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 : 경제편 - 벗겼다, 국가를 뒤흔든 흥망성쇠 벌거벗은 세계사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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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넘치고
결말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눈을 델 수 없는 돈과 욕망의 역사가 펼쳐진다!
<뒤표지에 적힌 책 소개 문구> 중에서

벌거벗은 세계사는 Tvn에서 방영되고 있는 교양 프로그램이다. 매주 경제학, 역사학 등의 전문가 한 분이 나와 패널들과 시청자에게 세계사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다.

교보문고에서 출간한 <벌거벗은 세계사 경제 편>은 Tvn에서 방영된 내용 중 경제 관련 주제만 모아 펴낸 것이다. 10개의 주제는 중세를 대표하는 메디치 가문, 영국의 노예무역, 오스만 제국과 튀르키예 스탄, 기축통화가 된 미국 달러, 산업혁명과 잭더리퍼가 날뛰던 슬럼가, 소도시에서 국제도시가 된 중국 상하이, 석유를 둘러싼 산유국과 강대국의 전쟁, 영화 <대부>를 연상시키는 아메리칸 마피아,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회자되는 일본 버블 경제를 담고 있다.

책 소개 글에 있듯이 이 책에 언급된 내용들은 어디서 한 번쯤은 들어본 내용이다. 그래서 스포일러가 넘쳐나고 결말은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 경제사에 담긴 대략적인 내용과 결말은 아닌데 세부적인 사항은 잘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첫 번째 주제인 메디치 가문만 하더라도 중세 피렌체에서 활동한 가문으로 다빈치,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한 재력가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메디치 가문은 작위도 없는 평민, 조반니 데 메디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은 잘 모른다. 그리고 예술가 후원과 금융업 외에 어떤 일을 했는지도 잘 모른다. 이 책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본의 버블 경제를 보며 이와 닮아있는 우리나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타산지석 삼아, 우리는 잃어버린 10년, 20년 없이 버텨내야 할 텐데 말이다.

잭더리퍼의 이야기는 여러 미디어를 통해 본 적이 있다. 매춘부를 잔인하게 살해한 살인마로, 결국 누구인지 잡히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의 산업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올라온다. 산업화는 부의 양극화를 이루고 가난한 사람들은 4페니 짜리 밧줄 여관(밧줄에 몸을 기대고 빨래처럼 고꾸라져자는 여관)이나 2페니 짜리 앉아서 자는 휴게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몸이 작은 아이들은 굴뚝청소부에게 팔려가거나 어른보다 저렴한 임금을 지불하고 가혹한 노동을 시키기도 한다. 이것은 영국 산업화의 어두운 뒷모습이다.

이 외에도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라는 중국 상하이의 영국 조계지(와이탄)과 프랑스 조계지에 얽힌 이야기, 오스만 제국이 커피를 마시게 된 이유와 그 이후 커피가 유럽은 물론 전 세계에 퍼진 이야기 등 흥미로운 경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실제 삽화와 사진, 지도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당시 상황을 더 와닿는다. 특히 마약전쟁이나 마피아 전쟁 등에는 희생당한 시체의 사진이 흑백으로 수록되어 있어 당시 참혹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연관된 책과 그림들이 떠오른다. 마피아 전쟁에서는 도서 <위대한 개츠비>와 영화 <대부>, 메디치 가문 이야기에서는 르네상스 당시 화가들과 조각가들의 예술품, 오스만 제국에서는 튀르키예스탄식 커피, 상하이 이야기에서는 영화 <정무문>과 현대 중국의 드라마, 일본 버블경제 이야기에서는 최근에 읽은 오쿠다 히데오 도서 <스무 살, 도쿄> 등이 떠오른다. 세계사에서 나타난 경제사건에 관심이 있거나, 다른 도서를 읽는데 배경지식을 얻고 싶다면 벌거벗은 세계사 시리즈를 읽는 게 도움이 될 듯싶다.

