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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9년 5월
평점 :
8월에는 드디어 테드창을 읽었다.
테드창이 하드 SF 소설가라고 하던데,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묵직한 느낌의 단편들이 많았다. 읽고 나서 너무 좋아서 메모를 붙여놓은 단편도 꽤 된다. 다음은 각 단편에 대한 느낌. (메모 남겨놓은 것들만. 하핫)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 책에 실린 첫번째 단편인데, 명성에는 이유가 있구만 감탄하며 읽었다. 탁월하고 정교한 이야기다. 알라를 믿는 무슬림 세계를 배경으로 삼아 '모든 것은 결정돼 있다'는 명제를 과학적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미래나 과거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그것들을 더 잘 알 수는 있다는 것. 얼마나 위로가 되는 상상력인가.
<소프트웨어 객체 생애주기>
: 테드창은 과학도지만, 과학에서의 생존법칙-효율,뛰어난결과,이익-이 꼭 답은 아니라고 말하는 듯하다. 게놈이 무관심 속에서 혼자 쑥쑥 자랄 수는 없는 것처럼, 경험을 알고리즘적으로 압축할 수는 없듯, 과학의 효율성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한 생애를 온전히 길러내기 위해선 끈기, 존중, 애정이 필요하고 이 모든 것을 종합한 것이 사랑일 것이다(그러나 이 사랑은 마냥 낭만적이진 않다.) 잭스의 권리를 인지하고 그에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려는 애나의 태도가.. 숭고하다. (개인적으로 눈물 났다. 그 숭고함의 이면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걸까?)
<사실적 진실, 감성적 진실>
: 책을 덮고 계속 생각나는 단편. 머리를 꽝! 하고 한 대 내려치는 듯한 상상력이다. 기억의 왜곡을 짚어내는 날카로움. 어쩌면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과 같은 맥락의 메세지라고 느꼈는데, 과학기술은 지나왔던 일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우리가 더 잘 살 수 있게 도와준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 우리가 선한 행동을 택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선하게 살 확률이 높아진다. 과학적 상상력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긍정하는 이야기.
테드창은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담아내는 그릇, 둘 다를 갖춘 소설가다. (형식이 독특한 소설들이 많음) 8월에는 좋은 책을 많이 읽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