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iver (Mass Market Paperback)
로이스 로리 지음 / Dell Laurel-Leaf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냥 표지를 보고 생각이 났다. 답은 '사랑'이다. 그냥 표지의 노인이 톨스토이 비슷하게 생겨서 생각난 것인데, 생각해 보면 스토리와 아주 큰 연관이 있다. 아까 언급했듯이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면 깨닫을 것이, 이 사람들에게는 뭔가 문제가 있다.

책의 중간쯤 가서 알게 될 것인데, 이 책의 주인공 남자아이는 한 이성 친구를 좋아한다. 그러나 '꿈을 나누는 시간' 에 사춘기 소년에게 자연스레 나타나는, 이성 친구를 원하는 그런 꿈을 꾸었다고 말하자,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알약을 준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 알약을 먹는다. 그리고 그 알약은 '사랑' 이라는 감정을 배제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딸과 아들. 이렇게 구성된다. 그리고 그것은 곧 법이다. 규칙을 세 번 어긴 사람, 너무 늙은 사람, 쌍둥이, 체중 미달아는 '다른 곳'으로 간다. 주인공은 그 '다른 곳'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우리의 주인공은 특별하게도 '리시버'라는 직책을 맡는다. 사람들의 기억을 대신 받는 직책이라는데, 그의 전에는 한 여자 리시버가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고 자청했다- 그는 그것만 알았다. 그와 같이 일하게 된 '전달자'는 그에게 각종 기억을 넣어 주었다- 그리고 기억을 보면서 그가 느끼는 것들은 고통, 배고픔, 차가움 등 그런 감정들이다. 그리고 지금 이 마을의 사람들이 이렇게 미쳐버린 이유는 '전쟁'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지금 이 마을의 사람들에게서는 '감정'이라는 것이 흡수되어 나간 것이라는 것을 또 알게 된다.

몇 달 후 그는 전달자의 방에서 그의 아버지가 주관하는 '추방 예식'을 영상으로 본다. 그리고 그는 그가 생전 모르던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아버지는 주사를 놓고, 아이는 점점 굳어져 갔다- 죽은 것이다. 주인공은 이제 곧 안락사를 당할 것이라는, 그와 많은 점이 닮았고 그의 가족이 돌봐 주고 있던 가브리엘을 데리고 도망쳐 나온다. 그리고 그는 전달자가 항상 말하던 존재, '음악'을 듣게 됀다. 그리고 책은 끝난다.

만약 '전쟁'을 멈추기 위해 '감정'을 포기해야 한다면, 나는 차라리 전쟁을 택할 것이다. 물론 전쟁이 끔찍하지만, 감정이 없는 곳에서 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받을 수도 없다. 심지어 부모나 가족에게서부터도 말이다. 사랑받지 못해서 자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보면 '사랑'이란 것은 '전쟁' 도 누를 만큼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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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철타는출판사 2007-08-14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게 만드네요...
 
놓치지 말자! 이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1
아라카와 히로무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난 만화를 그리 즐겨보지 않는다. 단지 그냥 심심할 때에 소년만화 몇 권 보는 게 다이다. 몇년 전 소녀만화 하나때문에 친구가 완전히 변해버린 적이 있어서 소녀만화는 그리 잘 보지 않는다.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몇몇 소녀만화 빼고 거의는 단순한 연애 이야기일 뿐이다. 그리고 '로맨스' 와 '단순한 연애'는 다른 것이다. 흔한 삼각관계, 운이 좋아서 얻은 남자친구, 그런 것이 요새 소녀만화의 주류를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난 돈 절약도 할 겸 소년만화만 본다.

소년만화 중에서도 '못 만든' 만화가 있도 '잘 만든' 만화가 있다. 못 만든 만화와 잘 만든 만화의 다른 점은, 감동적인 장면에서 눈물을 나오게 하느냐 아니면 피식- 웃게 만드냐이다. 너무 코믹에만 치중한 그런 만화는 감동적이어야 할 부분이 무게감이 없다- 그래서 난 만화도 가려 읽는다. 그러나 적당히 코믹적이고 감동적일 때는 무게있게 '묘사' 할 수 있는 그런 책은 잘 만든 만화인 것이다. 그리고 강철의 연금술사가 이런 부류에 속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눈물이 많아서 그럴 지도 모르지만, 필자는 4권을 읽고 운 경험이 있다. 그 때는 만화 읽고 우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15권인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전쟁을 기억하는 한 장면에서 또 운 적이 있다. 작가도 스토리를 그렇게 지향한 것 같고 작가가 원하던 대로 그런 장면들은 꽤나 감동적이었다. 아니, 누군가가 죽어도 전혀 감동적이지 않은 모 만화책보다는 전혀 감동적이지 않았다.