(교보문고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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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 -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1900~1945
토비아스 휘터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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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게 확실한 지식은 없다. 이것이 새로운 위대한 물리학 이론의 핵심이 될 것이다.p102

1900년부터 1945년 유럽 천재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양자물리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과학위인전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리처드 파인만조차, 자신을 포함해 양자물리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으니, 나 같이 평범한 사람은 어떻게 그 세계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겠나^^

이 책은 천재 과학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친분, 적대를 다루고 있어 과학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다. 양자역학에 대한 새로운 발견, 협동, 배신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의학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의학영화가 재미있듯이,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어도 이 책은 내게 충분히 재미있다. 챕터마다 노벨물리학상과 노벨화학상 수상자(가끔은 노벨 경제학 수상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노벨상의 권위는 익히 알고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너무 많이 등장해, 노벨상을 흔한 상으로 착각하게 된다. 이 책에 기록된 1927년 제5회 솔베이 회의(과학자들의 모임)에는 29명의 과학자 중 17명이 노벨상 수상자이다. 흑백사진만 봐도 아인슈타인, 마리 퀴리가 딱 눈에 띈다.

국어 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양자역학은 입자 및 입자 집단을 다루는 현대 물리학의 기초 이론으로 입자가 가지는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 측정에서의 불확정 관계를 설명한다고 한다. 양자물리학, 양자역학이 현대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과연 양자역학은 어떻게 탄생하였고 그 후 40여 년간 어떻게 이론화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1900년 독일의 막스 프랑크가 흑체 문제(온도와 색상의 스펙트럼 연관성 설명 공식을 찾는 문제)를 연구하면서 <양자물리학>이 탄생하였다. 양자는 세상에 존재한다. 그 후로 우리가 익히 이름을 들어본 과학자(이론물리학자, 실험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이 이 문제에 매달린다. 폴란드계 프랑스인 마리 퀴리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피치블렌드 더미에서 라듐을 추출하고 우라늄 방사능을 연구한다. 마리 퀴리의 경쟁자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방사능의 <전환 이론>을 개발하고 한스 가이거와 헬륨 원자를 알아낸다. 1911년 덴마크의 닐스 보어는 영국 캠브리지에서 어니스트 러더퍼드에게 물리학을 배우고 수소스펙트럼선을 수수께끼를 밝히며 <원자물리학>을 창시한다. 그 후 닐스 보어는 덴마크 코펜하겐에 이론물리학 대학 연구소를 설립하고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과 같은 후학을 양성한다.

이 책에는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한 코펜하겐파(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 위대한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와 이론물리학자 막스 보른을 중심으로 한 괴팅겐파(독일 괴팅겐에 위치), 막스 프랑크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중심으로 한 베를린파(독일 베를린에 위치)가 등장한다. 이론물리학의 왕좌를 놓고 닐스 보어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협력과 경쟁을 하고, 뛰어난 상상력을 지닌 닐스 보어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이 이론을 만들면, 계산력이 뛰어난 수학자나 물리학자들이 선지자들의 이론을 공식화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다비트 힐베르트는 <물리학자들에게 물리학은 너무 어렵다>는 말을 한다. 물리학자들은 과학 이론을 만들 수는 있어도 힐베르트 본인처럼 공식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자들뿐 아니라 나 같은 인문학도도 물리학과 공식은 어렵다. 그래서 다비트 힐베르트의 말이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뮌헨대학에서 지도교수 아르놀트 조머펠트 아래서 박사학위를 받고, 괴팅겐대학 막스 보른의 조교가 된다. 그리고 닐스 보어에게 발탁되어 코펜하겐으로 이적한다. 천재를 놓고 벌이는 교수들의 다툼이 재미있다. 물리학의 획을 그은 교수들이 20대 초반의 젊은 물리학 박사를 놓고 기싸움을 하다니^^. 1925년 하이젠베르크는 막스 보른, 파스쿠알 요르단과 함께 행렬 역학, 즉 양자 역학을 발표한다. 저자는 이로써 아인슈타인의 시대는 끝나고 하이젠베르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1920년 대 초중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전쟁배상금 때문에 힘든 시기를 보내고, 독일의 과학자들은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다른 나라의 과학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과학으로 이야기하는지라, 세월이 흐르자 독일 과학자에 대한 배타적인 감정이 서서히 줄어든다.

