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런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른 경우에 있어서도
나는 나의 주인에 대해서 아주 관대해져 가고 있었다.
전에는 날카롭게 경계하고 있던 그의 결점도 모두 잊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의 나는 그의 성격의 모든 면을 연구하고 장점과 단점을
견주어보고 양쪽의 무게를 달아보고 공평한 판단을 내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결점이 눈에 뜨이질 않았다. 그전엔 질색이었던 조롱도
나를 놀라게 했던 냉혹성도 이제는 고급 요리에 넣은 양념과 같았다.
들어 있으면 혓바닥이 얼얼하지만 넣지 않으면 싱거운 양념 같았다.
그리고 저 뭐라고 꼬집어 설명할 수가 없는 막연한 것에 관해
말한다면 -그것은 심술궂은 표정이었나 아니면 슬픈 표정이었나,
혹은 교활한 표정이었나 아니면 풀이 죽은 표정이었나?-늘 주목하고 있는 사람에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저 눈에 때때로 나타나고, 반쯤 열려 있는 이상한깊이를 미처 측량해서 알아내기도 전에
다시 닫히고 마는 그 표정은, 마치 내가 화산과 같은 언덕 사이를
헤매고 있을 때 별안간 대지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땅이 갈라지는 것을 본 것처럼 언제나 나를 공포로 떨게 하고 위축되게 했다.
나는 저 정체를 알 수가 없는 표정을 지금도 간혹 보게 되지만 마비된 신경을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두근거리며 바라보는 것이다. - 제인에어 1 (살롯 브론테 지음) P.296~297 -
제인은 이제 로체스터에게 호감의 감정을 넘어 사람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40대 중반을 넘어 선 아줌마가 읽기에는 설레임보다는
다소 닭살이 돋는 듯한 표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여고 시절 읽었던 그때의 가슴 벅찬 감동 뭐 그런 것은 없었다. 몸만 늙은게 아니라 마음도 늙은 것이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장면 멋지지 않은가?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그렇다 제인의 눈에는 이제 콩깍지가 씌였다. 그래서 첫 인상이 호감형이 아니었음에도 콩깍지가
씌인 지금은 로체스터의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무례함의 음식의 양념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목소리도 끝내주고... 유머러스하고...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그런 사람. 그래서 함께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했으면 하고 소원했던 그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와 결혼했다.
6년 연애 끝에 결혼 했지만 결혼 후 그 콩깍지가 벗겨지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엇이었을까? 그토록 원했는데, 모든 어려움을 감수할만큼 자신 있었는데 너무도 쉽게 벗겨져 버렸다. 많은 부부들이 그러하듯... 많이 다투었다. 서로에게 상처도 많이 주었고.
그렇게 10여년을 밀고 당겼나 보다. 지금도 이따금 다툰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는다.
올해로 결혼 21년. 서로 함께 해 온 시간에 대해. 서로의 나이 먹음에 대해 연민이 생겼다.
내가 남편에게 아쉬웠던 것 만큼 그 사람도 내게 그러했겠지. 사람이니까......
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한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의 설레었던 시간들을...
득실을 계산하지 않고 오롯이 내 감정에 충실했던 그 때의 시간들을... 추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