을 택하고, 그의 할아버지는 입을 다무는 것을 택한다. 둘 다 나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도 않는데 그들의 고통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특히 오스카.. (나는 어린 화자가 등장하는 소설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해왔다. 조숙한 척 하지만 미숙함이 드러나고야마는 화자들) 뉴욕에 있는 모든 블랙을 찾겠다는 오스카의 무모한 여정이 아홉 살 소년이 떠올릴 수 있던 아버지의 죽음에 다가가는 한 방편이라는 것. 오스카는 이렇게 말한다.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더 이상 상상하지 않게 될테니까요."

 

결국 작가가 상실을 견뎌내는 방법으로 상상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좋다. (실험적인 기법의 여러 페이지들로) 그 상상력이라는 거.. 결국은 소설 그 자체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들은 어쩔 수 없나봐. 서사의 힘을 믿고야 마는 것. 빔 벤더스가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영화를 이야기를 존속시키는 매체로 제시하는 것처럼. (잘 모르는데 수업시간에 배워서 써먹어 봄 ㅎㅎ)

 

(+) 사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올해의 책은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일수도. 크라우스와 포어는 부부다. 신기하게 두 책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무척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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