1925년 이후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에르빈 슈뢰딩거는 파동방정식, 즉 <슈뢰딩거의 방정식>을 완성하고, 폴 디랙은 <미분연산자>를 찾아내고, 닐스 보어는 <전자스핀론>의 신봉자가 된다.

이 당시 물리 과학자들은 빛은 파동이라는 주장과 빛은 파동과 입자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베를린파와 슈뢰딩거, 고전물리학파들은 주로 빛은 파동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었고, 보어를 비롯한 코펜하겐파와 젊은 물리학자들은 빛은 파동과 입자라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양 진영의 과학자들은 논문과 과학 설명회를 통해 격렬하게 싸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었다. 그리고 그 논문들은 추후 노벨물리학상 수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고전물리학에서는 물질세계의 결정론이 지배적이다. 주사위를 던지면(원인) 주사위는 움직인다(결정)는 것이다. 그러나 1926년 괴팅겐의 막스 보른은 <확률 해석의 기초>를 통해 원자 세계에서의 결정론을 포기한다. 원자 충돌의 움직임은 예상할 수 없고, 오직 확률로만 계산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과학계는 또 한 번 들썩인다. 이 이야기가 낯익어 생각해 보니, 오늘날 책과 영화, TV에서 많이 보는 다차원 세계, 멀티 유니버스가 떠오른다.

책에는 수없이 많은 천재들이 등장한다. 폴 디랙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과 슈뢰딩거의 양자역학을 합친 <디랙방정식>을 만들고 반 물질을 발견하고, 현대물리학의 성경이라 불리는 <양자역학의 원리>를 발표한다. 하이젠베르크와 동문인 볼프강 파울리는 중성자 이론을 발표한다. 이 이론은 26년 뒤 후세의 과학자들을 통해 입증된다.

저자 토비어스 휘터에 대한 많은 정보는 없지만, 저자는 독일인 또는 독일계로 추측(독일 뮌헨 대학을 졸업하고, 이 책 <불확실성의 시대>의 제목이 독일어이고, 이 책의 번역가도 독일 유학을 다녀왔기 때문) 된다. 그래서인지 독일을 중심으로 과학자를 재조합하고 세계 1,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과학자들을 자세히 서술한다. 1933년 나치당의 히틀러가 독일제국의 총리가 되자 유대인들은 망명을 시작하고 이 무리에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상당수의 유대인 과학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과학으로 뭉쳤던 과학자들은 국가 이념에 따라 총부리를 겨눈다. 그 중 일부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죽기 위해 전쟁터로 나간다. 1938년 베를린에서 오토 한이 원자를 쪼개는 실험에 성공한다. 과학자들 사이에서 독일이 우라늄 핵 폭파를 연구한다는 소문이 돌고 프린스턴 대학에 거처를 마련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939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을 촉구하는 편지를 쓴다. 그리고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가 개시되고, 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핵폭탄을 투하한다. 과학자들은 수십만 명을 해치는 살상 무기가 된 과학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한다. 양자역학, 양자물리학이 전쟁의 시대에 핵물리학으로 전환한 것이다.

어려운 내용이 많아 책에 밑줄을 긋고, 빈 종이에 등장인물과 그들의 과학 이론을 간략하게 기입하며 읽었다. 내용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다른 과학서에서 종종 인용되는 과학자들이 이런 연구를 했구나, 다른 과학자들과 이렇게 얽혀있구나 알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그들의 복잡한 사생활과 정신세계도 가감 없이 쓰여 이 부분도 흥미로웠다. 구스타프 융의 실험체가 된 볼프강 파울리의 이야기도 재미있다. 파울리는 융에게 정신분석 논문 실험체(임상실험 참가자)가 된 걸 비밀로 해달라고 했지만, 볼프강 파울리와 구스타프 융이 너무 유명해서 비밀이 될 수 없었다!

