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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독자여, 이것이 나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인트 존은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가 자기는 냉혹한 인간이라고 한 것은 자신의 성격을 옳게 말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든가 인생의 즐거움 따위는 그에게는 아무 매력도 없고, 호화로이 인생을 즐긴다는 것도 그의 마음을 끌지는 않는다. 문자 그대로 그는 오직 선한 것과 위대한 것만 갈망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도 쉬지 않고, 주위 사람들의 휴식도 용납하지 않았다. 햐얀 돌처럼 창백하고 움직이지 않는 그의 넓은 이마를 바라보고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그 훌륭한 자태를 바라보면서, 이 사람은 도저히 좋은 남편 노릇은 못할 것이며 그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또 무슨 영감이라도 받은 것처럼 올리버 양에 대한 그의 애정을 이해하였다.

그것이 관능적인 사랑에 불과하다는 데는 나도 동감이었다. 그러한 사랑의 열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들떠 있는 자신을 그가 얼마나 경멸하고 얼마나 그러한 감정을 눌러 없애고 싶어 하는지, 그런 사랑이 두 사람의 행복에 오래오래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얼마나 불신하고 있는지를 나는 알 수 있었다. 

 - 제인에어 (샬롯 브론테 지음) P.265 -


세인트 존은 합리적이고 상당히 이성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감정의 변화란 그에게 절대로 있어서도 안되는 것일 뿐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스무살을 갓 넘긴 청년의 불타는 사랑의 감정은 반드시 억압해야만 하는 악의 속삭임이다. 격정적인 사랑을 퍼부었던 로체스터의 사랑과는 완전히 대조된다. 사랑을 인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세인트 존. 충동적일 수 밖에 없는 20대의 청년에게 감정의 억누름이 가능한일일까? 살짝 의구심이 든다. 게다가 본인만이 아닌 타인에게도 그런 삶을 강요한다. 바로 제인에게. 세인트 존은 제인에게 결혼을 제안한다. 사랑을 수반하지 않는 결혼. 자신이 가치있어 하는 그 일을 하는데 있어 제인이 가장 적합하단다. 물론 제인과 함께라서 의미있다라는 것은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강철같은 의지를 가진  인물. 그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양철통으로 만든 인간처럼 냉랭한 이 남자의 결혼 제의를 제인은 거절한다. 제인은 사랑을 꿈꾸고 있으므로.... 



나는 커피를 좋아한다. 커피를 마시기까지의 모든 행위를 사랑한다.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하루 딱 한 잔. 그래서 맛없는 커피를 마시게 되면 엄청나게 짜증이 난다. 딱 한 번 마시는 커피인데.

때문에 나는 동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나의 집에서 마신다.

일주일에 한 두번은 직접 커피를 볶는다. 화창한 날 창문을 활짝 열고 두꺼운 팬에 타닥타닥 소리를 즐기며 커피를 볶는다. 후후 불어가며 커피의 껍질을 날리고 병에 담는다. 남편은 무거운 팬을 흔들어가며 커피를 볶는 내가 힘들어 보인다며 집에서 사용할 수 있는 로스팅 기계를 구입할 것을 제안했지만 나는 단 칼에 거절했다. 그냥 이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당연히 균일하게 볶아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조금 더 세게, 때로는 좀 약하게. 하지만 이런 변화도 좋다. 이번에는 어떤 맛일까? 기대도 되고. 때론 실망할 때도 있지만 오래 가지는 않는다. 100g 남짓 되는 양이기에.

