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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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관하여

 

 ‘자유’라는 명사가 나에게 언제부턴가 완전한 긍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단어가 되었다. 나는 자유로운 사람을 부러워하고, 심지어 질투하지만 왠지 그들처럼 될 수 없다는 열등감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는 항상 포기를 동반한다.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롭다’라는 의미는 ‘어떤 것을 포기한다’라는 의미와 동의어로 느껴진다. 예컨대 ‘크눌프’에서 주인공 크눌프는 직업과 가족으로부터 자유롭다. 동어반복이지만, 그는 직업과 가족을 포기한다. 그래서 그는 자유로움을 느끼기 위해 삶의 안락과 안정성을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 핵심은 안정성인 것 같다. 자유는 바람과 같이 유려하고 흘러가는 삶을 살 순 있지만 절대로 고정될 수 없는 어떤 액체성을 띄고 있다. 우리는 뿌리를 땅에 두기 때문에 그 액체성을 견디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스스로 선택한 크눌프를 부러워할 수밖에. ‘크눌프’에서는 크눌프에 대한 3가지 이야기가 나오는 데, 모두 그의 머무름과 떠남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그 3편의 이야기에서는 거의 모든 단어들이 그의 머무름을 서술하는데 할애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글을 읽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항상 떠남에 관한 어떤 것이다. 그가 마을에 머무를 때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를 걱정하고 조롱하고, 그에게 충고하지만 그 이상으로 설득하지 않는다. 그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고 스스로도 어떤 생산성을 가지지 못하지만 그와 있을 때는 누구나 즐거워한다. 그리고 그가 떠남으로써 누구나 아쉬워한다. 그리고 그를 부러워한다. 내가 할 수 없기 때문에 부러울 수 있는 것, 이것이 타인이 크눌프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반면, 내가 하지 않기에 그를 조롱하는 것 또한 동반된다. 그렇다면 왜 ‘나’는 그처럼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일까?

 

생산성에 관하여

 

 “크눌프 같은 인물들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그들은 ‘유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롭지도 않습니다. 더구나 유용한 인물들보다는 훨씬 덜 해롭습니다. …… 만약 크눌프처럼 재능 있고 영감이 풍부한 사람이 그의 세계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크눌프뿐만 아니라 그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헤르만 헤세

 

 그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못한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는 어쩌면 시인이 될 수도 있었고 자연 연구가, 신부, 교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그는 시인이 되지 못했고, 자연 연구가, 신부, 교사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비록 행복하지 않더라도 대장장이가 되어야 하고, 의사가 되어야 하고, 석공이 되어야 하며 무두장이가 되어야 한다. 왜냐면 불행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기 때문에. 어쩌면 그것은 ‘시선’이라고 불러야할 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에게 ‘어떤 것’으로 인정받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그들은 자신이 ‘어떤 것’이기 때문에 크눌프를 ‘아무 것’도 되지 않았다고 그를 격려할 수 있는 것이다. 헤세는 이런 매력적인 인물을 창조하고 나서 그가 살아갈 수 없다면(세계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그 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크눌프가 살아 갈 수 있는 세계, 혹은 크눌프가 살아갈 수 없는 세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헤세가 썼던 텍스트 안에서는 크눌프가 살아갈 수 있지만 지금 우리 세계에서는 그가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비록 유용하지 않지만, 오히려 유용한 인물보다 훨씬 덜 해롭지만 그는 단지 ‘아무 것’도 되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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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지 모르겠지만, 크눌프를 읽은 날 자음과 모음에서 나온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이라는 책을 샀다. 아직 첫 장 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는 자유를, 크눌프와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의 자유를 얘기하고 있었다. 세상이 주는 정보, 시선으로부터 무능해지기, 그럼으로써 자신의 방법을 선택하기. 이것이 그의 자유였다. 그는 모든 것이 두렵고 불안하지만, 게다가 전혀 멋진 일도 아니지만 책이(니체가) 그에게 한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자유를 좀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어쩌면 이 세계에서도 크눌프의 존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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