1900년 초중반 물리학과 과학자들에게 관심이 있거나 아인슈타인, 슈뢰딩거, 파울리와 같은 과학자들의 사생활에 흥미가 있다면 읽어볼 만하다. 최근에 읽은 과학서 중에서 한 손가락에 꼽을만큼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흐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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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10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단편 수상작품집
이승훈 외 지음 / 마카롱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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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집에는 신예 작가와 그들의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이 책은 다섯 명의 작가가 그려낸 다섯 편의 단편이 실린 2023년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단편 수상집이다. 표지에 대회명, 수상자와 작품명이 담겨 있다. 단편집이다 보니 표지 그림에는 별뜻을 두지 않았는데 다 읽고 다시 보니, 바다 그림은 <울다>를, 새는 <여보, 계>를, 구름처럼 보이는 바람은 <인간다운 여름>를 표현한 것처럼 보인다.

다섯 편의 소설 중 세 편은 휴머노이드, 한 편은 좀비 전염병, 한 편은 처절한 인생 이야기이다.

심판원에 대한 일반 지시! 심판원은 경기장에 입장하면 오르지 야구의 대표자로서 경기를 관장하는 일에만 전념하여야 한다. 심판원은 사태가 악화됐을 때 그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p30. 야구규칙서 8장 심판원에 대한 일반 지시_이승훈

그들은 분명 똑같은 잘못을 반복할 겁니다.
p88. 울다_ 김단한

나는 한 창고해서 출하됐어.
p151. 인간다운 여름_고반하

<야구규칙서 8장 심판원에 대한 일반 지시>은 마지막 남은 인간야구심판원 <선배님>과 AI심판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울다>는 칠순의 마지막 해녀 순향과 바다를 누비는 로봇 <울다>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인간다운 여름>은 휴머노이드, 복제인간, 로맨틱이드, 기계살인단(줄여서 기살단, 러다이트 운동의 정신), 방송국의 어두운 모습을 보여준다.
인공지능과 작년 말 공개된 챗 GPT이 최근 큰 화제를 끌고 있다. 그래서인지 휴머노이드에 대한 소설이 가장 많이 수록되어 있다. 사람과 휴머노이드의 경계는 무엇인지, 사람과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감정이 프로그래밍된 휴머노이드를 일반 가전기기처럼 취급해도 되는지, 세 편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도 식당에 가면 서빙하는 로봇이 있고 카페에 가면 아메리카를 내려주는 로봇도 있다. 이러한 로봇들이 서빙만 하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은 물론, 일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생과 사원으로 근무하는 상상을 해보자. 로봇은 숨을 쉬지 않아도 되니 해저 기지를 짓는데 유용할 수도 있다. 휴머노이드들이 로봇인 것을 숨기고 사람들 속에 숨어사는데, (고성능 휴머노이드들은) 사람이랑 똑같이 생겨서 분간을 할 수 없을수도 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이 머지않아 현실세계에서도 벌어질법하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져도 한국인은 아침마다 꾸역 꾸역 일터에 나갈 것이라는 유머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p176. too much love will kill you _ 함서경

좀비 전염병 이야기는 얼핏 코로나19 초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마스크를 구하려고 약국과 슈퍼 앞에 길게 줄을 선 풍경, 백신이 출시되기를 손꼽아 기다리던 모습들, 초기에 코로나 환자 동선 공개를 할 때 악플을 달던 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책 속에서 운이 좋아 비감염자가 되었거나 후유증이 없는 감염자들은, 운이 나빠 감염자가 되었거나 극심한 후유증을 얻은 사람들을 공격한다. <그럼에도!>를 외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슬프다.