그리고, 글라인더로 원두를 분쇄한다. 핸드밀로 하지는 않는다. 이건 기계의 힘으로. 대략 10여년 정도 된 분쇄기가 있는데 아직 멀쩡하다. 그리고 물을 끓여 위의 사진처럼 커피를 내린다. 천으로 된 필터를 더 자주 사용한다. 종이 필터보다 묵직해서 내가 좋아하는 산미를 더 깊이있게 내려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커피를 내리면 커피 향이 집안에 가득 찬다. 잠시 외출이라도 하고 들어오면 그야말로 죽여준다. 치명적인 매력의 커피 향. 흐물흐물 내가 녹아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그 순간 내가 진 고민과 어려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나는 커피를 마시기 위한 다소 불편한 행위를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그 과정을 즐긴다. 나에게 커피란 까만 액체 그 자체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러하다. 사랑이란 단순히 아내나 남편을 정하는 행위가 아니란 말이다. 타 죽는 줄도 모르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의 어쩔 수 없음일 수도 있고, 도저히 이성적일 수 없는 그런 감정일 수도 있다. 털어봐야 텅텅 빈 호주머니뿐이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라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수도 있다. 지극히 평범한 외모이지만 아니 그 보다 못할 수도 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 눈속에 끝내주는 필터를 깔아준다. 세상 가장 멋지고 가장 이쁜 사람이 내 앞에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다. 무지 아프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별이 슬퍼서 아플수도 있지만 함께 있음에도 아플 수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없을때. 그때 정말 아프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주고 싶은데 줄 것이 없다 느껴질 땐 정말 아프다. 그 대목에서 사랑의 힘은 발휘되는 것 같다. 몰핀과도 같다고 해야 할까?(난 이 약의 효능을 직접 경험해 본 적은 없다.) 사랑하게 되면 나의 고단함과 아픔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견디게 한다. 오로지 나의 사랑을 위해서...


젊은이들이여 사랑하시라. 내가 처한 상황, 내가 가진거, 상대방이 가진거... 

그로 인한 득실을 계산하지 말고 사랑하시라. 


이 책을 다시 집어 들었을 때 사실 어색했다. 여고 시절 보았던 책. 왠지 내 감정이 퇴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드랬다. 아니다, 참 잘했다. 나에게 생기를 북돋아주고....

더우기 20대를 향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내 아들에게도 참 잘된 일이다. 나중에 아들이 겪게될 사랑을 이해해 줄 수 있을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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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즐거운 듯이 열쇠를 넘겨주시는데, 당신의 그 명랑하게 들떠 있는 기분을 나는 알 수가 없군요. 이제 학교 일을 그만두는 대신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지 내가 모르기 때문이죠. 대관절 당신은 지금 어떠한 목표와 목적과 야심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저의 첫 번째 목표는 청소를-이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실까요?- 무어 하우스의 침실에서 지하실까지 청소를 하는 거예요. 

두 번째 목표는 밀랍과 기름을 듬뿍 묻힌 헝겊을 가지고 번쩍번쩍 윤이 날 때까지 닦는 거예요. 세 번째는 의자와 테이블과 침대와 카펫을 수학적인 정확성을 기하여 배치하고 당신이 파산할 만큼 석탄을 많이 때서 모든 방을 따뜻하게 해놓고 마지막으로는 두 분이 돌아오시기 전 이틀 동안 해나하고 저하고 둘이서 달걀을 젓고, 건포도를 고르고, 양념을 갈고, 크리스마스 케이크의 재료를 섞고, 다진 고기 파이의 재료를 썰고, 기타 당신 같은 문외한으로서는 말로만 들어서는 잘 알 수도 없는 여러 가지 부엌 안에서의 의식을 행할 참이에요. 간단히 말해서 저의 목적은 다이애나와 메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다음 목요일까지는 모든 것을 완전히 정돈해 놓는 것이고, 저의 야심은 두 분이 돌아왔을 때에 가장 이상적인 환영을 해드리는 거예요." 세인트 존은 약간 미소를 지었으나 그래도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었다. 

- 제인에어 (샬로브론테 지음) P.261-


 제인에어는 돌아가신 숙부에게 2만 파운드를 상속받았다. 제인이 세인트 존으로부터 소개 받은 학교의 교사로서 받는 급료가 연봉 30파운드인 점을 감안하면 2만 파운드는 실로 어마어마한 돈이다. 연봉 30파운드씩 받는다고 했을 때 100년을 일해야 3000파운드를 벌 수 있다. 정말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 것이다. 행운이 넘치고도 넘치는 제인에게 세인트 존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다. 그 돈으로 뭔가 세상을 변화시킬 의미있는 일을 하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제인의 답은 지나치리만큼 평범했다. 하지만 나는 제인의 목적과 야심이 드러난 이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았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내가 살고픈 삶이기도 하기 때문에.



