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c quidquam nisi vulnus erat: cruor undique manat,
detectique patent nervi, trepidaeque sine ullapelle micant venae; salientia viscera possiset perlucentes numerare in pectore fibras,
이와 같은 시구는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하는 동시에 벌어지는 참상을 눈앞에 보는 것을 방불케 한다. 이러한 시구가 연이어진 시를 암송하는 것은 최근 살인사건이 방송되는 텔레비전을 보는 것처럼 여겨지고, 아무리 인문주의적 교양의 기초로서 고전을 기억하는 훈련이라고 주장하더라도 무조건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고전이라도 플라톤이 국가에서 서술했듯이, 어머니와 유모가 잠자리에서 파이스(유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전승 전체여서는 안 되고 선택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신들의 간음이나 폭력 사태는 물론 지나치게 잔혹한 처벌 이야기는 성장할 때까지는 들려주거나 읽게 하는 일을피해야 한다. 단테의 지옥편에도 그러한 장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은죄악에 대한 신의 벌로서 종교상, 또 도덕상의 근거가 있다는 점이 그리스 신화나 로마 신화와는 다른 본질적 차이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