서로 부부는 아니어도 홀로 살아남은 그 가련한 병아리와 외롭고 배고픈 자네가 서로에게 달달한 벗이 되란 거지. 병아리는 삐약삐약, 자네는 여보게, 여보게 하면서.
p239. 여보, 계(Hey, chicken!)_강솟뿔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게 본 작품은 <여보, 계(Hey, chicken!)>이다. 코믹소설을 좋아하기도 하고 위의 이야기와 분위기가 많이 달라서이다. 위의 이야기들이 카카오 90% 초콜릿을 먹는것 처럼 씁쓸했다면, <여보, 계(Hey, chicken!)>는 카카오 50%정도의 달콤함이 있다. 물론 이 작품 속 청춘들의 삶은 팍팍하다. 마흔에 가까운 가난한 영화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와 더 가난한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백수인듯 백수 아닌 처절한 청춘 둘, 한 명은 옥탑방에서 한 명은 반지하에서 청춘을 불태우고 있다. 성과가 보장된다면 이러한 고생도 아름답다 하겠지만 터널이 너무 길어 답답하다. 터널 통과 못하고 삶이 끝나면 어쩌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무거운 이야기지만 가벼운 농담과 행동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서 코믹웹툰을 보는 것 같다. 자살시도 중인 사람에게 조의금 낼 돈이 없으니 자살하지 말라고 멱살을 잡는 이야기가 코믹스럽다. 그러나 다 읽고 보면 실제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보여 오소소하다.

장편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 좋은 단편선이다. 요즘 신예작가들이 어떤 글을 쓰고 있는지, 요즘 문화계 트렌드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읽어볼만 하다.

(마카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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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범죄 대책과 시라타카 아마네
가지나가 마사시 지음, 김은모 옮김 / 나무옆의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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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가지나가 마사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참자>을 참고하며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그 결과 2013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수상하여 화려하게 추리소설 작가로 데뷔한다. <조직범죄 대책과 시라타카 아마네>라는 한글 제목만 보고, <과>를 and로 해석했다. 그런데 한자를 보니 형사 부서를 말하는 과(課)이다. 조직범죄 대책 부서에서 근무하는 시라타카 아마네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읽었다.

제목 대로 시라타카 아마네는 도쿄 무사시노 경찰서의 형사로, 조직범죄 대책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연인이자 사수였던 구사노는 무사시노 경찰서를 떠나 도쿄 본청으로 승진이동했다. 구사노 형사 대신 들어온 파트너 우즈카 신사쿠는 갈 길이 멀어 보이는 신참내기 형사이다.

어느 날 일본 도쿄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삐에로 분장을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된다. 시체를 검시해 본 결과 복어독에 중독되어 죽은 것으로 나타났다. 형사들은 삐에로 남자의 죽음을 살인사건으로 판단하고 수사에 들어간다. 본청과 무사시노 경찰서, 인근 경찰서의 경찰들이 모여 빠르게 수사한다. 삐에로 남성은 와카야마 가즈야로 35세, 혼마치 2번지에서 양과자점 파티스리 조네스를 운영하는 점주 겸 파티시에이다. 남들에게 원한 살인 없는 유학파 출신의 파티시에가 왜 피살을 당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삐에로 남성 피살 사건의 실마리도 풀지 못했는데 또다른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조사결과 이 피해자들 사이에는 어떠한 연결고리도 보이지 않는다. 시라타카 아마네 형사는 무차별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왜 이런 범죄를 저지르는지 밝혀내야 하는데, 온통 의문투성이다. 답이 없는 물음을 머리에 넣은 채 사건을 풀기위해 뛰어다닌다.

