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가 큰 충격에 휩싸여 슬픔에 겨워할 때,
Dante, perché Virglio se nevada,
non pianger anco, non piangere ancora!
단테여, 베르질리오가 떠났다 하나 지금은 울지 말지어다 아직은 울지 말지어다 (연 3055-56 야마카와)이렇게 말하며 베아트리체가 등장한다. 이렇게 해서 드디어 천국편으로 향하게 된다. 『신곡』에서 단테의 이름이 이 대목에 처음 나오는데, 실은 단테 이름은 여기에서 단 한 번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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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아, 선하신 아폴로여 (O buono Apollo)‘ 라고 아폴로를부른다. 지옥편, 연옥편에서도 단테는 호메로스의 전통을 따라 ‘아, 무사의 여신이여‘ 라고 부르곤 한다. 지옥편 제2곡 7행에서는 ‘아, 무사여, 드높은 재능이여, 이제 나를 도우소서, 내가 본 바를 새길 기억이여, 그대의 덕이 여기 나타나리라‘ 라고 노래한다. 연옥편에서도 제1곡5행에서 ‘아, 성스러운 무사‘ 라고 노래한다. 그리스의 예술의 여신무사에게 ‘내가 노래하게 도와주소서‘ 라고 부탁하며 노래한다. 단테는호메로스에서 시작해 베르길리우스로 이어진 서사시의 전통을 잇는다. 그러나 이제 천국을 노래하므로 무사 여신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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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을 움직이는 곳에 있는 자‘로 신을 표현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고이다. 그의 형이상학 Metapuasica (다)에 그렇게 씌어 있다.
‘형이상(形而上)‘은 『주역』에도 나오는 옛 어휘로 형체 있는 물(物) 위(초월)를 생각하는 것을 뜻한다. metaphysica의 meta는 ‘뒤에‘, ‘후에의 의미로 그것을 넘어서‘ 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리스어 physis는 자연‘ 이며, physica는 ‘자연에 관해 생각하는 학문‘ 이다. meta-physica는
‘자연학을 넘어서‘, 자연학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 자연학은 현실의 자연계를 대상으로 사고하지만, 자연의 초월적 원형인 이데아나 자연의 창조주에 관해 생각할 수는 없다. metaphysica에서는 신을 생각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metaphysica는 theologica (신학)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신학은 theologia 라고 해도 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theologia는 신을 이야기하는 ‘신화‘ 이며, 자신의 학문은 SeokoyuKh(theologike) 신학적‘ 이라고 말한다. ‘Emotiun (episteme)가 ‘학문‘ 이며자신은 Seoloruń (episteme theologike)를 준비한다고 말한다. 그래서episteme를 생략해 간단히 theologike라고 말했다. 이것이 라틴 어 세계에는 계승되지 않아서,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신화‘를 뜻하는theologia가 라틴어에서는 ‘신학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신학(SeoÀoyukń)은 제1철학이며 동시에 형이상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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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c quidquam nisi vulnus erat: cruor undique manat,
detectique patent nervi, trepidaeque sine ullapelle micant venae; salientia viscera possiset perlucentes numerare in pectore fibras,
이와 같은 시구는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하는 동시에 벌어지는 참상을 눈앞에 보는 것을 방불케 한다. 이러한 시구가 연이어진 시를 암송하는 것은 최근 살인사건이 방송되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여겨지고, 아무리 인문주의적 교양의 기초로서 고전을 기억하는 훈련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고전이라도 플라톤이 국가에서 서술했듯이, 어머니와 유모가 잠자리에서 파이스(유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승 전체여서는 안 되고 선택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신들의 간음이나 폭력 사태는 물론 지나치게 잔혹한 처벌 이야기는 성장할 때까지는 들려주거나 읽게 하는 일을피해야 한다. 단테의 지옥편에도 그러한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죄악에 대한 신의 벌로서 종교상, 또 도덕상의 근거가 있다는 점이 그리스 신화나 로마 신화와는 다른 본질적 차이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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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의 가장 은밀한 꿈속에서 자신에게 빈틈을 하나 만들어 내고, 그 일을 일찍 마친 후로는 자신에게 찾아와서 그 빈틈을 (그것도 정확하게, 즉 모든 절개와 만곡과 공동과 평면을) 채워 줄 누군가를 기다린다고 말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나타나고, 그중 하나가 그 빈틈을 덮어 주고, 또 하나가 빈틈속에서 덜걱거리고 돌아다니며, 또 하나는 워낙 안개에 에워싸인 나머지 우리는 과연 그녀가 거기 맞는지 안 맞는지를 매우 오랫동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 각각은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가한다.
그러다가 누군가가 나타나서 무척이나 조용하게 그 빈틈으로 들어가버린다. 우리는 미처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도 모르게 마련이며,
워낙 잘 맞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게 마련이다. 바로 그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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