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법이 될 때 - 법이 되어 곁에 남은 사람들을 위한 변론
정혜진 지음 / 동녘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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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순히 어둠을 받아들이지 마오." 임세원은 자신의 책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 딜런 토머스Dylan Thomas의 시구를 두 번이나 인용할 만큼 이 말을 좋아했다. 그가 말한 어둠은 아마도우울로 인한 자살 충동,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임세원은 누구든 그런 어둠이 지배하게 놓아두지 말자고 했다.
그의 추모 콘서트에서 불린 노래처럼 그와의 약속에 보태어본다. 아픈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는 어둠을 결코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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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도시가 된다 위대한 도시들 1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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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여게인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는 한편의 긴 뮤직비디오 같았다. 그 뮤직비디오의 주제는 뉴욕이었다. 골목길에서, 건물의 옥상에서, 지하철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소음 속에서 녹음되는 연주 모두가 뉴욕에 대한 헌사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도시가 된다>를 보면서 계속 그 영화를 떠올렸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많지만 유독 그 영화를 떠올렸던 건 이 소설 역시 뉴욕에 대한 헌사로 읽혔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낭만적이지만 때로는 소란스럽고, 때로는 지저분하기도 한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주인공은 음악은 아주 하찮은 장면도 환상적인 순간으로 만들어주지라고 말하는데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것은 주인공이 이 도시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도시가 된다>에서도 역시 혼란스럽고 모순투성이인 뉴욕의 모습을 그려내면서도 도시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

뉴욕의 현신이 있다. 거대하고 각자 개성적인 부분들로 이루어진 도시들은 자치구의 현신도 가지게 되는데 이 도시의 현신들은 속한 곳 안에서 가장 강하고, 소속된 곳을 떠나면 힘도 약화된다. 갓 깨어난 뉴욕의 현신을 처리하고 뉴욕 전체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다른 도시의 현신과 싸워 뉴욕을 지켜내야 한다. 뉴욕을 영화 등에서 만난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것 같은 뉴욕의 일부들이 곧 이 자치구이다. 그리고 다섯 번째 자치구는 뉴욕 안의 보수지역 스태튼아일랜드이다. 그들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 가상도시 리예의 현신이 금발에 흰 옷을 입은 백인 여성으로 나타나 거대한 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현실에서 이들 현신을 압박하는 것과 싸워야 하고, 또한 리예가 물리적으로 도시를 공격하는 촉수괴몰 등등과도 싸우지 않으면 안된다.

긴 소설은 한 번 펼쳐들면 도중에 덮기 힘들만큼 박진감있게 전개된다. 뉴욕 자치구의 현신들이 처하는 사회적인 압박은 참으로 지금 여기 우리 나라의 모습과도 많이 닮아서, 뉴욕에 대한 사전 정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도 공감이 어렵지 않다. 자신들이 억압받고 있다고 믿으며 SNS를 이용해 혐오선동을 일으키는 집단, 권력과 재력을 바탕으로 더 나은 뉴욕을 만들겠다고 주장하며 문화계를 압박하는 집단에서 우리는 익숙한 무언가를 발견하고 씁쓸해진다. 그리고 이 소설에서 자치구의 현신이 된 인물들에 집중해 보면,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뉴욕의 진짜 힘과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마지막에 아주 작은 반전이 있는데, 참 반가운 반전이었다. 그래, 뉴욕을 완성하는 것은 그래야한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게 독자중에 나만은 아닐 것이다


알트 아티스트는 의심스런 성적 취향을 가진 으스대는 "유색인종" 여자들이 형편없고 열등한 자기들 작품을 홍보하려고 우연히 시스헤테로 백인 남성으로 태어났을 뿐 실은 훨씬 더 탁월하고재능 넘치는 예술가들을 박해하는 사회적 음모에 말려든 피해자였다.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이들은 구독자에게 "여러분이 어떻게생각하는지 브롱크스 아트센터에 알려 주라"고 지시했고, 아트센터의 뉴스레터 발행란에 적힌 이사회의 이름과 연락처를 공개했다.
그들은 누구를 겨냥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들의의도는 실현되었다. 그렇게 브롱카는 잘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 P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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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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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는 이 사회가 사람을 무례하게 대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 역시 서로를 무례하게 대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위선을 떨며 속으로는 상대를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그것도아니라면 무관심했다. 무관심의 내면엔두려움이 가득했다. 나도 언젠가는, 자칫 잘못하다간 언젠가는, 저 사람처럼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 그들에게 ‘저사람‘이란 바로 정서 같은 사람이었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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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분명……. 몇 킬로그램을 빼도…합격점은 나오지 않으리란 것을 리카는 이제 알고 있다. 아무리 아름다워져도, 회사에서 고위직에 올라도, 가령 앞으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더라도 이 사회는여성에게 그리 쉽게 합격점을 주지 않는다. 지금 이러는 동안에도 기준은 계속 올라가고 평가는 점점 엄격해진다. 이런 무의미한 심판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아무리 두렵고 불안해도, 누가 비웃지 않는지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도, 자기 자신을 인정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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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김혼비.박태하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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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이런 걸 만나는 순간이 너무 좋다. 어딘가에 ‘한국감연구회‘라는 단체가 있고, 한쪽에서는 ‘대한민국 대표 과일 선발대회‘가 열리고 거기에 입상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있다. 감 박피기를 개발하는 사람이 있고, 얼레 가방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고, 전국을 다니며 연싸움을 하는 이들이 있고,한때 만든 대금을 끼고 다니며 군밤 옆에 펼쳐 놓는 이가 있다. 축제장 음지의 꽃인 품바도 있고, 그 품바에 위로받는 팬들이 있고, 썰렁한 관객석 앞에서 열창하는 무명 트로트 가수들이 있고, 아이들을 달래 가며 공연하는 마술사가 있고, 만만찮은 지역민들의 입담을 능숙히 받아치는 노련한 사회자들도있다. 우리가 아는 세계, 아니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서 생각보다 수많은 취향과 노력이 질서를 이루어 이 세계를떠받치고 있다. 우리 또한 누군가들이 아는 세계의 바깥이겠지. 아마도 많은 부분에서 서로가 서로의 바깥일 대금 아저씨와 우리는 대금 버스킹이 펼쳐지는 시간 동안 잠시 마주 서 있다가 연주가 끝나고 한 해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새해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건강하세요!"라는 평범하지만 다정한 말들로,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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