 요즘은 볕이 거실 깊숙히 파고든다. 따끈한 차와 그 빛을 오감으로 느끼는 순간은 참으로 행복하다. 햇빛에 몽롱하게 반짝이는 식물들의 초록을 바라보는 것도 참 좋다. 청소를 끝내고 난 후라면 더 더욱 여유롭다. 저녁 식사 시간에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다면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순간도 행복할텐데...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가족에게는 그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난  조금 뒤면 나의 일을 위해 이 공간을 떠나야 한다. 아마도 저녁 9시 무렵이 내 귀가 시간이 될 듯 하다. 고등학생인 아이 역시 밤 늦은 시간 돌아올테고. 요즘 한 시름 놓은 남편의 귀가 시간만이 조금 빠를 듯 하다.  주 중에 온 가족이 모여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저녁을 먹을 수 있는 날은 많지 않다. 올 해는 거의 없었다. 월화수목금 모두 각각 저녁을 해결했다. 그래서 난 주말이 되면 가족을 위해 하루 세끼 부지런히 요리를 한다. 그리고 아침 식사만큼은 열심히 챙긴다.

막연한 의무감으로 행하는 노동의 연장이 아닌 내가 살아있고 우리 가족이 함께 살고 있구나를 느끼고 싶은 까닭이다. 


"일하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위해 일하는 거야."


노동자로서의 내가 아닌 삶을 만끽하는 내가 되고픈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삶. 가장 사치스러운 삶이 아닐까 싶다. 

좋은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여유로이 나누고,

맘에 드는 가구를 고르고 어디에 놓을까 고민할 수 있는 삶.


나에게도 행운이 깃든다면 그렇게 살고 싶다.

게다가 조금 더 욕심을 내어서 내가 경영할 수 있는 손바닥만한 땅이 있어

심고 싶은 것을 심고 거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느때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제인에어가 이제 막 실천하려는 저 삶을

나는 동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 책갈피를 살며시 끼워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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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데,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과연 어떤 쪽이 더 나을까?

유혹에 몸을 맡겨 정열에 귀를 기울이고, 고통스러운 노력도 하지 않고,

몸부림도 치지 않고, 오직 비단의 덫에 치여, 덫을 덮고 있는 꽃 위에서

잠이 들어, 쾌락의 별장의 사치에 묻혀 남국의 기후에서 잠이 깨어,

지금쯤 로체스터 씨의 정부로서 프랑스에 살면서 시간의 반을 그의 

사랑에 -분명히 그는 얼마 동안은 나를 열렬히 사랑해 줄 테니까-취해서 사는 인생. 그는 나를 사랑했다. 그처럼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다시는 없으리라. 아름다움과 청춘과 기품에 바쳐지는 달콤한 경의는 다시 받지 못하리라. 왜냐하면 그 이외의 아무에게도 내가 그런 매력을 가진 것으로 보이지 않을 테니까. 그는 나를 좋아했고, 나를 자랑삼았다.

그분 이외에는 아무도 그래 줄 사람이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를

헤매고 있는가, 뭘 이야기하고 있는가? 아니 무엇보다도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나는 묻고 있는 것이다, 어느 쪽이 나으냐고. 마르세유의 바보의 낙원에서 노예가 되어 잠시 동안 허망한 행복에 머릿속이 들려 있다가, 다음에 쓰디쓴 회한과 치욕의 눈물을 흘리는 것인가. 아니면 건강한 영국 중부의 산들바람 불어오는 산 구석에서 자유롭고 성실한 여교사가 되는 것인가?