그림은 그리 잘 그린 편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건 스토리이다. 본래 코믹만화는 다 읽으면, '아, 그래. 그건 웃기지.' 하고만 기억에 남는, 그렇게 가벼운 만화들 뿐이다.(물론 안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런데 이건 코믹만화 치고 '전쟁'이라는 소재에 주제를 맞춘 것이어서 그만큼 무게감도 있고 기억에도 남는다.

만화가 기억에 남는 경우는 적다. 1개월, 2개월의 경우는 흔하지만 2년, 3년 후에도 '재밌다'고 말한 그 만화가 아직도 '재밌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아직 책을 읽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직도 감동적인 부분을 생각하면 코가 찡해진다. 그런 면에서 꽤 잘 만든 만화라고 생각한다.

(스포일러- 참고로 필자는 미국에서 로이-리자 동인지를 만들어 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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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레미파솔라시도 1
귀여니 지음 / 반디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나는 인터넷 소설을 즐겨 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이유는 끊임없는 이모티콘, 틀린 맞춤법 때문도 아니고(그렇지 않은 인터넷 소설도 많다) 소설 작가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도 아니다(실제로 귀여니라는 작가는 많은 인터넷 소설을 출판했다). 그래서 난 '인터넷 소설'이란 것은 단지 '온라인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도 글쓰는 사람으로서 '소설'이라는 것의 참미는 마치 2차원에 적힌 묘사를 보고 3차원 영상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 난 한 소설을 보고 작가의 풍부한 묘사에 푹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난 글을 쓰면서도 '소설의 생명은 묘사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쓴다.

솔직히 '이모티콘' 이라는 것을 을 배척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본다. 이렇게만 말하면 욕을 지대로 들어먹을지도 모르지만, 이모티콘을 욕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리고 이모티콘은 절대로 한글을 파괴하지 않는다- 이모티콘은 글자가 아니니까. 단지 기호를 사용해서 만드는 '그림' 일 뿐이다. 글자가 아닌 걸 보고 '저건 글자가 아니다!' 하고 배척하는 것, 그렇게 좋은 태도는 아니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건 쓸모 없는 '순환 논리' 일 뿐이다.

그러나 소설은 '글' 로 '영상' 을 구현하는 것이다. 벌써부터 '그림' 인 이모티콘으로 소설을 썼다면 그 작가가 쓴 소설은 절대로 소설이 아니다. 그냥 온라인으로 쓴 '낙서'일 뿐이다. 그러므로, 벌써부터 작가, 귀여니가 쓴 소설들은 소설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모티콘이 많든 적든의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귀여니 소설의 스토리의 중심이 되는 '신데렐라 증후군' 이나 '청소년이 담배피고 나이트에 간다' 는 전혀 내 소관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심리학자가 아니라고는 해도 그렇게 '뻔한 신데렐라 스토리' 를 그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일단 현실성이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요즘 가게들은 19세 '미만' 에게는 술, 담배를 팔지 않는다. 오히려 몰먀 맞고 쫒겨난다. 그리고 저기서 '미만'은 '이하'가 아니다.

뭐 '전혀 교육적이지 않다' 라는 문제는 그렇게 큰 문제가 못 된다. 만화나 다른 낙서들(필자는 '소설'이라는 말을 너무 과분하게 생각한다. 아마 조금 극단적일 것일 것 같지만...)도 '교훈'을 주는 것들은 별로 없다. 그래도 필자는 '달빛천사'의 경우에는 그래도 약간의 감동이 있었던 것 같았다.

이것은 소설이 아니다, 그게 내 생각이다. 그리고 '이게 소설인가 아닌가'를 거론하는 문제는 이제 끝났다고 봐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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