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하고 눈부신 5월이었다. 푸른 하늘과 따사로운 햇볕, 그리고

 부드러운 서풍이나 남풍이 5월을 채워주었다. 초목도 생기발랄하게

 자라고 로우드는 그 머리채를 마구 흔들었으며 온통 초록빛으로

뒤덮였다. 커다란 느릅나무, 물푸레나무, 참나무의 해골이 늠름한

 모습을 회복하였다. 숲속 으슥한 곳에서는 화초들이 마구 싹을 틔웠고

 수없는 가지각색 이끼가 웅덩이를 메웠고 마구 흩어져 핀 야생의 

 앵초는 마치 지상의 태양인 양 보였다. 나는 그 앵초의 담황색이

 응달에서 아름다운 광택을 흩뿌리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모든 것을

 나는 마음껏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거의 혼자 즐겼다. 

 여태껏 없었던 자유와 즐거움에는 까닭이 있었다. 이제 나는 그것을

 이야기해야만 되겠다. 

   언덕과 숲으로 싸인 시냇가에 선 학교라고 하면 자못 아늑한 장소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분명 아늑하고 쾌적한 장소였음에는 틀림이 

 없지만 건강에 좋은 곳이냐고 물어본다면 문제는 전혀 달라지게 된다.

 로우드 학교가 자리 잡은 숲에 싸인 골짜기는 안개와 안개가 길러내는 유행병의 온상이었고 소생하는 봄과 함께 소생한 유행병이 이 '고아원'에 침투하여 학생들이 잔뜩 들어 있는 교실이나 기숙사에

발진 티푸스균을 불어넣었고 5월이 되기도 전에 학교를 병원으로 바꾸어 놓았다.

- 제인에어(샬롯 브론테 지음) p.117~118-


제인에어가 8년동안 지내야 했던 로우드 학교는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었으나 사람이 살기에는

그리 좋은 곳은 못 되었나보다. 지독한 배고픔과 더불어 견디어야 했던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비로소 찾아온 봄. 하지만 그 찬란한 봄날의 태양 빛은 제인의 마음에 까진 도달하지 못했다.

 배고팠던 로우드학교의 학생들은 추운 겨울이 지나 따스한 봄이 되자 전염병에 시달렸다.

80명의 학생들중 절반 가량이 발진 티푸스에 감염되었고 그 중 상당수가 사망하였다.

제인의 절친 역시 그때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요즘에야 별거 아닌 전염병이겠으나 그때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200년 남짓 과거임에도 그때는 모두에게 치명적이었다. 


배고프고 고달퍼도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라면 마음은 행복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제인이 보았을 그 빛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러나 그건 사치다.

배고픔과 추위를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이 누리는 사치인것이다. 


문명이 세상을 파괴하고 인간의 이기적인 기술이 생태를 헤치는 것은 분명하지 싶다. 

하지만 슬프게도 난 그 문명과 기술때문에 오늘 너무도 편안하고 안락하다.

(왠만한 추위와 왠만한 전염병은 견딜 수 있으니까.)

그와 동시에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고 싶다.

오늘처럼 심한 미세먼지 탓에 환기하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는 날엔 더 더욱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자연이 더욱 간절하다. 그러려면 많이 불편해야겠지. 덜 먹어야겠고 덜 써야겠고....


* 목적지가 정해진 길을 가기는 하지만 그 중간중간 딴청을 부려보려고 한다. 

그 길에 떨어진 돌멩이도 들추어 보고 이름모를 꽃도 살펴보고 주질러 앉아 딴 생각도 하고

그렇게 책을 읽으려 한다.  생각이 머물렀던 문장에 밑줄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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