 -제인에어2 (샬롯브론테 지음) P.208~209 -


그랬다. 제인에어를 향한 로체스터의 사랑 고백은 너무도 절절했다. 제인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결혼식을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는 내내 열에 뜬 사람 같았다. 어떤 남자의 사랑 고백이 이 보다 더 화려할 수 있을까? 문득 난 남편과의 연애 하던 그때를 떠올려 보았다. 아무 말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분명 벙어리인 채로 나와 결혼 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그가 뭐라 했는지 어떻게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를 무어라 불렀는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남편이 내게 보내었던 편지 뭉치가 있다. 언제 한 번 더듬어 봐야겠다. 먼지 낀 나의 기억을 위해서....^^

어쨌든 로체스터의 사랑 고백은 폭풍과도 같았다. 할 수만 있다면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러다 둘의 사랑은 파경을 맞는다. 둘의 잘못이라기에는 다소 애매한 이유로. 어쩌면 로체스터의 잘못이라 할 수도 있겠다. 처음부터 솔직했더라면 상황이 바뀌었을까? 떠나려는 제인을 붙잡으려는 로체스터는 더욱 거센 푹풍이 된다. 떠나려는 사랑을 잡으려 안간힘을 다하는 그를 보며 울음을 삼키는 제인. 저 정도면 받아줄만 하지 않나? 끝내 떠나고 마는 제인이 야속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서둘러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온 제인에어에게 닥쳐온 고통은 우선은 생존의 기본인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 배고픔, 추위...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던가? 많은 거절 끝에 그녀를 향해 내민 도움의 손길. 덕분에 오늘 제인은 위와 같은 독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인은 시골의 이제 막 생긴 스무명 남짓한 가난한 아이들이 있는 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초라한 집과 초라한 신분. 전보다 나아진 삶이 아니라 한 걸음 내려간 듯한 느낌. 그래서 비참하기도 하다. 그런 그녀가 질문을 한다. 그때 그의 사랑을 받아들였더라면 지금쯤 난 안온한 생활을 하고 있을텐데... 하는 생각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의 끝도 제인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끝내 그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고 지금 이렇게 고생을 자처하고 나온 것이다.


어쩌면 요즘 이 책을 읽는 젊음 세대에게는 이해 되지 않을수도 있겠다. 화석속에 존재하는 사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빛나는 보석을 선물받고 값비싼 옷으로 치장하고 남자의 사랑과 귀염을 한 몸에 받아 한껏 취하는 삶을 거부하는 제인을 지나치게 청교도적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니다, 요즘이라 한정할만한 것은 아닌것 같다. 요즘은 좀 더 심해진것 같지만.

내가 결혼하기 전에도 주변 어른들이 그러셨다.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그럴듯한 남편을 만나 잘 살면 그만이라고. 그 당시 서울여대에 다니던 한 친구는 돌연 재수학원엘 갔다. 그리고 그 이듬해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그 친구가 재수를 결심했던 이유. 괜찮은 남자들이 미팅할 때 이대생들과 먼저 하고 그 다음은 자기들이더란다. 그래서 그 친구는 치열하게 공부했다. 그 이후론 모르겠다. 괜찮은(?) 남자와 결혼해서 잘 살고 있겠거니 추측만 할 뿐이다.


난 병적으로 독립적이었다. 가난한 집의 장녀로 태어난 까닭이기도 했겠지만 내 자존심이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기댄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다.  남편과 연애를 하던 그 시절에도 난 나의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받아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어서 기뻤다. 




좋은 닭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남편과 아이를 위해 갖가지 향신료와 약재를 넣고 푹 삶았다. 닭 육수가 제법 잘 우려졌다. 그 육수로 향긋한 우리쌀로 치킨 리조또를 만들었다.



겨울비가 내리는 12월의 첫째 주말.

남편과 아들은 행복해 하면서 나의 요리를 맛있게 해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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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있으니까 그렇지.

만일 알게 되면 당신은 특별한 처지에 처해 있는 셈이오.

행복은 바로 코앞에 있어. 

그렇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니까.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추어졌어.

그것을 결합시키는 힘만 부족할 따름이야.