소설이 빠르게 전개되기 때문에 답답함이 없다. 형사들이 대거 등장하는 추리소설에는 선한 형사와 악한 형사들이 대립하며 싸우기도 한다. 범인을 잡으려는 건지, 동료형사를 잡으려는건지 난감할 때도 있다. 그런데 여기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모범적인 형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검문하고 SNS 분석하고 CCTV도 수차례 돌려보며 범인 검거에 앞장선다. 다만, 형사마다 실력 차이가 있다 보니 사건을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도 있고, 엉뚱한 증거를 가져오는 사람도 있다. 구사노와 아마네가 진지한 역할을 맡았다면, 우즈카 신사쿠는 엉뚱한 역할을 맡아 소소한 웃음을 준다. 우즈카 신사쿠가 구사노를 째려보고 (자신 보다 훨씬 무섭고 능력 있는) 아마네를 지켜주려고 하는 게 엉뚱하고 어떨때는 애잔하기까지 하다. 숨어서 지켜보는데 자꾸 들킨다. 아마네의 독백처럼, 우즈카 신사쿠 어떻게 형사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수사과장이 일선 경찰들에게 큰 소리로 윽박지를때도 있다. 그러나 경찰들은 수사과장이 얼마나 범인을 잡고 싶어하는지 알기 때문에 모두 이해하고 넘어간다. 이전 사건을 통해 경찰이 범인을 못 잡으면 어떤 불행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모범적인 모습과 범인이 사용한 트릭이 인상적이다. 다 읽고 나면 범인과 피해자들의 모습이 우리 언론의 모습 같아 조금 씁쓸해진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일본에서 <하쿠타카 시라타카 아마네의 수사파일>이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나무 옆 의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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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인생 수업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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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치가 무너지는 혼돈과 과도기의 시대
고전에 불안한 내 인생의 길을 묻다! 책 표지 중에서

내가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지 고전을 읽으며 그 속에서 방향을 찾는다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유명인들의 서적 및 인터뷰에서 그들은 삶이 흔들릴 때 인문학에서 길을 찾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유명인들의 서재와 인생 책을 다룬 기사는 일반인들에게 큰 영감을 준다. 이 책도 그런 관점에서 쓰인 책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작가의 소개를 보니 한 달에 100여 편이 넘는 책을 소화하는 다독가라고 한다. 벽돌책을 보름 동안 붙잡고 있는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독서를 꾸준히 오래 하면 책 근육이 붙어, 빠르게 읽고 빠르게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보다!

이 책은 <마흔에 읽는 니체>를 펴낸 장재형 작가의 신간으로 28편의 고전을 소개하고 그 속에 담긴 주요 감정과 철학을 이야기한다. 책은 6장으로 나눠져 있다. 각 장을 세분화된 감정 <자아, 사랑, 슬픔, 고독, 관계>등으로 나누고 그 감정에 맞는 작품을 소개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책의 목차를 살펴보았다. 데미안, 달과 6펜스, 좁은 문, 위대한 개츠비, 마지막 잎새,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 낯익은 작품들이 보인다. 작품이 낯익지 않은 경우에는 작가가 낯익다(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은 닫힌 방만 읽어봤다). 저자는 내가 읽었던 이 고전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왜 스콧 피츠제럴드는 책 제목을 <위대한> 개츠비라고 했는지, 앙드레 지드는 왜 남녀 주인공을 닿을 수 없는 <좁은 문> 속에 가둬놨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의문이 들었던 고전 파트부터 읽기 시작했다. 저자는 해당 고전의 주요 구절을 소개하고 니체의 철학을 비롯한 여러 철학들을 작품에 대입시켜 해석한다.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지 알고 싶어 독서모임에 참여하기도 하고 다른 분들이 쓴 글을 읽기도 했다. 타인의 생각을 통해 나의 앎을 조금씩 확장했는데, 이 책에서도 생각지도 못한 저자의 해석이 나왔다(나의 앎이 조금 더 확장되었다). 고전의 이 구문을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구나, 이런 철학을 대입시켜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저자는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좋은 책을 많이 읽으라고 이야기한다. 좋은 책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러 세대에 걸쳐 오랫동안 읽힌 고전이야말로 검증된 양서라고 쓴다. 오래전에 출간된 책들(고전)이 지금 감성과 맞지 않아 읽기 불편할 때도 있다. 불편한 감성과 사회상을 걷어내고 그 책이 말하고 있는 본질을 발견한다면 <나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내가 읽었던 책을 다독가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미디어숲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감상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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