운명의 신이 재료를 산산이 흩뜨려놓았을뿐이지.

한번 그걸 주워모아 보구려,

굉장한 행복이 올테니.


- 제인에어 1 (샬럿 브론테 지음)  P.309 -



그래 흩어져 있는 행복의 조건들을 모아보자. 행복해질 수 있단다.

그런데 어떻게 모으지? 그게 우리에게 준 미션이구나.


* 제인에어 1권을 다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기억하고 싶다라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밑줄 치고

때로는 노트에 적어보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기록하니 참 좋다. 

기억의 자취를 더듬어 보기에 참 좋은 방법인 듯.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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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른 경우에 있어서도 

나는 나의 주인에 대해서 아주 관대해져 가고 있었다. 

전에는 날카롭게 경계하고 있던 그의 결점도 모두 잊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의 나는 그의 성격의 모든 면을 연구하고 장점과 단점을

견주어보고 양쪽의 무게를 달아보고 공평한 판단을 내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제 결점이 눈에 뜨이질 않았다. 그전엔 질색이었던 조롱도

나를 놀라게 했던 냉혹성도 이제는 고급 요리에 넣은 양념과 같았다.

들어 있으면 혓바닥이 얼얼하지만 넣지 않으면 싱거운 양념 같았다.

그리고 저 뭐라고 꼬집어 설명할 수가 없는 막연한 것에 관해 

말한다면 -그것은 심술궂은 표정이었나 아니면 슬픈 표정이었나, 

혹은 교활한 표정이었나 아니면 풀이 죽은 표정이었나?-늘 주목하고 있는 사람에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저 눈에 때때로 나타나고, 반쯤 열려 있는 이상한깊이를 미처 측량해서 알아내기도 전에 

다시 닫히고 마는 그 표정은, 마치 내가 화산과 같은 언덕 사이를 

헤매고 있을 때 별안간 대지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땅이 갈라지는 것을 본 것처럼 언제나 나를 공포로 떨게 하고 위축되게 했다. 

나는 저 정체를 알 수가 없는 표정을 지금도 간혹 보게 되지만 마비된 신경을 가지고 보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두근거리며 바라보는 것이다. - 제인에어 1 (살롯 브론테 지음) P.296~297 -



 제인은 이제 로체스터에게 호감의 감정을 넘어 사람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40대 중반을 넘어 선 아줌마가 읽기에는 설레임보다는 

다소 닭살이 돋는 듯한 표현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서 여고 시절 읽었던 그때의 가슴 벅찬 감동 뭐 그런 것은 없었다. 몸만 늙은게 아니라 마음도 늙은 것이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장면 멋지지 않은가?

사랑하면 눈에 콩깍지가 씌인다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진다.

그렇다 제인의 눈에는 이제 콩깍지가 씌였다. 그래서 첫 인상이 호감형이 아니었음에도 콩깍지가 

씌인 지금은 로체스터의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무례함의 음식의 양념만큼이나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때는...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목소리도 끝내주고... 유머러스하고...

함께 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그런 사람. 그래서 함께 같은 집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했으면 하고 소원했던 그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와 결혼했다.

6년 연애 끝에 결혼 했지만 결혼 후 그 콩깍지가 벗겨지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무엇이었을까? 그토록 원했는데, 모든 어려움을 감수할만큼 자신 있었는데 너무도 쉽게 벗겨져 버렸다. 많은 부부들이 그러하듯... 많이 다투었다. 서로에게 상처도 많이 주었고.

그렇게 10여년을 밀고 당겼나 보다. 지금도 이따금 다툰다. 하지만 오래가진 않는다. 

올해로 결혼 21년. 서로 함께 해 온 시간에 대해. 서로의 나이 먹음에 대해 연민이 생겼다.

내가 남편에게 아쉬웠던 것 만큼 그 사람도 내게 그러했겠지. 사람이니까......


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한다. 남편과 결혼하기 전의 설레었던 시간들을...

득실을 계산하지 않고 오롯이 내 감정에 충실했던 그 때의 시간들을...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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